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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曰] 촛불의 희망, 권력의 욕망

중앙선데이 2020.12.26 00:28 717호 30면 지면보기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다시 한 해가 저문다. 흔히 송년 분위기를 내기 위해 촛불을 켜곤 하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어둠은 대개 빛과 함께 존재한다. 촛불은 주변만 밝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빛도 점화시킨다. 촛불을 켜면 마음이 숙연해지는 것은 그 때문인 것 같다. 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나 혹은 각종 종교의식에 촛불이 빠지지 않는 것도 촛불을 통해 나의 마음을 여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세밑 밝히는 촛불로 내 마음도 점화
시대의 아이러니 성찰, 소리없는 눈물

촛불과 송년은 어울린다. 해마다 돌아오는 세밑이지만 올해는 더 각별한 듯하다. 1년 넘게 온 나라를 갈라놓은 사건도 일단락돼 간다. 재판을 통해 진실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진실은 드러나지만 갈라진 마음은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 상처받은 마음들의 틈을 온전히 보듬는 일도 촛불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올 세밑엔 촛불의 의미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한다. 잠시 촛불을 켜고 생각해보자. 촛불이란 무엇인가. 어떤 어둠은 밝히고 어떤 어둠은 가리는 촛불이 있는가. 그런 촛불은 없을 것이다. 어둠이 있는 곳은 그 어디든 밝히는 것이 촛불이다. 촛불은 선택적이지 않다. 우리 편의 어둠이라고 해서 촛불을 감춘다면 그것은 촛불이 아닐 것이다.
 
권력과 촛불은 긴장 관계일 수밖에 없다. 촛불은 권력의 감시자 역할을 한다. 대개 권력은 선하지 않다. 설사 선을 표방하며 등장한 권력이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타락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게 역사다. 인간의 욕망은 권력의 옷을 입고 화려한 춤을 추곤 한다. 그 화려함 뒤에 가린 탐욕을 성찰하게 하는 것이 촛불이다. 그런 촛불을 어느 권력이 좋아하겠는가.
 
대개 언론과 시민단체 같은 사회적 기구들이 촛불의 역할을 해왔는데, 올해는 좀 다른 양상을 보인 것 같다. 큰 단체보다는 개인들의 작은 촛불이 큰 빛을 발휘했다. 올해 우리 사회에서 촛불을 밝힌 이들의 이름을 한번 불러보고 싶다. 최장집, 강준만, 진중권, 서민, 김경율, 권경애, 강양구 등. 필자의 시각에 들어온 이름일 뿐이다. 이들 말고도 진영의 편견을 넘어서려고 애쓴 수많은 촛불이 있을 것이다. 강준만은 최근 『싸가지 없는 정치』를 출간하며 “정말 나라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책을 썼다고 밝혔는데, 1995년 39세의 그를 세상에 처음 알린 책 『김대중 죽이기』를 펴낼 때의 마음과 열정을 이번에 다시 소환했다고 한다.
 
여기에 또 민중가수 안치환의 이름도 함께 불러보고 싶다. 그가 올해 신곡으로 내놓은 ‘아이러니’는 촛불의 느낌으로 본 ‘올해의 노래’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아이러니 다이러니 다를 게 없잖니”라는 후렴구의 운율이 때론 강하게 때론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안치환은 ‘아이러니’ 이후에도 꾸준히 새 노래를 발표하는데, 옛 민중가요를 리메이크한 ‘영산강’이란 노래도 마음에 와 닿는다. ‘영산강’은 이렇게 시작한다. “차라리 울어 볼꺼나, 이 칙칙한 어둠 몰고 / 소리 없이 숨죽여 울어 볼꺼나.” 이 시대의 아이러니를 성찰하며 소리 없이 숨죽여 울어본다면, 그 마음은 촛불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촛불은 무엇보다 따뜻하다. 꽁꽁 얼어붙은 배타적인 마음들을 녹이며 세상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촛불이다. 최근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아시타비(我是他非)’가 뽑혔다. 이 말이 원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한문으로 줄인 신조어다. 지독한 독선을 풍자했다고 한다. 2위로 뽑힌 말은 ‘후안무치(厚顔無恥)’. 다 같은 의미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간 우리 마음의 촛불이 켜진다. 부끄러움을 인성의 주요 항목으로 설정한 옛사람들의 지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마음의 촛불이 꺼지지 않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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