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철재의 밀담] ‘21세기 아편전쟁’…미국에 유럽까지 가세한 중국 포위망

중앙일보 2020.12.23 00:35 종합 26면 지면보기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미국 해군은 22일 트위터 계정에 사진을 공개했다.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필리핀해에서 미국의 이지스 구축함인 존매케인함과 일본의 헬기 호위함인 휴가함, 프랑스의 핵추진 잠수함(SSN)인 에머호드함이 3개국 연합 해상훈련을 벌이는 장면이다.
 

영·프, 항모와 핵잠 배치
중국 봉쇄 전략에 힘실어
미·중 바다 전쟁 본격 조짐
한, 미·중 사이 고민 깊어져

에머호드함은 앞서 지난달 30일 보급함인 센함과 함께 미국의 태평양 거점인 괌에 들렀다. 지난 11일엔 괌에 배치 중인 미국의 핵잠인 애슈빌함과 연합훈련을 진행했다. 미국은 프랑스의 에머호드함과의 연합훈련 소식을 전하면서 “드문(rare) 일”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에머호드함은 서태평양에 배치됐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인도·태평양에 전투함 1척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 질서를 수호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6만5000t급의 최신 퀸 엘리자베스 항모 전단을 내년 아시아에 전개한다. 일본의 교도통신에 따르면 영국의 항모 전단은 일본에 장기 주둔할 계획이다.
 
태평양에서 파도가 거세지고 있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태평양으로 달려오면서다. 내년엔 더 큰 격랑이 일 것으로 보인다. 태평양에서 나타나고 있는 양상은 19세기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19세기는 서구 열강이 포함(砲艦)을 앞세워 태평양으로 몰려들었던 때였다. 19세기와 21세기 ‘태평양의 파도’는 중국이 원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땐 힘을 잃은 중국에서 이권을 뜯어가려는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커지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게 다르다.
 
미국의 핵잠인 애슈빌함(오른쪽)이 프랑스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태평양에 배치한 핵잠인 에머호드함과 훈련을 벌이고 있다. [사진 미 해군]

미국의 핵잠인 애슈빌함(오른쪽)이 프랑스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태평양에 배치한 핵잠인 에머호드함과 훈련을 벌이고 있다. [사진 미 해군]

중국은 영국의 항모 파견에 대해 “새로운 아편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이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다투려 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앞서 미국을 인도·태평양으로부터 차단한 뒤 이곳을 중국의 뒷마당으로 삼으려 한다고 의심한다. 중국이 이를 위해 남중국해서의 영유권 분쟁, 히말라야에서 인도와의 국경 충돌, 호주와의 갈등,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두고 내린 한한령(限韓令) 등을 서슴지 않았다고 미국은 인식한다.
 
미국은 20세기 옛 소련을 가둬 냉전에서 승리를 거둔 봉쇄 전략으로 21세기 중국에 대응하려 한다. ‘인도·태평양’이라는 용어를 만든 뒤 동맹국인 호주·일본에 전통적인 비동맹 세력인 인도까지 끌어들여 쿼드(4인방)라는 다국적 협의체를 구성했다. 쿼드는 ‘자유롭고(free) 열린(open) 인도·태평양’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21세기판 문호개방(Open Door) 정책이다.
 
영국·프랑스·독일은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전투함 파견은 후속 조치다. 이들 세 나라는 미국이 만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핵심국이다. 유럽을 벗어난 태평양에서도 미국 편에 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행보다.
 
지난 17일 미 해군·해병대·해안경비대 등 3군이 합동으로 내놓은 ‘바다의 이점(Advantage at Sea)’ 보고서는 대(對)중국 전략의 청사진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을 안보와 번영을 바다에 의존하는 해양국가로 정의했다.
 
보고서는 또 중국과 러시아를 가장 큰 위협으로 지목하면서도, 특히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경쟁자(중국·러시아)가 무력 침공을 고려하지 못하도록 현장에서 적극적(assertive)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일 경쟁자가 적국이 된다면 반드시 바다를 통제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중요한 전략적 자산인 동맹국·우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전투함을 해외에 전진배치할 것을 제시했다.
 
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새로운 머핸(Mahan)주의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머핸주의는 1890년 미국의 역사가인 앨프레드 세이어 머핸이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에서 해군이 강한 나라가 군사·경제적 강대국이라고 역설한 논리다. 미국 단독으로 이루지 않고, 동맹국·우호국과 손을 잡자는 지점에서만 신구 머핸주의가 갈린다.
 
내년 1월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미국은 중국을 세게 죄려 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외교·안보 전문가의 전망이다. 반중 봉쇄전략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문득 꺼낸 아이디어가 아니라 미국 외교·안보 당국의 컨센서스라는 점에서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과 같은 동맹국에게 미국에 동참하기를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을 늘리려는 한국에겐 큰 고민거리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이 한국의 입장을 배려해 처음부터 중국에 대항하는 군사 협력을 내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한·미 동맹을 비군사 분야로 점점 확대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군사 분야라고 하더라도 곳곳이 지뢰밭이다. 5세대(5G) 이동통신망에서의 한·미 기술 협력은 결국 중국 통신장비 대기업인 화웨이(華爲)의 배제로 이어진다. 한국은 미국이냐, 중국이냐는 결정을 가급적 뒤로 미루고 싶어 하지만, 곧 내려야만 하는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한한령에 덴 한국이 앞으로 미·중 갈등 사안이 튀어날 때마다 움츠러들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중국이라는 블랙홀에 점점 빨려 들려가고, 그 끝은 예전 조공(朝貢) 체제의 부활이 될 수 있다. 중국 블랙홀의 강한 인력에서 벗어나려면 한·미 동맹이라는 반발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물론 매번 전략적 위치를 제대로 선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21세기 대한민국이 19세기 조선과 같이 태평양의 파도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