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5)
딸의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는데, 사위는 지방에서 근무하는 관계로 진통이 오면 우리 부부가 챙겨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언제 갑자기 진통이 올지 몰라 항상 긴장한 마음으로 대기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4시쯤에 전화벨이 울렸다. 딸의 전화라는 예감이 들어 즉시 휴대전화를 집었다. 2시부터 진통이 있었다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여행용 가방에 출산 준비물을 챙겨놓고 그 시각에 식탁에 앉아 시리얼을 우유에 타서 먹으며 웃고 있다.
생각과는 달리 여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큰 수박을 배 안에 넣고 있는, 펭귄 같은 모습의 딸을 차에 태우고 병원에 도착했다. 분만실에 들어간 다음 조금 지나자 멋쩍게 웃으며 나오더니 의사 선생님이 “집에 돌아가 있다가 진통이 더 자주 오면 오라”고 했단다. 둘째 아이 출산인데도 긴장이 되는 데다 기약 없이 힘든 시간을 더 견뎌야 하는 모양이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그랬을까?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 영광은 없다고 하지만 출산할 때 딸의 산고를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갓 태어난 손자. [사진 조남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2/24/abc1bd25-8511-4f98-b6cc-a323a0a14148.jpg)
갓 태어난 손자. [사진 조남대]
오후 5시 반쯤 진통이 5분 간격으로 온다고 다시 연락이 와서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분만실로 들어간 후 조금 있다 간호사가 나오더니 입원해야 한다고 한다. 이제 아기가 태어날 기미가 보이는 모양이다. 아내도 분만실로 들어가고 나만 복도에 앉아 있다. 자식이 태어날 때보다 더 긴장되면서 당시 모습이 떠오른다.
첫째인 아들을 낳을 때는 1985년도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때라 사무실에서 병원으로 가는 길이 시위 군중으로 막혀 출산하고 난 다음에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가자 처 외숙모가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한참 지나자 산모와 아들을 보여주었다. 갓 태어났는데도 나를 보더니 눈을 뜨고 윙크를 하는 듯했다. 지금 산고를 겪고 있는 딸을 낳을 때는 크리스마스 날이었는데 아침을 먹고 난 후 아내가 진통이 온다고 하여 20여 분 거리의 병원을 걸어서 갔다. 그때는 남편도 분만실에 출입이 안 돼 아내를 혼자 들여보내고는 ‘의사 선생님이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복도에서 잡지를 보며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쁜 공주가 태어났다고 했다. 온돌로 된 입원실에서 산모, 아기, 3살짜리 아들과 한방에서 이틀 밤을 지냈다.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아내는 출산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그 힘든 고통을 참으며 자식을 낳았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은 복도에서 잡지만 뒤적이고 있었다”라며 핀잔을 준다. 그 당시 왜 솔직하게 이야기해 기억력이 좋은 아내에게 평생 꼬투리를 잡혀 꼼짝 못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산모도 아기도 건강하다고 해 안심이 되었다. 힘들고 지독한 산고를 견디고 아기를 낳는 엄마는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pixnio]](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2/24/a910e0f4-2ebf-4341-97d6-685a792b5130.jpg)
산모도 아기도 건강하다고 해 안심이 되었다. 힘들고 지독한 산고를 견디고 아기를 낳는 엄마는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pixnio]
딸이 출산기가 있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방에서 근무 중이던 사위가 헐레벌떡 도착했다. 사위에게 상황을 설명해 준 다음 분만실로 들여보내고 우리 부부는 복도에 계속 있을 수가 없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 6시 반쯤 전화가 울린다. 손자가 태어났단다. 입원한 지 12시간 만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산모도 아기도 건강하다고 해 안심이 되었다. 힘들고 지독한 산고를 견디고 아기를 낳는 엄마는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딸이 더욱 대견해 보였다. 결혼하고 이듬해 첫 딸을 낳고, 두 살 터울로 아들까지 낳은 것이다. 맏며느리인 딸의 아버지로서 한시름 놓인다.
둘째 손주 탄생으로 할아버지라는 말이 좀 더 친숙해지는 것 같다. 첫 손녀가 태어났을 때는 할아버지라고 불리니 어색하고 쑥스러웠지만, 이제는 손녀가 ‘할부지’ 하고 부르는 소리가 정겹다. ‘할부지’ 라는 멋진 이름을 선물해 준 딸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