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이달의 전쟁 영웅'으로 되살아난 '크리스마스 기적'

중앙일보 2020.12.24 11: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90)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만든 주인공이 올해 ‘6‧25 전쟁영웅’으로 되살아났다. 국가보훈처는 고인이 된 레너드 라루(1914~2001) 미국 선장을 12월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50년 12월 22일 밤 흥남부두. 살을 에는 한겨울 바닷바람 속에 부두를 가득 메운 피난민은 모두 초조한 모습이었다. 항구에는 7600t 화물선 매러디스 빅토리호가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정박하고 있었다. 정원 60명에 승조원 47명이 탑승했고 남은 자리는 13명이었다.
 
2020년 12월 전쟁영웅 레너드 라루 선장 포스터. [사진 국가보훈처]

2020년 12월 전쟁영웅 레너드 라루 선장 포스터. [사진 국가보훈처]

 
국군과 유엔군은 당시 38선을 넘어 북진했지만 중공군 개입과 매서운 추위로 전황이 불리해져 배편으로 철수하는 흥남철수작전을 계획했다. 12월 15일부터 12월 24일까지 군인과 피난민, 군수물자를 선박을 통해 이남 지역으로 철수하는 계획이었지만 군인과 피난민을 태우기에는 선박이 턱없이 부족했다. 35세 레너드 라루는 당시 흥남철수작전에 선장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라루 선장은 부두에 떼를 지은 피난민의 처참한 광경을 내려다보다 마침내 용단을 내린다. “배에 실려 있는 무기와 물자는 모두 버려라.” 피난민을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승조원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피난민을 태울 수 있는 데까지 태워 보자! 가급적 많이.”
 
레너드 라루의 선장과 수사(오른쪽) 시절 모습. [사진 가톨릭 대구대교구]

레너드 라루의 선장과 수사(오른쪽) 시절 모습. [사진 가톨릭 대구대교구]

 
선장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피난민이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군수품을 싣기로 했던 화물칸은 피난민으로 가득했고 갑판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피난민도 자신의 짐을 하나씩 바다에 버리며 더 많은 사람이 탑승할 수 있도록 도왔다. 탑승은 16시간이나 이어졌다. 긴 탑승 끝에 매러디스 빅토리호는 무려 정원의 230배나 되는 1만 4000여 명을 태웠다.
 
마침내 배는 흥남항을 출발했다. 바다에 잠긴 기뢰 수천 개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빅토리호는 멈추지 않고 항해를 시작했다.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공포 속에서 목숨을 건 항해가 3일간 이어졌다. 배 안에서는 운항 중 놀랍게도 5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절망 속에서 새 생명이 피어난 것이다. 195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승선자 1만 4005명은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
 
매러디스 빅토리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기적의 배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레너드 라루 선장은 1955년 흥남철수작전 공로로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레너드 라루의 선장과 수사 시절. [사진 가톨릭 대구대교구]

레너드 라루의 선장과 수사 시절. [사진 가톨릭 대구대교구]

 
라루 선장은 이후 삶도 신앙 안에 머물렀다.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전쟁 피난민을 구출하고 4년이 지나 1954년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소속인 미국 뉴저지주 수도원으로 들어가 마리너스 수사가 된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수도 생활에 정진하다가 2001년 8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마리너스 수사는 생전에 이렇게 회고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1950년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제겐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한 메시지가 다가옵니다.”
 
흥남철수작전 기념비. [사진 Asfreeas on Wikimedia Commons]

흥남철수작전 기념비. [사진 Asfreeas on Wikimedia Commons]

 
거제도포로수용소기념공원에는 인도주의 작전의 뜻을 기억하는 흥남철수작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