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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때 해외에 백신 '구걸'…백서 내고도 배운게 없다

중앙일보 2020.12.25 00:02 종합 5면 지면보기
정부가 24일 얀센·화이자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계약을 했다고 발표했지만 ‘내년 11월 이전 접종 완료’라는 목표를 달성할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전략 부재가 낳은 참담한 결과다. 백신 실패는 2009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 신종플루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선구매 늦어지며 방역 혼란 반복
당시 국산 개발 성공해 위기 모면
백신 700만명분 남아 감사 불똥
전재희가 방어, 실무자 징계 면해

신종플루는 2009년 4월 발생했고, 백신과 치료제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신종플루 대응 백서에 따르면 “선구매나 장기 구매계약 제도가 미비해 초기 백신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돼 있다. 코로나19와 비슷하다. 2009년 6월 말 기준 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영국 등은 인구의 100%가 맞을 수 있는 물량을 사전에 확보했다. 한국은 2.7%였다. 다국적 백신기업 박스터는 7월 말 백신을 처음 생산했고, 중국은 자국 기업인 시노백이 제조한 백신을 9월 승인했다. 미국·유럽연합도 GSK·노바티스 등의 백신을 승인했다.
 
한국도 급해졌다. 그해 8월 말 이종구(서울대 의대 교수) 질병관리본부장이 벨기에 GSK·사노피파스퇴르를 방문해 백신 공급을 사정했다. GSK의 300만 도즈 공급 약속을 받았다. 사노피파스퇴르는 입도선매가 끝난 상황이었다. 당시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과 이 본부장이 중국에 가 500만 명분의 백신을 공급받는 구두 약속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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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결은 다른 데서 나왔다. 마침 2009년 7월 전남 화순에 녹십자 백신공장이 준공됐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신종플루 균주를 받아 개발에 성공해 10월 하순 접종을 시작했다. 녹십자 물량이 충분해 외국 백신은 도입하지 않게 됐다. 한편으로 타미플루 확보에 전력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용으로 이미 개발돼 있던 획기적인 항바이러스 약이다. 복지부·질병본부 공무원들이 호주·일본·중국·이탈리아·스위스 등지로 흩어져 타미플루를 구했다. 전병율 차의과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타미플루 1000만 명분을 확보할 때 전재희 장관과 이종구 본부장이 청와대에 들어갔고, 이명박 대통령의 까다로운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설명을 다 듣고 이 대통령이 2500억원을 내줬다”고 말했다. 백신과 타미플루 투 트랙 작전 덕분에 그해 11월께 신종플루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코로나19는 상황이 다르다. 제대로 된 치료제가 아직 없다. 백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어서 국산 백신은 아직 어림도 없다. 신종플루 백신은 독감 백신을 변형한 것이어서 상대적으로 덜 어려웠다. 신종플루 때 해외 백신 도입 시동을 다소 늦게 걸었는데, 이번에도 훨씬 늦었다.
 
이번에는 트라우마(정신적 상처)가 공무원의 손발을 묶었다. 신종플루 백신 2400만 명분 중 700만 명분(약 700억원어치)이 남았다. 감사원은 이듬해 스위스 WHO에 파견 나가 있던 공무원을 소환해 백신 물량 추계 오류를 따졌다. 징계 직전까지 갔으나 전재희 장관이 커버하면서 모면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코로나19 백신이 남아도, 모자라도, 비싸게 사도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한다. 메르스 때는 일 안 한 공무원은 처벌 받지 않았고, 반대는 징계 받았다. 정기석 교수는 “이번에 장관이나 총리가 ‘백신 확보 과정에서 책임질 일이 생기면 내가 진다’고 했어야 한다. 정무직 공무원이 원래 그런 일을 하는 것”이라며 “감사 받고 추궁당한 경험만 잘못 축적됐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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