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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역적 되는게 낫겠다"...골든타임 놓친 백신TF 속사정

중앙일보 2020.12.23 05:00 종합 3면 지면보기

“코로나 백신 대란을 자초한 핵심 원인은 컨트럴타워 부재 때문이었다.”

 
22일 정부 고위관계자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털어놓은 말이다. 그는 “6월 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도해 백신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는데, TF를 실무자들에게 떠넘겨 놓고 자기는 빠져버렸다”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데 공무원들이 어떻게 수조 원이 들 수 있는 백신 계약을 할 수 있었겠냐”고 말했다.

한국 백신 확보 늦어진 세 장면
메르스 때 ‘과잉대응’ 징계 경험
복지부·질병청 서로 책임 미뤄

백신 아닌 방역 관계자가 TF 주축
‘2개월 전 주문 땐 공급’ 믿다 발등

대통령, 국산 백신·치료제에 집착
“노영민·서정진 충북 마피아 말 돌아”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달 13일 국회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달 13일 국회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모든 중대 재난ㆍ재해의 컨트럴타워는 청와대다. 중대 재난은 청와대가 컨트럴타워가 아니라고 할 도리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참사의 반성에서 나온 다짐이었다. 그러나 이번 백신 대란을 맞아 문 대통령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핑퐁 게임’으로 놓친 골든타임

 
백신 도입 TF의 ‘회의 운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TF는 6월 29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17차례 공식 회의를 했다. TF 구성을 주도한 것은 김상조 실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구성 단계에서 청와대는 빠졌다. 결국 TF에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의 실무자들만 남았다.
 
당시 코로나 일일 확진자 수는 50명 내외로 안정 기조였다. 청와대의 관심사도 급속하게 코로나에서 부동산으로 옮겨갔다. 특히 당시 청와대 참모들의 다주택 보유 논란이 대서특필될 때 였다. 김 실장이 TF에서 사실상 손을 뗀 배경도 그런 분위기와 관련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1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 기업인 경기도 성남 소재 SK바이오사이언스 방문, 세포배양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1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 기업인 경기도 성남 소재 SK바이오사이언스 방문, 세포배양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다.연합뉴스

 
TF는 효과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TF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재난지원금 지급 때문에 기재부도 백신 관련 재정 확보에 난색을 표했다”며 “결국 복지부 예산 중 1000억 원가량을 간신히 조달했는데 질병청과 복지부 사이에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회의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당시 TF회의에선 “차라리 내가 다 뒤집어쓰고 백신을 도입하고 난 뒤에 혹시 일이 잘못돼 훗날 역적으로 몰리더라도 장렬하게 산화하고 싶다”는 자조 섞인 푸념들이 이어졌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공무원들에겐 과거 신종플루ㆍ메르스 때 과감한 행정을 폈다가 줄줄이 중징계를 받았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며 “‘윗선’에서 개발 단계에 있던 백신을 확보하기 위한 과감한 결단을 회피하는 바람에 골든타임을 날려버렸다”고 말했다.
 
실제 회의 중 특정 백신 관련 논의는 아스트라제네카 도입을 논의한 9차 회의(9월 2일)뿐이었다. 나머지는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 관련 논의에 집중됐다. 코백스는 백신의 공평 분배를 위해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만든 프로젝트다. 백신 개발을 추진하고 있던 특정 제약사와의 개별 계약에 따른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선진국들은 백신 개발 가능성이 높았던 화이자ㆍ모더나 등과 사전 접촉해 초도 물량을 확보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직접 나섰다.
 

◇‘허위 보고’ 돼버린 백신 도입 계획

 
정부는 TF 회의의 내용은 물론 TF 구성원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TF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회의록이 있기는 하지만 계약 관련 내용이 담겨 있어 공개할 수 없다”며 “위원 명단 역시 비공개 사안”이라고 밝혔다.
 
고위 당국자는 이와 관련 “TF는 백신을 구매해 본 경험도 없고, 백신과는 관계가 없는 방역 관계자들로 구성됐다”며 “여기에 각 부처들마저 면피에 급급하다보니 담당자가 복지부 출신의 권준욱 국립보건원장에서 백신 경험이 없는 나성웅 질병청 차장으로 교체되는 혼선도 빚어졌다”고 전했다.
OECD회원국 확보 백신의 인구 커버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OECD회원국 확보 백신의 인구 커버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 당국자는 특히 “이런 비전문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후에야 화이자 등과 접촉했는데 ‘생산 2개월 전에만 주문하면 물량을 댈 수 있다’는 말만 믿고 이를 그대로 상부에 보고해버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8일 “4400만 명 분량의 백신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화이자 등으로부터 2개월 이내에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보고가 발표의 근거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0일 “백신 구매 협상에 나섰지만 물건이 없었다. 화이자ㆍ모더나ㆍ얀센 등과 계약이 임박했으나 1분기 공급 약속을 받은 것은 없다”고 실토했다.
 
이에 대해 고위 당국자는 “정부가 과거 구두 확인만 믿고 화이자ㆍ모더나 등에 물량을 요청했더니 제약사로부터 ‘한국에 공급할 물량이 당장은 없다’는 답이 돌아온 상황”이라며 “결과적으로 TF의 보고는 사실상의 허위가 돼 버렸고, 이 바람에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단초를 제공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백신 구매 강조했다는데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백신 공급 상황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한 시점은 지난 10월 이후인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10~11월 무렵 청와대 비공개회의 때 나왔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전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백신 확보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무리를 해서라도 백신을 확보하라”고 강력하게 지시했다. 그러자 한 참모가 “제약사 측에서 돈을 너무 많이 요구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재차 “재정적인 것은 신경 쓰지 말고 무리를 해서라도 백신을 확보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실제로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22일 문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백신 물량 확보를 강조했다며 관련 발언을 여러 개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에 출석해 “(화이자와 모더나) 두 회사에서 오히려 우리에게 빨리 계약을 맺자고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마치 언제든지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뉘앙스였다. 그 무렵 청와대 관계자들도 “한국은 코로나에 대한 통제가 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 검증되지 않은 백신을 서둘러 구입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와 관련 TF 관계자는 “일부 제약사들의 연구 성과가 가시화되던 지난 10월 무렵이 마지막으로 베팅할 수 있던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말했다. 
 

◇누군가 ‘잘못된 정보’를 주입했다

 
청와대와 여권 관계자들 사이에선 몇 달 전부터 “내년 1월 시판될 국산 코로나 치료제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는 말이 코로나 대응의 공식 매뉴얼처럼 거론돼 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남시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 현장인 에스케이(SK)바이오사이언스에서 코로나 백신과 관련된 현장 간담회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문 대통령, 최태원 에스케이(SK) 대표이사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성남시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 현장인 에스케이(SK)바이오사이언스에서 코로나 백신과 관련된 현장 간담회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문 대통령, 최태원 에스케이(SK) 대표이사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러한 입장은 문 대통령의 현장 행보에도 반영됐다.
 
문 대통령은 10월 15일 SK바아오사이언스를 방문해 “치료제는 올해 안에 본격 생산을, 백신은 내년까지 개발 완료를 기다릴 수 있게 됐다. 생산물량 일부를 우리 국민에게 우선 공급할 수 있게 된다면 백신의 안정적 확보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8일 인천 바이오산업 현장을 방문해서도 “올해 말 항체 치료제와 혈장 치료제를 시장에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에는 맹점이 있다.
 
정부 핵심 인사는 “타미플루는 신종플루에 대한 범용 완치 치료제인 반면, 출시를 앞둔 셀트리온 제품은 중증 질환으로 가는 것을 차단하는 목적의 경증 주사제 개념”이라며 “완전히 다른 성격의 치료제인 셀트리온 제품은 현재 상황에서 결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없고, 백신과 치료제를 병행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여권 인사는 “치료제에 대한 맹신의 핵심에는 셀트리온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공교롭게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동향에 동갑인 사람”이라며 “이 때문에 대통령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입한 배경에 노 실장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충북 마피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오는 데 청와대는 제대로 된 대응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백신 확보에 사실상 실패하면서 지난 1년간 쌓아 올린 K방역의 성과는 이미 물거품이 된 상태”라며 “대통령의 아들까지 SNS로 여론에 직접 대응하면서 논란을 키우는 와중에 30%대 지지율로 버티고 있는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 상황을 타개하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보다 솔직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사과할 건 사과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도 적지 않다”며 “그러나 이러한 충언들이 보고되면 매번 핵심 참모들이 ‘그럼 대통령이 사과라도 하란 말이냐’고 반발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으로 보고되는 정보의 대부분을 공유하는 이진석 국정상황실장이 의사 출신인데도 상황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강태화ㆍ윤성민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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