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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피자박스"…백신접종 열흘, 병원서 웃음소리 들렸다

중앙일보 2020.12.25 05:00 종합 4면 지면보기
지난 17일 화이자-바이오앤텍의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맞은 미국 볼티모어 시나이종합병원의 에스티 샤벨먼 부원장은 "독감 예방주사와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나이병원]

지난 17일 화이자-바이오앤텍의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맞은 미국 볼티모어 시나이종합병원의 에스티 샤벨먼 부원장은 "독감 예방주사와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나이병원]

22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볼티모어 시나이 종합병원에는 여전히 코로나19 환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의료진의 분위기는 몇주 전 방문 때와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독감 주사와 비슷, 두시간여 팔 뻐근"
신청 받자마자 대부분 접종 지원
끝없는 확진자에 의료진 '번아웃' 상태
백신 도착한 뒤 낙관적인 분위기 퍼져
일반 국민들도 "빨리 맞겠다" 응답 늘어

분위기를 바꾼 건 지난주 병원에 들어온 화이자-바이오앤텍의 코로나19 백신이다. 첫 번째 접종을 무사히 마치면서 긴장하던 의료진들 사이에선 조금씩 안도감과 낙관론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병원의 에스티 샤벨먼 부원장은 "코로나19 백신의 초기 접종자 중의 한 명이 된 게 자랑스럽다"면서 "지금 병원 내에 낙관적인 분위기와 감사한 마음이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최고의료책임자(CMO)인 샤벨먼은 백신을 맞은 지 닷새가 됐다. 그는 "그냥 독감 예방주사 맞는 것 같았다"면서 "2시간 정도 팔이 뻐근하고는 그게 전부였다"고 했다.
 
이날까지 350명 정도의 의료진이 백신을 맞았고 지금도 백신이 들어오는 대로 접종을 진행하고 있다. 일부에서 나타난 어지럼증이나 알레르기 반응 같은 부작용도 이 병원에선 보고된 바 없다고 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볼티모어 시나이종합병원에서 만난 에스티 샤벨먼 부원장은 지난주 화이자-바이오엔텍의 코로나19 백신이 들어온 뒤 ″병원 내에 낙관론과 감사한 마음이 퍼졌다″고 말했다. [JTBC 김구슬 PD]

22일(현지시간) 미국 볼티모어 시나이종합병원에서 만난 에스티 샤벨먼 부원장은 지난주 화이자-바이오엔텍의 코로나19 백신이 들어온 뒤 ″병원 내에 낙관론과 감사한 마음이 퍼졌다″고 말했다. [JTBC 김구슬 PD]

화이자 백신은 영하 70도 이하에서만 30일 동안 보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시나이 병원은 대당 2만 달러가 넘는 특수 냉동고 3대를 미리 사놓았다. 보안 규정 때문에 백신 보관실까지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미리 찍어둔 영상으로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백신은 자칫 하나라도 유실될까 조심스럽게 포장된 채 이동됐다. 두꺼운 박스에는 안전하게 옮길 수 있도록 검은 손잡이가 달렸고 내부에는 드라이아이스가 가득 차 있었다. 안쪽에는 내부 온도 정보를 실시간으로 보낼 수 있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도 설치돼 있었다. 
 
안에 있던 또 다른 작은 박스를 꺼내 드니 그 속엔 약병을 빼곡히 담은, 소위 '피자 박스'로 불리는 정사각형의 트레이가 나왔다. '섭씨 영하 74도'라고 적힌 냉동고는 문을 열자마자 차가운 김을 뿜어냈다. 포장이 다 벗겨진 '피자 박스'는 곧장 이 냉동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나이 종합병원 직원이 화이자-바이오엔택의 코로나19 백신을 담은 박스에 있던 GPS 장치를 가리키고 있다. 이동 중에도 내부 온도를 측정해 실시간으로 보낼 수 있는 장치다. [시나이병원]

시나이 종합병원 직원이 화이자-바이오엔택의 코로나19 백신을 담은 박스에 있던 GPS 장치를 가리키고 있다. 이동 중에도 내부 온도를 측정해 실시간으로 보낼 수 있는 장치다. [시나이병원]

시나이 종합병원의 직원이 화이자-바이오엔텍의 코로나19 백신 약병이 들어있는 특수 포장 박스를 꺼내고 있다. 정사각형 모양 때문에 '피자박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나이병원]

시나이 종합병원의 직원이 화이자-바이오엔텍의 코로나19 백신 약병이 들어있는 특수 포장 박스를 꺼내고 있다. 정사각형 모양 때문에 '피자박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나이병원]

시나이 종합병원의 직원들이 화이자-바이오엔텍의 코로나19 백신을 특수 냉동고 안에 집어넣고 있다. 냉동고 문에는 '영하 74도'라고 내부 온도가 표시돼 있다. [시나이병원]

시나이 종합병원의 직원들이 화이자-바이오엔텍의 코로나19 백신을 특수 냉동고 안에 집어넣고 있다. 냉동고 문에는 '영하 74도'라고 내부 온도가 표시돼 있다. [시나이병원]

처음엔 병원 측에서도 직원들에게 접종하라는 이야기를 꺼내기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의료진에 우선 접종한다는 원칙은 이미 세워졌지만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의사·간호사·운전기사·미화원 등 관련 인력 모두를 대상으로 접종 희망자를 받았다. 그런데 신청을 받은 지 한 시간 만에 500명, 이틀 만에 4000명이 지원했다. 
 
소아병동을 책임지고 있는 스콧 크루그먼 부원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코로나19에 걸려 과잉염증반응을 보이는 어린 환자에게 이제 곧 나아질 거라고 선뜻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데이터를 통해 백신의 안전성을 알고 있었기에 부작용을 걱정하진 않았다"면서 오히려 "내가 코로나19에 걸려 당장 병동의 어린이 확진자를 진료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손들고 주사를 맞았다고 했다.  
 
충분한 면역력을 갖추기 위해선 아직 2차 접종이 필요하지만, 벌써 병원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상황이 좀 나아질 만하면 끝도 없이 밀려오는 코로나19 환자에 의사와 간호사 모두 압도된 상태였다.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을 일단 감염자로 간주하고 대해야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이 때문에 병원 내엔 탈진상태(Burnout) 같은 분위기가 있었는데, (백신이 온 뒤) 낙관적인 기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샤벨먼 부원장은 말했다.  
미국 볼티모어 시나이종합병원의 최고의료책임자(CMO) 에스티 샤벨먼 부원장. [김구슬 JTBC PD]

미국 볼티모어 시나이종합병원의 최고의료책임자(CMO) 에스티 샤벨먼 부원장. [김구슬 JTBC PD]

미국 볼티모어 시나이종합병원 소아병동의 스콧 크루그먼 부원장.  [김구슬 JTBC PD]

미국 볼티모어 시나이종합병원 소아병동의 스콧 크루그먼 부원장. [김구슬 JTBC PD]

백신을 맞은 의료진은 소셜미디어에 열심히 '인증 사진'도 올리고 있다고 했다. 백신의 안전성을 알리면서 가짜 정보에도 대응하자는 취지에서다. 의료진들의 이런 노력 때문인지 최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할 의향이 있다는 미국인이 점점 늘고 있다. USA투데이와 서퍽대가 지난 16∼20일 미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조사해 23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기회 되면 빨리 백신을 맞겠다'는 응답자가 46%였다. 지난 10월 말에 했던 같은 조사보다 20%포인트 늘었다.
 
지난 14일 미국에서 접종을 시작한 화이자 백신은 열흘째인 23일 접종 횟수가 100만회를 넘어섰다. 당초 계획했던 속도보다 느리지만 화이자에 이어 모더나 백신이 본격적으로 공급되면서 조금씩 탄력이 붙을 것이란 게 미 당국의 설명이다. 문제는 일반인들이 본격적으로 접종을 받기 전 당장 넘겨야 할올겨울 고비다. 23일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800만명을 넘겼다. 입원 환자는 22일 기준 11만7000여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하루 사망자도 3400명에 달했다.  
 
샤벨먼 부원장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백신 접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신이 모든 걸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19에 대한 '끝의 시작'인 것은 분명하다.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백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다만 백신으로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는 있지만, 아직 다른 이에게 옮기지 않는지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가는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마스크 쓰기와 거리 두기가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볼티모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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