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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국숫집 직원들, 악귀 사냥꾼이라고 소문났대요

중앙일보 2020.12.23 00:03 종합 22면 지면보기
‘경이로운 소문’의 악귀 사냥꾼 추매옥(염혜란), 소문(조병규), 가모탁(유준상), 도하나(김세정). [사진 OCN]

‘경이로운 소문’의 악귀 사냥꾼 추매옥(염혜란), 소문(조병규), 가모탁(유준상), 도하나(김세정). [사진 OCN]

OCN 토일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의 상승세가 무섭다. 방송 6회 만에 2018년 ‘보이스’ 시즌 2가 기록한 OCN 최고 시청률 7.1%(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를 넘어선 데 이어 20일 방송된 8회는 9.3%를 기록했다. 악귀 사냥꾼 카운터들이 국숫집 직원으로 위장해 지상의 악귀들을 물리치는 히어로물이 제대로 통한 셈이다. CJ ENM IP사업부 김제현 상무는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물이 아닌 한국형으로 만든 히어로물이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은 것 같다”고 밝혔다. 다음웹툰에서 연재 중인 장이 작가의 원작에 대해서도 “신선하고 매력적인 ‘스토리·캐릭터·세계관’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졌다”고 평했다.
 

한국형 히어로물 ‘경이로운 소문’
8회 만에 OCN 최고 9.3% 시청률
지구보다 주변인 지키는 소소함
삶이 팍팍할수록 판타지에 눈길

일명 ‘카운터즈’라 불리는 이들은 일반적인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7년 전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소문(조병규)은 학교 일진의 놀림거리다. 일찌감치 카운터 세계에 들어선 도하나(김세정), 가모탁(유준상), 추매옥(염혜란)도 각각 악귀 감지 능력과 괴력, 치유력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3단계에 진입한 악귀를 만나면 당하기 일쑤다. 보통 사람보다 2~3배 이상의 힘을 지녔지만 몇 차례의 살인으로 염력까지 쓰게 된 악귀에겐 역부족인 탓이다. 권태호 무술감독은 “현실감 없이 과장된 액션보다 캐릭터 본연의 색을 표현하고자 했다”며 “기존 히어로물과 달리 디지털 캐릭터 없이 구현해야 해서 사실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여느 영웅과 달리 학교폭력을 당하는 모습. [사진 OCN]

여느 영웅과 달리 학교폭력을 당하는 모습. [사진 OCN]

이들이 고된 카운터의 길을 걷게 된 이유도 지극히 ‘한국적’이다. 소문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무거운 임무를 받아들였고, 추매옥과 연결된 저승 파트너는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들 권수호(이찬형)다. 영혼들의 출입국 관리소 격인 ‘융’을 오갈 수 있는 카운터에게 가족은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된다.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박기수 교수는 “서양 히어로물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과 달리 한국 히어로물은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펼쳐진다”며 “이들이 구하고자 하는 사람도 전 세계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가족 등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분석했다.
 
이승과 저승의 중간계인 융 역시 ‘인간적’으로 그려진다. 사방이 하얗게 빛나는 공간에 머무는 융인은 얼핏 신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환생 여부는 전적으로 파트너에 달려있다. 파트너가 사고 치면 함께 처벌받고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운명공동체인 셈이다.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한국은 리얼리즘에 대한 강박이 심한 편이어서 어느 정도 현실에 발을 디딘 상상력이어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2013~2014)의 외계인이나 불멸의 삶을 사는 ‘도깨비’(2016~2017)도 모두 인간의 모습을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 윤 교수는 “그간 영화나 게임, 웹툰과는 달리 TV 드라마에서는 변방 취급을 받던 판타지는 남녀 영혼이 뒤바뀌는 설정의 ‘시크릿 가든’(2010~2011) 성공 이후 유행처럼 번져나갔다”고 덧붙였다.
 
카운터즈와 연결된 저승 파트너. [사진 OCN]

카운터즈와 연결된 저승 파트너. [사진 OCN]

윤석진·백경선·백소연·이승현·박명진·정명문 등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지난달 출간한  『텔레비전 드라마, 판타지를 환유하다』(소명출판)는 지난 10년간 주류로 떠오른 판타지 드라마에 대해 보다 본격적인 분석을 내놨다. 1994년 초능력과 빙의를 통해 낙태 문제를 다룬 ‘M’부터 지난해 9월 종영한 상고시대를 배경으로 한 ‘아스달 연대기’까지 25년간 방영된 판타지 드라마 목록을 추출한 결과 90년대 7편, 2000년대 14편, 2010년대 105편으로 급증했다. 2010년대 방영된 판타지물이 90년대의 15배, 2000년대의 7.5배에 달하는 것이다.
 
경기대 문예창작학과 백경선 강사는 총론에서 “현실이 살기 어려워질수록, 현실에 대한 불만이 커질수록 판타지는 자주 소환될 수밖에 없다”며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불만을 해소하고 싶은 대중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라고 짚었다. 가톨릭대 학부대학 백소연 교수는 “2010년대 이후 등장한 판타지 수사 드라마들은 공권력의 합리적 운용을 불신하고 도리어 그 질서를 위반하면서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욕망이 두드러진다”며 “OCN ‘뱀파이어 검사’ 1, 2(2011, 2012)와 ‘귀신 보는 형사 처용’ 1, 2(2014, 2015) 등은 지상파에서 선보이지 못한 과감한 주제의식과 독특한 표현 양식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채널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OTT 플랫폼이 다양화되면서 이 같은 변화는 더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박기수 교수는 “넷플릭스 등이 활성화되면서 세분된 취향이 중요해졌고 이들을 겨냥한 좀비 사극 ‘킹덤’ 1, 2(2019, 2020)이나 크리처물 ‘스위트홈’ 등이 다시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공포에 더해 내재한 욕망, 과거의 상처 등과 싸우는 경향성을 보이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김제현 상무는 “올해는 코로나 시국에 각박한 정서 때문인지 정통 수사물보다는 ‘경이로운 소문’이나 실종된 망자들이 모인 마을을 그린 ‘미씽: 그들이 있었다’ 등 인간의 선한 의지로 함께 아파하고 고군분투하며 대리만족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작품이 큰 호응을 받았다”고 말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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