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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태아의 생명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중앙일보 2020.12.24 00:30 종합 33면 지면보기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슬기로운 의사 생활’ 자문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슬기로운 의사 생활’ 자문

“제가 죽어도 좋으니 저는 아기를 낳고 싶습니다.”
 

여성의 선택권 존중해준다지만
입법 부작용, 여성에게 갈 수도

심한 폐동맥 고혈압을 앓던 임신 14주의 산모가 진료실에서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성 사망 위험성이 상당히 높은 질환으로 임신 20주 이전의 치료적 유산이 고려될 수 있는 대표적 질환이다. 이 산모는 이 질환 때문에 앞선 임신에서 이미 인공 임신 종결을 했었고, 후회와 죄책감에 힘든 시기를 보내다 결국 두 번째 임신했다고 한다. 임신 유지에 대한 어려운 결정은 존중됐으며,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산모가 고비를 넘겨 결국 만삭에 건강한 아기를 낳고 퇴원했다.
 
지난해 4월 인공 임신 중절(낙태)에 대한 법률이 위헌 결정을 받음에 따라 오는 12월 31일까지 관련법을 개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핵심적 위헌 사유였다. 그동안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관점에서 인공 임신 중절의 허용은 임신 10주 이전이어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제시했다. 그러나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 정부는 어떤 이유인지 14주를 기준으로 개정법을 입법 예고했다.
 
20년간 산과 전문의로 일해온 필자는 앞으로 난임 환자는 늘고, 출산율은 줄고,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이 더 감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임 환자는 왜 늘 것인가. 인공 임신 중절의 합병증으로는 출혈·감염, 자궁 천공, 자궁내막 유착 등이 있을 수 있다. 임신 6주 소파(搔爬) 수술 시 출혈량을 1이라고 봤을 때 임신 14주 임신 종결 시에는 10배 이상의 출혈이 발생한다. 예컨대 몇 년 전 수능을 본 여학생이 개인병원에서 임신 종결 후 대량 출혈로 사망했다. 자궁내막 유착은 인공 임신 중절을 시행한 주수가 늦을수록 횟수가 많을수록 위험도가 증가하고 추후 난임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출산율은 왜 감소할까. 요새는 임신 11~14주에 태아의 목덜미 투명대 검사를 시행하는데 두꺼워진 경우 다운증후군 등의 염색체 이상 및 선천성 심질환의 위험도가 증가한다. 그러나 목덜미 투명대가 증가해 있다고 해서 모두 염색체 이상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생명의 관점에서 다운증후군 아기가 태어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법적인 임신 종결 허용 주수가 14주로 정해지는 순간 ‘다운 천사’들을 포함한 많은 생명이 하늘나라로 보내지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목덜미 투명대 검사에서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확률이 5%나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왜 출산율 저하가 초래될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은 왜 감소할 것인가. 발생학적으로 수정 후 8주(임신 10주) 이전인 배아(Embryo) 시기에 주요 장기들이 형성되고 이후 태아(Fetus) 시기에는 성장이 이뤄진다. 수정 후 8주 이후의 태아는 팔·다리가 모두 생겨있고 초음파로도 명확히 보인다. 이런 태아를 인공 임신 중절한다는 것은 의사에게 윤리적인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개정법에서 의사가 수술을 거부할 권리를 언급했지만, 실제로 의료 현장에서 의사의 자율 의지가 얼마나 존중될지는 의문이다. 임신 8~9주 태아의 팔다리가 될 부분이 초음파로 명확히 보인다는 사실을 배운 의대생들이 과연 산부인과를 지원할까.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미혼이건 기혼이건, 염색체 이상이 있건 없건 마찬가지다. 나에게 선택권이 있었을 때 내게로 왔던 생명이 정작 내가 준비됐을 때엔 선택 권리가 나에게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온 생명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 법 개정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특히 여성에게 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슬기로운 의사 생활’ 자문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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