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①지원 부적격 알고도 응모해서 세금 지원받은 문준용

중앙일보 2020.12.23 00:43 종합 24면 지면보기

2020 세밑 세금 남용 세 현장을 가다

지난 10월 ‘2020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 출품작 설명을 하는 문준용씨. 지원금 논란 후 “내 전시 취소로 피해입은 사람들에게 지급했다”고 했지만 이 돈으로 전시중인 갤러리는 “대관료와 큐레이터 비용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지난 10월 ‘2020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 출품작 설명을 하는 문준용씨. 지원금 논란 후 “내 전시 취소로 피해입은 사람들에게 지급했다”고 했지만 이 돈으로 전시중인 갤러리는 “대관료와 큐레이터 비용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세금도둑’ 천지다. 정작 세금 내는 국민은 먹고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세금 받아 쓰는 사람들은 자기 주머니 쌈짓돈처럼 낭비한다. 어려운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세금을 부적격자가 거리낌 없이 쓰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시민의 어려움은 외면한 채 선출직 공직자가 세비를 셀프 인상한다. 나랏돈으로 운영하는 감염병 전문병원은 병상 대란에도 불구하고 자기 병원은 비우지 않고 민간병원 병상을 내놓으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세금 기강이 무너진 현장 세 곳을 살펴봤다.
  

②민생 외면 세비 인상 시의회
③코로나 전환 거부 중앙의료원
의료진 수당 지체에 불만 가중도
“코로나 고통은 오직 국민 몫인가”

문준용의 몰염치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38)씨가 발끈했다. 서울 금산갤러리에서 지난 17일 시작해 오늘(23일) 끝나는 그의 미디어아트 전시가 서울시와 산하 서울문화재단의 코로나 피해 지원금 1400만원을 지원받아 열린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직후인 21일 본인의 SNS에 이렇게 올렸다.
 
‘착각하는 것 같은데 코로나 지원금 1400만원이란, 작가에게 수익으로 주는 돈이 아니라 작가가 전시/작품 제작에 사용하는 돈입니다. …이번 지원금은 그러한 취지로 처음부터 사용 규칙을 정하고, 계획을 상세하게 제시받아 적절한지를 심사하여 저를 선정한 것입니다. 즉,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을 고른 것이지요. …(일부 소액은 작가 인건비로 집행됨)’
 
엄중한 코로나19 국면 탓에 적잖은 국민이 생업을 멈추고 생계에 고통받는 와중에 대통령 아들이 더 어려운 예술가들을 제쳐두고 굳이 적잖은 세금 지원까지 받아가며 전시를 해야 했느냐는 지적이었지만 그는 되려 국민을 꾸짖었다. 내가 적임자니 착각하지 말라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착각은 준용씨가 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애초에 지원 부적격자다. 지난 4월 공모한 ‘코로나19 피해 긴급 예술지원’은 예술성과 무관하게 코로나 피해를 본 예술가에게 주는 것으로, 인건비와 대관료 이외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본인 인건비는 총액의 20%가 최대다. 필수 제출 서류 중 하나인 ‘참여예술인 명세서’엔 공동 작업을 한 작가 실명과 전시장 이름을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온라인 지원 신청서의 ‘지출예산’ 항목에는 ‘인건비 및 대관료에 한하여 작성’하라는 주의가 붉은 글씨로 강조되어 있다. ‘추후 사업선정 이후 부적격자 및 부적격 사업이 확인되었을 시 선정취소 및 환수 처리 가능’하다는 조항까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지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코로나19 피해 긴급 예술지원은 총액의 20% 이내의 본인 사례비를 비롯해 인건비·대관료 목적으로만 써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코로나19 피해 긴급 예술지원은 총액의 20% 이내의 본인 사례비를 비롯해 인건비·대관료 목적으로만 써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문제는 준용씨가 공동 작업을 하지도, 또 대관료를 지불하지도 않았는데 신청한 281건(시각예술 분야) 가운데 46팀만 선정된 지원 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다. 받은 돈도 최고액인 1400만원이다. 금산갤러리 황달성 대표는 “작업에 필요한 영상기기 한 대의 하루 대여료가 수십만 원일 정도로 기깃값이 많이 들어 지원금 대부분을 장비 대여에 사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사실상 우리 갤러리 전속작가처럼 활동하고 있기에 갤러리 대관료나 큐레이터 비용은 받지 않았으며 일부 인쇄물 제작비용은 갤러리가 부담했다”고 말했다. 이런 말도 했다. “비디오아트로 가장 인정받는 장승효 작가 등 이전 세대는 직접 코딩을 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지만 코딩에 능숙한 문 작가는 직접 작업하기 때문에 훨씬 경쟁력이 있다.”
 
황 대표 설명대로 준용씨가 영상기기 임대료 등으로 지원금을 타냈다면 심의위원이 규정을 어기고 특혜를 준 것이고, 실제 사용처와 무관한 대관료 등을 써내 받았다면 거짓 기재로 세금을 훔친 셈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서울문화재단은 지난 4월 지원 심사 결정을 일방적으로 연기해 예술가들의 반발에 부딪혔고, 9월엔 세금을 복불복 로또식 추첨을 통해 나눠주거나, 부적격 심의위원이 포함돼 재심의 끝에 선정자가 뒤바뀌는 등 숱한 잡음을 일으켰다”며 “지원 안내에 명확하게 인건비와 대관료만 지원 대상이라고 돼 있다면 다른 항목을 써낸 지원자는 선정할 수 없는데 의아하다”고 말했다. 
서울문화재단 관계자는 "개인 정보 보호 문제로 내역서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문 작가는 당초 재단이 공지한 대로 인건비로만 계획서를 올렸다”며 "계획서엔 본인 인건비 100만원를 제외하고 나머지 1300만원을 프로그래머와 3D아트 기술자, 사운드 기술자 3인이게 지급하는 것으로 쓰여 있고, 전시 종료 30일 이내에 실제로 집행됐는지 따져 문제가 있다면 환수하겠다"고 말했다. 재단이 언급한 명단에는 이 3인 이외에 큐레이터 등은 없다. 
  
서울시의회의 몰상식
 
“먼저 의사일정 제1항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의정 활동비 등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의결하고자 하는데 의원 여러분, 이의 없습니까? ”(김인호 의장) “없습니다!”(일부 의원) “이의가 없으므로 의사일정 제1항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탕, 탕, 탕!”(김 의장)
 
지난 16일 코로나를 내세워 사상 최대인 40조원이 넘는 서울시 예산을 확정 짓는 서울시의회 본회의는 의원들의 셀프 세비 인상으로 출발했다. 의원 109명 가운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01명을 차지한 서울시의회는 2021년도 1월 1일부터 월 수당을 현행 389만원에서 400만원으로 월 10만9180원 올렸다. 아무런 이의도 없이 이렇게 2.7% 인상이 가결됐다.
 
권수정 의원(정의당)은 “코로나로 삶이 무너진 시민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한 예산”이라고 비판하며 표결에 불참했다. 서울시의회 의원의 의정비는 외부 전문가 등이 포함된 ‘의정비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권 의원은 “의원들이 부결시킬 수도 있는데 우리가 결정한 게 아니라는 식으로 은근슬쩍 세비를 올린 건 책임 회피”라며 “세비 인상을 되돌리는 주민 청원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날 본회의엔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참석해 “코로나로 고통받는 시민이 온전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희망의 마중물이 되도록 소중한 예산을 차질없이 집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코로나 일선에서 체력이 바닥나도록 고군분투하고 있는 의료진들은 정부가 책정한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가 행정절차를 핑계로 지급을 미루고 있어서다.
 
정부는 3차(7월)와 4차(9월) 추경을 통해 의료진 수당으로 300억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총 77억원을 지급해야 하는 서울시는 지난달 생활치료센터 근무 간호사들이 급여를 못 받았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부랴부랴 일부 지급하긴 했지만 11월 중순 이전에 모든 의료진에게 지급을 완료한다던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여전히 지급을 미루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 서울시장 권한대행에게 이런 질의를 하며 조속한 집행을 요구한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코로나를 빌미로 서울시는 사상 최대 예산을, 의원들은 세비를 챙겼을 뿐이다.
  
NMC의 몰지각
 
국립중앙의료원은 새로 만든 30병상 외에 전 병원을 코로나 체제로 전환하진 않았다. [연합뉴스]

국립중앙의료원은 새로 만든 30병상 외에 전 병원을 코로나 체제로 전환하진 않았다. [연합뉴스]

백신은 요원한데 병상 대란으로 벌써 코로나 환자가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죽어간다. 코로나 초기부터 현장의 의료전문가들이 줄곧 병상 확보를 주장했지만 문 대통령의 K 방역 홍보 욕심에 병상 확보가 뒤로 밀린 탓이다. 급기야 정부는 지난 19일 민간 상급종합병원 등에 병상 확보 행정명령을 내렸다. 쉽게 말해 중환자실을 내놓으란 얘기다. 당장 생사를 오가는 다른 질병 중환자가 많은데, 이런 사정은 외면한 채 여론무마용으로 민간 병원에 고통을 지운 셈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건 감염병 전담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NMC) 책임이 적지 않다. NMC는 지난 10월 50억원을 들여 음압 병상 30개의 본격 가동에 들어가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감염병 대응 명목으로 내년엔 올해(320억원)보다 80억원 이상 늘어난 403억원의 예산을 배정받기도 했다. 코로나 컨트롤타워를 자처하는 감염병 전담병원이니 일사불란하게 코로나 대응 체제로 움직일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수십 개 의료기관에 병상이 분산되면 효율적 운영이 불가하니 (NMC같은) 거점 전담병원으로 시설과 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3차 대유행 진료 전략을 내놨다. 하지만 정기현 NMC 원장은 이런 의료계 요구를 “기만적 태도”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취약계층 진료”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NMC 내부에서조차 “적자(8월 기준 129억원)가 부담스러워 몸을 사린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병원과 원지동에 병상 확보 작업 중인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지난봄 대구 동산병원처럼 NMC 같은 국공립병원을 전담병원으로 지정했어야 한다”며 “3개월이면 비울 수 있었는데 공공 의대만 주장하며 계속 오판하는 바람에 병상 확보가 더뎌졌다”고 했다. “잿밥에만 관심 보이며 경영상 이유로 병원을 소개하지 않은 것이라면 매국노”라고 비판했다. 2015년 메르스를 지휘했던 안명옥 전 국립중앙의료원장도 같은 얘기를 한다. 그는 “당시 오로지 국민 생명을 위해 병원을 비우기로 결정하고 내가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며 “그게 NMC의 존재 이유인데 지금은 다들 망각한 거 같다”고 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