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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쓴 산타, 캐럴도 금지…세계 곳곳 봉쇄 속 조용한 '코로나 성탄'

중앙일보 2020.12.25 17:45
꺾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에 전세계가 유례없이 조용한 성탄절을 보내고 있다.  
24일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서 열린 성탄 전야 미사. [로이터=연합뉴스]

24일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서 열린 성탄 전야 미사. [로이터=연합뉴스]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은 24일(현지시간) 오후 7시 30분 성탄 전야 미사를 시작했다. 밤 10시 이후에는 통행이 금지돼 예년보다 2시간 앞당긴 것이다. 예년에 1만명에 이르던 미사 참석자 수도 100명 안팎으로 제한했고, 성당 중앙제대 대신 뒤편에서 조촐하게 진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에서 코로나19 사태 속에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나가자고 당부했다. 
 
전 세계 곳곳의 성당과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 합창을 금지했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이달 초 녹화해 둔 ‘무관중’ 합창 공연으로 성탄 행사를 대신했다. 성가대 인원은 20명에서 8명으로 축소됐고, 성가대는 방역수칙에 따라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합창했다.
 
12월 초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성가대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고 있다. 성가대는 방호복과 안전모 차림으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징글벨' 등 캐럴을 불렀다. [AP=연합뉴스]

12월 초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성가대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고 있다. 성가대는 방호복과 안전모 차림으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징글벨' 등 캐럴을 불렀다. [AP=연합뉴스]

미국의 많은 교회도 합창 대신 녹음된 찬송가를 틀고, 마스크를 쓴 채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도록 했다. 그리스는 성탄 전야에 어린이들이 각 집을 돌며 합창하는 전통 공연을 취소했다.
 

영국 시민, 종소리로 안부 물어 

변종 코로나가 확산하고 있는 영국에선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현실이 됐다. 이날 런던에 이어 잉글랜드 동부와 남동부 지역까지 코로나19 대응 4단계가 적용되면서 영국 시민 상당수가 집밖에 나오지 못했다. 
지난 23일 코로나19 대응 4단계 조치가 내려진 런던 옥스퍼드 거리가 한산하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3일 코로나19 대응 4단계 조치가 내려진 런던 옥스퍼드 거리가 한산하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왕실도 오랜 전통을 포기했다. 왕실 가족들은 해마다 노퍽주 샌드링엄 별장에 모여 함께 성탄절을 보냈지만, 올해는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윈저성에서 남편 필립 공과 함께 머무르고 성탄 예배도 가지 않을 계획이다. BBC에 따르면 왕실 성탄 모임의 전통이 깨진 건 1988년 이후 처음이다.  
 
최악의 상황이지만 희망의 노래도 흘러나왔다. 이날 오후 6시 영국 시민들은 문밖으로 나와 2분 동안 종을 울리거나 냄비를 두드렸다. 노스요크셔에 사는 베그 레이드의 제안으로 열린 ‘월드와이드 크리스마스이브 징글’ 깜짝 행사였다. 
영국에서 24일 오후 6시 종소리를 울리는 '월드와이드 크리스마스 이브 징글' 깜짝 행사가 열렸다. 영국인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종을 울리는 모습을 공유했다. [worldwide christmas eve jingle 페이스북 캡처]

영국에서 24일 오후 6시 종소리를 울리는 '월드와이드 크리스마스 이브 징글' 깜짝 행사가 열렸다. 영국인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종을 울리는 모습을 공유했다. [worldwide christmas eve jingle 페이스북 캡처]

 
레이드는 다 함께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행사를 기획했다. 영국 전역에서 50만 명이 참가했고 사람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종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레이드는 “올해는 이웃을 돌아보라는 크리스마스의 정신이 더 절실하다"면서 "종이 울리는 2분 만큼은 아무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파우치 랜선 팔순 잔치, 산타 마스크 쓰고 선물 배달

크리스마스 전날 80세 생일을 맞은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은 랜선(비대면) 잔치를 열었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24일 온라인으로 팔순 생일 잔치를 열었다. [AP=연합뉴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24일 온라인으로 팔순 생일 잔치를 열었다. [AP=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파우치 소장은 워싱턴 DC 집에서 아내 크리스틴 그래디와 조용히 생일을 보내기로 했다. 대신 아내 그래디가 파우치 소장 몰래 친구들을 화상 전화 플랫폼인 '줌'(Zoom)으로 불러 깜짝 생일잔치를 열어줬다고 한다. 
 
트위터에는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해피 버스데이 파우치’ 해시태그가 넘쳐났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부부는 영상을 통해 직접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파우치 소장은 “사람들에게 명절 여행을 자제하라 했는데, 정작 내가 이를 어기는 공무원 중의 한 명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미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 홈페이지에서 추적 중인 가상의 산타클로스 위치. [NORAD 홈페이지 캡처]

미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 홈페이지에서 추적 중인 가상의 산타클로스 위치. [NORAD 홈페이지 캡처]

 
축제 분위기를 잠재운 코로나19였지만, 산타클로스는 막지는 못했다. 미국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는 올해도 어김없이 홈페이지를 통해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산타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가상의 위치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했다. 65년째 이어지고 있는 전통이다. 예년과 다른 건 전세계를 누비는 산타가 마스크를 쓴 것으로 묘사됐다는 것이다.   
 

"집에 머무르라" 당부에도 美 여행객 최고치 기록 

전 세계가 격리된 채 성탄절을 보내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성탄 연휴 직전 항공기 이용객 수가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교통안전청(TSA)에 따르면 23일 하루 119만 1123명이 항공기를 탔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최고치였던 추수감사절 직후(11월 29일 117만6091명)를 뛰어넘었다. 
 
미국에서는 지난 14일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성탄절 연휴 여행객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효과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며 성탄절 연휴 여행을 자제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이동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국 시카고 오헤어 공항을 찾은 여행객들. [AFP=연합뉴스]

미국 시카고 오헤어 공항을 찾은 여행객들. [AFP=연합뉴스]

이에 성탄절 연휴 이후 또다시 확진자가 급증할 것이라는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로버트 레드 필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내년 2월까지 미국 공중보건 역사상 가장 힘든 겨울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날 캘리포니아 주에서만 누적 확진자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 전 세계에서 누적 확진자 수가 200만 명을 넘어선 국가는 미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프랑스, 영국, 터키, 이탈리아 등 8개국뿐이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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