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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원 행장 ‘고난의 1년’…기업은행 노조, 총파업 카드까지 꺼냈다가 철회

중앙일보 2020.12.23 07:00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올해 초 취임 이후 고난의 1년을 보내고 있다. 기업은행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시사하는 등 노사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다.

 
22일 복수의 기업은행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업은행 노조는 23일 파업 등 쟁의행위와 관련해 총 조합원의 의견을 묻는 총파업 투표 카드까지 꺼내며 사측을 압박했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22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조합원 투표에서 조합원 의견이 모아질 경우, 총파업을 포함한 공식 쟁의행위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 이날 밤늦게까지 물밑 노사 협상이 이어지면서, 일단 조합원 투표는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지난 1월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노조원에 가로막혔던 윤종원 기업은행장. 뉴스1

지난 1월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노조원에 가로막혔던 윤종원 기업은행장. 뉴스1

 

‘개인고객 실적평가’ 두고 평행선

노사 갈등은 임단협 과정에서 ‘경영평가제도 개선안’이 쟁점이 되면서 불거졌다. 노조는 경영평가제도 가운데 개인고객 관련 지표를 직원 실적 평가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중소기업이 주거래 고객인 기업은행의 특성상 개인고객 유치가 어려워 그간 ‘꼼수 영업’을 통해 실적을 채워왔다는 주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영업점 내점 고객만으로는 도저히 실적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중소기업 사장인 고객에게 금융상품 가입신청서를 나눠주면서 ‘직원들에게 서명 받아와 달라’는 식으로 실적을 채워야 했다”고 말했다.
 
노조 측은 “내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에 맞춰 경영평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해 3월 국회 문턱을 넘은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사가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설명 의무를 어기거나 불공정행위를 하면 위반행위 관련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노조는 “과도한 개인고객 실적 강요는 이 같은 꼼수영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기업은행 한 지점의 기업영업 창구. 중앙포토

기업은행 한 지점의 기업영업 창구. 중앙포토

 
반면 사측은 “경영평가제도는 임단협과 별개 사안”이라고 반박한다. 임단협 시한이 올해 말로 임박한 만큼, 경영평가제도 관련 노사협의는 별도의 협의체를 마련해 중장기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성과지표를 달성하기 어려웠던 상황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경영평가는 경영권의 문제며, 근로조건과 임금을 논의하는 임단협과는 별도로 논의해야하는 문제며, 직원들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지난 4일 임단협 결렬을 선언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교섭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중노위는 21일 2차 조정위원회에서 ‘조정 중지’를 선언했다. 이날 총파업 투표까지 거론되며 노사 갈등이 극으로 치달았으나, 노사 양측은 막판 협상을 다시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밤사이 사측과 물밑 협상 끝에 하루이틀 더 사측과 임단협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출근저지에 52시간제 위반 고발도 

기업은행 노사 갈등은 올해 초 윤종원 행장 취임 당시부터 이어져왔다. 금융업계에서도 ‘이례적으로 뿌리깊은 갈등’이라는 평가다. 당시 기업은행 노조는 윤 행장에 대해 “청와대가 내려보낸 낙하산 인사”라고 반대하며 27일 동안 출근저지 투쟁을 벌였다. 결국 윤 행장은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 등 노조의 6대 요구사항에 합의한 후에야 취임식을 열 수 있었다. 은행권에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해당 사안을 언급할 만큼 논란이 커지면서 급하게 노조 요구를 들어준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1월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김형선 노조위원장과 노사 공동선언에 합의한 모습. 중앙포토

지난 1월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김형선 노조위원장과 노사 공동선언에 합의한 모습. 중앙포토

 
이후 코로나19 직후 기업은행이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업무를 맡으면서 일감이 몰리자, 노조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윤 행장을 주52시간 근로제 위반으로 고발하는 사건도 있었다. 결국 사측이 올해 성과평가 방식을 일부 개선하면서 노조가 고발은 취하했지만, 금융권에서 주52시간 근로제 위반으로 임원을 고발한 첫 사례였다. 
 
특히 이달 초 경영지원담당 부행장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노조를 저격한 이메일을 쓰면서 갈등이 증폭됐다는 평가다. 해당 이메일에는 “노조가 억지를 쓰고 불법을 저지르며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등 노조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노조 관계자는 “부행장 한 명이 단독으로 그런 메일을 쓸 수 없을 걸로 본다. 윤 행장의 노사관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윤 행장은 노조가 주최한 임단협 상견례 자리에도 불참했다. 다만 사측은 “노조가 날짜나 장소를 직전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윤 행장이 10년 만의 외부 출신 행장인 데다, 원칙을 중시하는 업무 스타일로 취임 초부터 노사관계가 경색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조 측은 고발 사건 이후 윤 행장이 노조에 대한 과도한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반면 사측에선 노조가 파업 등 강성대응을 고리로 임단협을 풀어나가면서 입지를 구축하려 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다만 기업은행 관계자는 “공공기관 예산에 올해 임금 인상분을 반영하려면 임단협은 반드시 올해 끝내야 한다. 임단협 대상이 아닌 걸 투쟁대상으로 삼는 노조에 성숙한 노사관계를 바란다”며 “실무 협상을 계속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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