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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권자 사과는 상황정리 뜻...秋 후임인선 빨라질 듯”

중앙일보 2020.12.25 17:18
청와대는 깊은 충격에 빠졌다. 25일 청와대 주요 참모들은 침묵했다. 전날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를 법원이 중단시킨 상황에 대해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청와대의 공식 반응은 오후 2시 20분에서야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윤석열 사태와 관련해 "인사권자로서 국민께 사과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법원이 윤 총장에 대한 '2개월 정직'을 무효화한지 하루만에 나온 반응이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윤석열 사태와 관련해 "인사권자로서 국민께 사과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법원이 윤 총장에 대한 '2개월 정직'을 무효화한지 하루만에 나온 반응이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강민석 대변인을 통해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결과적으로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지난 16일 윤 총장 징계안을 재가할 때 “국민께 매우 송구하다”고 했던 것보다 높은 수위다.
 
특히 ‘인사권자’라는 표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문 대통령 스스로 법원이 제동을 걸 정도로 잘못된 인사권을 행사했음을 시인했다는 의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권자라는 표현에는 임면(任免)의 의미가 모두 포함돼 있다”며 “대통령이 직접 갈등을 이쯤에서 마무리짓고 상황을 수습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받아들여달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여권에서는 이미 사퇴의 뜻을 밝힌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대한 후임 인선이 빨라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내년 1~2월로 예상되는 중폭 이상의 개각에 앞서 추 장관만을 대상으로 한 원포인트 개각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1년간 끌어온 ‘추미애·윤석열 충돌’은 윤 총장의 완승으로 막을 내릴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이 때문에 이날 검찰에도 당부의 메시지를 냈다. “법원의 판단에 유념하여 검찰도 공정하고 절제된 검찰권 행사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범죄정보 외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사찰한다는 논란이 더 이상 일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판사 사찰은 윤 총장에 대한 주요 징계 사유였다. 법원 역시 전날 판결에서 “문건이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법무부와 검찰은 안정적 협조관계를 통해 검찰개혁과 수사권 개혁 등의 후속조치를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검찰개혁의 동력이 이미 상실됐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10일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본회의에 입장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위선정권 막장정치 민주당에 경고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10일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본회의에 입장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위선정권 막장정치 민주당에 경고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당초 청와대 인사들은 ‘2개월 정직’을 “신의 한수”라고 주장했다. 해임ㆍ면직이 아닌 경징계에 대해선 법원이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청와대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에 앞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유죄를 선고 받은 것도 청와대에겐 심란한 결과다. 여권은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과잉ㆍ표적 수사”로 규정하고 ‘윤석열 찍어내기’의 근거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법원은 당시 수사가 정당했다고 결론내렸다. 법원발 ‘2연타’를 맞은 청와대에선 “이제 플랜B도 없다”는 푸념이 나왔다.
 
장승진 국민대 교수(정치학)는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타이밍이 있었는데, ‘손에 피 묻히기’를 싫어하는 문 대통령의 스타일 때문에 지지부진하게 끌고와버렸다”며 “대통령뿐 아니라 여권도 180석 의회권력으로도 아무 것도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지지층 이탈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상황이 이지경까지 왔는데 청와대에서 아무도 책임진다는 사람도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지금까지 핵심 참모들이 대통령 앞에서 ‘좋은 소리’만 해오고 직언은 다 막아왔다”며 “좋을 때는 그렇게 말이 많던 사람들이 다 뒤로 물러나 ‘나몰라라’하며 대통령의 등만 떠미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인사는 “부동산 논란으로 리더십이 무너진 노영민 비서실장부터 미리 쳐냈어야 했다”며 “‘불명예 제대’를 막는 것도 좋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대통령의 소극적 인사 스타일도 영향을 준 것 같다”고 했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의 일러스트. 연합뉴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의 일러스트. 연합뉴스

 
문제는 ‘윤석열 사태’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24일 코로나 확진자는 1241명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백신 확보에 차질이 확인된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전환까지 논의된다. 3단계는 사실상 경제의 셧다운이자 정부의 방역 실패를 자인하는 모양새다. 청와대 관계자는 “만약 3단계가 결정될 경우 문 대통령이 직접 사과 성명이나 담화를 내야한다는 논의가 있었다”며 “이와 별도로 코로나와 백신 도입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방송 대담 등으로 직접 해명하는 방안 역시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에대해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운동권 특유의 문화에 젖은 참모들이 비판에 귀를 막고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만들었다”며 “당장 비서실장ㆍ정책실장을 비롯한 전체 참모진부터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어떻게 자기들 살겠다고 백신 대란의 책임을 정은경 질병청장에게 떠넘기는 그림을 그릴 수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변창흠 국토부장관 후보자도 또다른 악재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경기 화성시 LH 임대주택 100만호 기념단지인 동탄 공공임대주택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당시 LH 사장)와 함께 임대주택 단지 모형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경기 화성시 LH 임대주택 100만호 기념단지인 동탄 공공임대주택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당시 LH 사장)와 함께 임대주택 단지 모형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물론 정의당까지 변 후보자 임명에 반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스타일상 야당이 청문보고서 채택에 응하지 않더라도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과거에 대통령 지지율이 높을 때는 일방적으로 임명하더라도 부작용이 적었지만, 현 시점에선 그런 식의 일방 통행이 정권의 ‘불통’ 이미지를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윤석열ㆍ백신ㆍ변창흠 리스크를 거치며 대통령 지지율이 35%를 지키지 못할 경우 확실한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의 전조가 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배 소장은 “특히 수도권 민심이 크게 돌아설 경우 내년 보궐선거는 물론 곧바로 이어질 차기 대선 구도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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