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90년대 실버타운 투자하다 노후자금 날린 노인들

중앙일보 2020.12.22 09:00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42)

말뚝만 박아도 아파트가 분양되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서울 주변 신도시 개발 광풍은 온 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었다. 대규모 개발이 유행처럼 번지던 그 시절, 실버타운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에는 실버타운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내가 운영하던 건축사사무소에도 실버타운 개발의 꿈을 가지고 많은 시행사가 찾아왔다. 그들의 계산은 간단명료했다. 지방의 저렴한 산지를 실버타운으로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은 입소자가 내는 보증금으로 충당한다는 것이었다. 입소자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보증금과 별도로 관리비를 걷어 조달한다. 개발업자에게 실버타운은 개발부터 관리운영까지 자기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는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 프로젝트로 인식되었다. 
 
내가 운영하던 건축사사무소에도 실버타운 개발의 꿈을 가지고 많은 시행사가 찾아왔다. 지방의 저렴한 산지를 실버타운으로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은 입소자가 내는 보증금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었다. [사진 pxhere]

내가 운영하던 건축사사무소에도 실버타운 개발의 꿈을 가지고 많은 시행사가 찾아왔다. 지방의 저렴한 산지를 실버타운으로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은 입소자가 내는 보증금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었다. [사진 pxhere]

 
그들 대부분은 미국이나 일본의 실버타운을 한 곳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실버타운이 어떤 방향으로 개발돼야 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와 문제점은 무엇이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시절에는 국내에 소개된 자료도 거의 없었다. 나 또한 어렵게 구한 일본 자료를 가지고 연구했으니 그 본질적인 문제를 알 수 없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지어 놓으면 도시인이 몰려올 줄 알았다. 실제 개발업자의 감언이설 분양광고에 속아 수억 원씩 보증금을 내고 실버타운에 입주한 부부가 많았다. 
 
그러나 몸만 들어오면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각종 편의시설과 위락시설, 의료시설을 갖추었다고 홍보했지만 실제 입소하고 보니 도시 생활보다 훨씬 답답하고 열악한 환경이었다. 몇 년 버티다가 퇴소하려고 하니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하는 시행사도 있었다. 본래 보증금은 퇴소할 때 입소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돈이다. 그러나 개발업자는 그 돈을 공사비에 충당하거나 다른 지역에 행하는  실버타운 개발에 유용하기도 했다. 무리한 투자로 시행사가 파산하게 되면 입주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노후 자금을 날려버린 것이다.

 
실제 그런 상황에 직면한 실버타운을 방문한 적이 있다. 겨울이었다. 난방도 안 되는 방에 사는 노인이 서로 돌아가면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의료 지원도 되지 않았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이라 겨울은 더 혹독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그곳을 떠날 수 없는 그들에게 하루하루는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실버타운의 이런 문제가 불거진 시기가 IMF 사태와 겹치면서 ‘실버타운’이라는 단어는 혐오와 기피의 아이콘이 되었다. 1990년대 초반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10년도 되지 않아 ‘실버타운’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2000년도 초반에 ‘시니어타운’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내용은 실버타운과 다를 바 없었지만, 단어를 바꾸고 포장을 달리해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개발업자의 고도의 전략이었다. 90년대 실버타운이 도시나 마을과 멀리 떨어진 오지를 개발했다면 시니어타운은 주로 지방마을 주변을 대상지로 잡았다. 지방 마을을 끼고 개발하는 계획이었다.
 
지방 마을에 도시민을 대규모로 유치하는 개발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면에서 지자체장 구미를 당겼다. 개발업자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서울에서 열리는 대규모 건축전시회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는 해당 지역 공무원과 주민들도 참가했다.
 
2000년도 초반에 ‘시니어타운’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내용은 실버타운과 다를 바 없었지만 단어를 바꾸고 포장을 달리해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개발업자의 고도의 전략이었다. [사진 pixabay]

2000년도 초반에 ‘시니어타운’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내용은 실버타운과 다를 바 없었지만 단어를 바꾸고 포장을 달리해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개발업자의 고도의 전략이었다. [사진 pixabay]

 
서울의 대형 건축전에서의 행사도 놀라웠지만 그들이 사는 지역에 만들어질 시니어타운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세미나에 참여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큰 자랑거리가 되었다. 분위기를 이렇게 띄워놓았으니 개발업자는 장차 그 지역을 살릴 영웅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실현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환상적인 마스터플랜을 보여주고 세미나 참석자의 입주 의향서를 받았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의 진행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종합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데 수억 원의 용역계약을 지자체와 체결하고 거창한 그림을 그려주는 것으로 그들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그들의 허황된 구상에 지역주민과 공무원들이 동원되고 지원해준 꼴이 되었다. 세미나 이후 개발업자는 슬그머니 발을 뺀다. 주민들은 잠시 행복한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

 
그 시절 나는 실버타운, 시니어타운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었고 여러 군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시행사는 초기 자금 동원능력이 없었다. 결국 내가 디자인 한 프로젝트는 실행단계까지 못 가고 대부분 사장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고백하자면 아직도 나는 실버타운, 시니어타운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실버타운이 한참 유행하던 게 벌써 25년 전이다. 그 프로젝트는 전부 다 신기루처럼 사라졌지만 25년이 흐른 지금, 고령화로 인해 지방은 어딜 가나 실버타운으로 변해버렸으니 격세지감이랄까.
 
프리랜서 건축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손웅익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 수필가 필진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집, 투자와 과시의 대상으로의 집에서 벗어나 집은 살아가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건축가이자 수필가인 필자를 통해 집의 본질에 대해,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