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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기부액만 10억...'대구 키다리 아저씨' 10년 약속 지켰다

중앙일보 2020.12.23 10:27
22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000여만원을 기부한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남긴 메모.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22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000여만원을 기부한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남긴 메모.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10차례 총 10억3500여만원 기부 

22일 오후 대구 동구 신천동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에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화기 너머에서 한 남성이 “오늘 저녁 시간 됩니까? 함께 저녁 식사합시다”라고 말했다. 매년 이맘때 모금회 사무실로 연락하는 이른바 ‘키다리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저녁 약속 장소는 2년 전에도 함께 식사했던 작은 매운탕 집이었다. 대구공동모금회의 이희정 사무처장과 김용수 모금팀장, 김찬희 담당자가 식당으로 들어서자 이미 주차장에는 키다리 아저씨가 타고 온 승용차가 보였다. 10년은 훨씬 지난 승용차다.  
 
 식당 안에는 키다리 아저씨 부부가 먼저 모금회 직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난 후 키다리 아저씨는 낡은 가방에서 5000여만원 어치 수표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메모도 한 장 들어 있었다. “스스로와의 약속인 10년의 기부를 마지막으로 익명기부를 마무리한다”는 내용이었다.
 
 키다리 아저씨는 짧은 시간 모금회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나눔에 대한 사연을 전하기 시작했다. 작은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키다리 아저씨는 경북에서 태어난 후 1960년대 학업을 위해 대구로 왔다. 부친을 여의고 일찍 가장이 되면서 생업을 위해 직장을 다녔다고 한다.
 
 결혼 후 3평(9.9㎡)이 안 되는 단칸방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키다리 아저씨 부부는 늘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해 왔고 수익의 3분의 1을 늘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누는 삶을 이어왔다. 그 후 회사를 경영하면서 많은 위기도 있었고, 그때마다 기부를 중단하기를 권유하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라며 나눔을 멈추지 않았다.
 
 키다리 아저씨의 부인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기부할 때에는 남편이 키다리 아저씨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며 “어느 날 신문에 키다리 아저씨가 남긴 필체를 보고 남편임을 짐작해 물어보고 알게 됐다”고 전했다. 이를 알게 된 자녀들도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손주 또한 할아버지를 닮아 일상생활 속에서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고 한다.
 
 키다리 아저씨는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며 “앞으로 더 많은 키다리 아저씨가 탄생해 더불어 함께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2012년 1월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 익명으로 1억원을 전달하며 첫 나눔을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근처 국밥집에서 1억2300여만원을 전달했다. 2013년 1억2400여만원, 2014년 1억2500여만원, 2015년 1억2000여만원, 2016년 12월에도 1억2000여만원을 전달했다. 2017년과 2018년에도 각각 1억2000여만원을 기부했다.
 
 지난해엔 ‘금액이 적어서 미안합니다. 나누다 보니 그래요’라고 적힌 메모 한장과 2300여만원 상당의 수표가 든 봉투를 냈다. 이번에 5000여만원을 기부하며 익명의 기부를 마무리했다. 키다리 아저씨가 2012년부터 10차례에 걸쳐 기탁한 성금은 10억3500여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12월 23일 대구의 '키다리 아저씨'로 불리는 60대 익명 기부자가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 2300여만원과 메모. 메모에는 '금액이 적어서 미안합니다. 나누다 보니 그래요'라고 적혀 있다. [사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난해 12월 23일 대구의 '키다리 아저씨'로 불리는 60대 익명 기부자가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 2300여만원과 메모. 메모에는 '금액이 적어서 미안합니다. 나누다 보니 그래요'라고 적혀 있다. [사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그는 모금회 측이 제안한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가입도, 감사 표창도 거절했다. 공동모금회 직원들은 “표시를 낼 만도 한데 이웃만 도우려고 한다”고 했다.  
 
 이희정 사무처장은 “오랜 시간 따뜻한 나눔을 실천해 주신 키다리 아저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기부자의 뜻에 따라 꼭 필요한 곳에 늦지 않게 잘 전달해 시민 모두가 행복한 대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키다리 아저씨의 당부와 같이 더 많은 키다리 아저씨들이 나눔을 이어 국채보상운동으로 빛나는 나눔의 전통을 잇는 대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대구=김윤호·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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