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간중앙] 릴레이 인터뷰(3) 소수정당 초선의원 3인, 의회주의를 말한다 - ‘꼰대국회’ 저격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

중앙일보 2020.12.26 00:03
거대 양당 정쟁에 쏠린 관심, 소수에게 분산 노린 파격적인 ‘의상 정치’
청년에겐 평범한 삶조차 사치, 시대 변화 맞춰 노동 개념도 바꿔야

“‘먹고사니즘’ 외면한 국회에 국민은 지쳐만 간다”

12월 8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노동자 작업복에서 유래한 점프슈트를 입고 월간중앙과 인터뷰하고 있다.

12월 8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노동자 작업복에서 유래한 점프슈트를 입고 월간중앙과 인터뷰하고 있다.

류호정(29) 정의당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소수정당 의원 중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개원할 때부터 톡톡 튀는 원피스룩으로 시선을 끌었다. 국정감사장에 안전모를 쓰고 왔고,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앞에선 발전소 노동자 작업복 차림으로 1인 시위를 벌였다.
 
류 의원의 복장은 정치무대의 세대교체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국회는 날 서고 화려한 언변이 주목받는 ‘레토릭 정치’의 전당이었다. 말이 돋보이려면 모든 신경이 귀로 집중돼야 한다. ‘넥타이와 정장’ 일색인 무채색 의회는 레토릭의 몰입감과 권위를 극대화하는 오브제다.
 
류 의원의 ‘이미지 정치’는 이런 공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듣는 것보다 ‘보는 것’에 익숙한 MZ세대의 특징을 정치무대 한복판에서 효과적으로 도구화한 것이다. 다만, 이런 해석조차 MZ세대에게는 ‘꼰대적’ 발상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월간중앙과 인터뷰한 12월 8일에도 류 의원은 노동자 작업복에서 유래한 점프슈트 차림이었다. 복장에 의미를 담고 싶어 하는 기자에게 류 의원의 대답은 쿨했다. “이거, 요즘 유행하는 건데요.”
 
옷 때문에 워낙 유명해졌는데, 시선이 부담스럽진 않나?
“그냥 그렇다.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진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위축되거나 하진 않았다. 앞으로 더 많이 쳐다볼 테니 더 잘 입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피스를 입은 것에 의도가 있었나?
“정장 일색인 국회의원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 국회가 시민을 닮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느린 것 같았고, 그게 딱딱한 옷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사실 정장도 입었는데(다른 의원들과) 똑같으니 주목을 못 받은 것뿐이다.”
 
노동자 작업복을 입었던 건 의미가 또 달랐을 것 같다.
“그건 관행을 깨기보다 직관적으로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정의당은 의석수가 6석뿐이니 숨만 쉬어도 카메라가 오는 당은 아니다. 내용이 정해지면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한다. 노동자들도 공감하고 옷을 보내주셨다. 약자가 자기 이야기를 전하려면 고생해야 한다. 단식이라도 해야 기사 한 줄 나갈 수 있다. 옷 입는 것으로 더 많은 분이 우리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방식이다.”
 
‘의상 정치’ 효과를 봤나?
“많은 분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관심을 가져주셨다. 옷 때문만은 아니지만, 보도를 많이 해주셔서 좋다.”
 

약자 목소리 전하려고 작업복 입고 등원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류호정 의원이 9월 1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오종택 기자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류호정 의원이 9월 1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오종택 기자

법안 통과를 낙관하고 있나?
“더는 외면하기 어렵다고 본다. 내용이 최대한 정의당 안이 반영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죽음을 막기 위한 것이지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게 아니다. 지금 안에서 더 후퇴해서도, 법 제정을 더 늦춰서도 안 된다.”
 
의정활동은 익숙해졌나?
“생활패턴은 익숙해졌는데 바뀌는 게 느린 것 같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겠지만, 세상이 빨리 바뀌질 않는다.”
 
뜨거운 정치 이슈를 논하는 의회 테이블에 정의당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교섭단체가 아니라서 안 끼워준다.”
 
양당 위주로 정치 협상이 이뤄진다. 찬반을 선택해야 할 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나?
“정의당의 강령을 기준으로 삼는다. 더는 ‘민주당 이중대’라는 말은 없었으면 좋겠다. 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고 총선을 독립적으로 치르면서 정의당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말로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우린 정의당의 가치관대로 가는구나, 라는 걸 보여줄 거다.”
 
민주당과 일부 지지층이 겹친다. 민감한 이슈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을 텐데.
“쟁점 사안도 결국은 정의당의 기준으로 판단할 거다. 상황별로 판단하면 목적과 수단이 바뀐달까, 소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조문 거부로 당원들로부터도 비난이 쏟아졌는데) 저는 당시 2차 가해가 걱정됐고, 피해자와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추모하면 안 된다거나 추모와 연대를 분리해야 한다고 말한 게 아니다. 자극적인 이야기만 타이틀로 나갔다.”
 
정의당의 5대 입법 과제 중 류 의원이 젠더 분야를 맡은 건가?
“강간법 개정 후속 법안으로 2차 피해 방지법을 준비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는 1차보다 2차 피해에 더 노출될 때가 많다. 직장 동료나 상사, 수사기관에 의한 2차 피해도 상당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수사기관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당시를 재현해서 찍어 오라고 했다는 거다. 이것 말고도 데이트폭력 방지법도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젠더폭력 3법’이다.”
 
게임회사에 다닌 경력 때문에 게임업계를 대변할 거란 예상도 많았다.
“정의당의 슬로건은 노동자의 힘, 시민의 꿈이다. 권력이 없는 사람을 대변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키워드로 하면 여성, 청년, 노동이 있겠다. 양당이 살피지 못하는 분들을 우리가 찾아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힘을 느낀 적이 있었나.
“국정감사 때 국회사무처의 비정규직 실태를 점검해봤더니 정보통신 분야의 국회 노동자 정규직 전환이 지지부진한 상태더라. 그래서 간담회를 했더니 대화가 진전되기 시작했다. 내년에 전환하겠다면서 예산도 반영을 안 했길래 지적했더니 예산을 반영하고, 상용 노동자로 전환하기로 했다. 제스처 하나 했을 뿐인데.”
 
정의당뿐만 아니라 이전의 진보 정당들은 하나같이 집권당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현실은 교섭단체에도 들지 못한 상황이다. 외연 확장이 더딘 원인을 뭐라고 보나?
“우리가 어렵게 말하는 것 같다. 아직도 진보정당은 전태일 평전 정도는 읽었어야 할 것 같고, 벽이 있다. 사회적 약자와 서민을 위한다면 일상적 언어로 쉽게 다가가야 한다. 외적으로는 선거제도나 구조의 문제도 있다고 본다.”
 
외적인 요인이라면?
“교섭단체가 아니어서 논의 테이블에 못 들어서 국민에게 다가가는 데 한계가 있다. 상설 상임위가 18개인데 우린 6명뿐이다.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이 생기고, 한 의원이 여러 상임위를 맡아야 한다. 저도 산자위 외에 과방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도 대응하고 있다. 과부하가 걸리니 심각한 경우에는 현안을 놓치는 상황도 생긴다. 교섭단체 기준을 낮추는 식으로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일하는 국회 만든다더니 ‘추미애·윤석열’만 남았다”

지난 선거법 개정의 의미 중 하나가 양당 구도를 깨고 국회를 다양화하려는 취지도 있었다고 본다. 성과가 있었다고 보나?
 
“국회 구성원의 성비와 연령대를 살펴보니 지난 국회와 비교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국회 평균 연령이 55.5세였는데 지금은 54.9세다. 여전히 남성이 80% 이상이고, 20~30대 의원은 다 합쳐서 14명이다. 말만 무성했지 나아진 게 없다.”
 
젊은 의원끼리 소통하고 있나?
“40대까지 참여하는 청년포럼이 있다. 지향하는 게 달라서 일치된 의견을 내긴 어렵지만, 조금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는 있다. 사소한 유머코드도 맞고. 제가 속한 산자위의 어느 의원님이 ‘산자위는 산자들의 위원회’라고 하시더라. 적어도 그런 ‘부장님 개그’는 안 들을 수 있다.”
 
국회의 협치 수준은 어느 정도로 평가할 수 있나?
“협치는커녕 21대 국회 시작 전에 일하는 국회가 되자고 했는데 그마저 잊은 건 아닌가 싶다. 마치 윤석열과 추미애만 남은 듯한 상황이 몇 달째 지속하고 있다. 거기에 쏟는 시간만큼 민생에 노력을 들이고 있나? 아니다. 그럴수록 정치혐오가 심해질 거다.”
 
검찰개혁도 정치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 아닌가.
“개혁을 반대할 사람은 없겠지만 총장을 자를 거냐, 장관을 해임할 거냐가 검찰개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검찰의 수사 관행을 고치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편가르기만 해오지 않았나. 그런 모습에 국민이 많이 지쳐가고 있단 생각이 든다. 다음 달 월세, 교육비, 취업, 고용유지 걱정… 말 그대로 ‘먹고사니즘’에 대한 걱정이 가득한데 국회가 정말 우리 문제에 신경을 쓰는지 의심을 하는 이들이 많아질 거다.”
 
류 의원은 아직 20대다. 청년 세대의 정서를 공유하는 그에게 청년으로서의 솔직한 마음이 궁금했다. 화제가 청년으로 옮아가자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청년들의 자존감이 낮아지고 무기력해지는 분위기가 느껴지나?
“자살률도 높아지고 있고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 세대는 경쟁만 요구받으며 자랐다. ‘다 네가 노력하지 않아서 그래’라는 말을 들으면서 말이다. 인생의 모든 단계가 경쟁으로 결정된다. 그런데도 윗세대들은 ‘사회는 다 노력이고, 경쟁이야’라고 말하니 의지하고 기댈 데가 없어 고립감을 느끼는 거다. 청년들이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만든 구조를 봤으면 좋겠다. 이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고 본다. 코로나19가 그 화두를 던졌다. 최소한의 삶은 보장받아야 하지 않나.”
 
부모 세대는 청년들의 정서가 쉽게 피부에 와닿지 않을 거다.
“부모님들은 옛날에는 열심히 하면 됐다고 말씀하신다. 때가 되면 진학하고, 취업하고,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말 그대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부모님 세대가 말하는, 열심히 공부해서 적당히 취업하고 결혼하면 잘사는 거다, 라는 말은 우리 세대가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10억원짜리 집에 사는 부모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집에 사는 사람이 있다 치자. 10억원이면 수도권일 테고, 1000만원에 30만원이면 지방일 거다. 두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능력이 똑같다고 했을 때, 자기 방에서 좋은 교육기기를 갖고 공부하는 친구와 자기 방 없어서 형제와 지지고 볶아야 하는 아이가 똑같은 학업 성취도를 가질 수 있을까? 대학에 가도 후자는 학자금 대출도 받아야 하고 고시원 월세도 내야 하니 알바를 안 할 수 없다. 시작이 다른데 어떻게 개인의 노력으로 책임을 돌릴 수 있겠나.”
 

부모 세대의 평범한 삶, 청년에겐 사치일 뿐

류호정 의원이 10월 28일 국회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 입장 때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 정의당

빈곤의 대물림은 과거에도 있었다.
“전보다 심해졌고, 극복할 수 없게 되어가는 게 문제다. 간신히 취업한 일자리의 고용 안정성은 줄어든다. 삶의 불안감을 늘 갖고 있어야 하니 정착할 수도 없다. 삶의 단계는 계속 미뤄진다. 산재 사망 1위, 노인 빈곤 1위, 자살률 1위, 출산율 꼴찌. 이런 지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사회다.”
 
플랫폼 노동자의 애석한 죽음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노동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하는 시점이 왔다. 기존의 개념에 욱여넣을 게 아니다. 노동이라고 하면 대기업 중심, 제조직군, 중장년층 남성을 떠올리는데 그런 키워드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노동자는 결국 일하는 시민이고, 그중에 아직 노동자로 불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노동자의 개념을 넓혀 품어야 한다. 과거에 모든 사람이 시민권을 보장받지 못하던 시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 아닌가. 마찬가지로 일하는데 노동권이 없다고? 이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회가 돼야 한다. 전태일 3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이 모든 게 노동의 개념을 바꾸는 시대에 필요한 과제다.”
 
정치하는 청년으로서 또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래도 혼자는 아니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은 짜증만 유발한다. 국회의원의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할 거다.”
 
정치는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계속할 거다. 정의당이 집권여당 될 때까지.”
 
정의당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노회찬, 심상정이다. 이들의 후광을 어떻게 극복할 건가?
“해내야 할 부분이고 고민 많이 한다. 좀 더 일상적인 언어로 대중에게 다가갈 것, 교섭단체 위주의 제도를 개혁할 것, 선거법 개혁 이뤄낼 것, 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 단지 정의당만 위한 게 아니라 국회 내 다양성이 늘면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실제로 국회가 다양해지면 민생이 나아진다.”
 
비례대표직은 시한이 정해져 있다. 정치의 꿈을 펼치려면 기반이 필요하다. 대개 그 기반은 지역구를 중심으로 마련된다.
“지역구에서 당선돼야 한다. 이건 정의당 의원으로선 사명이자 의무다. 지난주 금요일(12월 4일) 분당 사무실 랜선 개소식을 했다. 분당에 지역 사무실을 열어 분당 주민들과 소통해나갈 생각이다. 당에서 지역구 돌파를 사활로 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류 의원의 고향은 경남 창원이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고향에 있다가 대학에 진학하고 판교의 게임회사에 취업하면서 2015년부터 성남에 살고 있다.
 
진보정당의 한계를 극복할 혁명적 아이디어는 없을까.
“지지받는 만큼 일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연동형 비례제라든가, 쉽게 동의를 얻긴 어렵지만 인구수가 늘어난 걸 고려해 국회의원 수를 늘릴 필요도 있고. 나이도 좀 더 내려야 한다. 돈도 문제다. 있는 사람만 정치하도록 하는 문제들을 고치면 되지 않을까?”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