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후남 문화디렉터
이런 하릴없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영화 ‘콜’을 보며 으스스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였다. 과거와 현재가 실시간으로 소통한다는 이 영화의 설정만 들으면, 2000년대 초 인기를 누린 몇몇 판타지 멜로 영화가 떠오른다. 김하늘·유지태 주연의 ‘동감’에선 동호회 무선통신을 통해서, 전지현·이정재 주연의 ‘시월애’에선 신축 주택의 우체통을 통해서 주인공들이 각기 다른 시간대에 사는, 서로 존재조차 몰랐던 상대와 점차 애틋하고 친밀한 교감을 나눴다.
![영화 ‘콜’에서 전종서가 연기한 영숙. [사진 넷플릭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2/22/877a8e6c-0c81-41d0-a724-677c8ebd9bf1.jpg)
영화 ‘콜’에서 전종서가 연기한 영숙. [사진 넷플릭스]
시간여행의 고전이 된 영화 ‘백 투 더 퓨처’는 과거를 바꾸려는, 아니 개입하려는 시도가 뜻밖의 결과를 낳는다는 걸 알려줬다. 주인공 마티(마이클 J 폭스)는 나중에 자신의 부모가 되는 젊은이들의 연애를 도우려다 엉뚱한 상황을 초래하고, 자신의 존재가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는 일종의 해프닝에 그쳤지만, ‘콜’의 서연이 겪는 상황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
잔혹한 짓을 무심하게 해치우는 영숙은 한국영화 악녀 계보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만하다. 영숙은 섬뜩하고, 이를 소화한 배우 전종서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아마도 극장에서 봤더라면 더 무서웠을 텐데, 코로나19의 여파로 이 영화도 극장 개봉 대신 지난달말 넷플릭스로 공개하게 된 경우다. 그러고 보니 여러 해 공들인 영화를 거리두기가 한창일 때 개봉했던 어느 제작자가, 그보다 더 힘들고 가슴 아픈 일을 겪은 아는 얼굴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미래의 어느 순간에 2020년의 이들과 통화를 하게 된다한들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할 지 막막해진다. 2020년은 살아낸 것만으로도 엄청난 해였다고, 그런 한 해를 견뎌낸 당신은 대단하다고 해야할까. 실은 2020년의 ‘나’에게 해주고픈 얘기다.
이후남 문화디렉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