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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300년만의 굴욕…굶는 아이들, 유니세프서 밥 얻어먹는다

중앙일보 2020.12.19 05:00
맷 핸콕 영국 보건부장관이 지난 8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상황에 대해 말하던 중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의 남성이 두번째로 접종을 받았다는 속보가 뜨자 감격한듯 눈물을 훔치고 있다. [ITV]

맷 핸콕 영국 보건부장관이 지난 8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상황에 대해 말하던 중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의 남성이 두번째로 접종을 받았다는 속보가 뜨자 감격한듯 눈물을 훔치고 있다. [ITV]

 
엘리자베스 1세 사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서구 열강의 상징, 조선인에게 개화의 문을 두드렸던 영길리(英吉利·잉글랜드)로 알려진 나라. 

1709년 대혹한 이후 최악 경제성장률 기록
빈곤 아동 130만명 무료급식 없으면 배곯아
정부 재정문제에 주저하자 유니세프 나서

 
영국이 300년만의 최악의 경제 상황에 빠지며 사상 처음 유니세프의 긴급 구호를 받게 됐다. 16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유니세프 영국지부는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가정을 돕겠다"며 긴급 지원 계획을 밝혔다. 유니세프는 크리스마스 연휴와 봄 방학 때 런던 남부지역 학교 25곳에 아침 식사 비용 2만5000파운드(약 3700만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영국의 결식아동 문제는 몇달 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대두한 상태다. 영국 왕립 소아과전문의협회(RCPCH)는 지난 10월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방학 기간 취약계층 아동에 무료 급식을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의료 현장에서 굶주림과 영양실조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목격하고 있다"고 호소하면서다.
 
잉글랜드 북부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잉글랜드 북부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RCPCH에 따르면 영국 전체의 빈곤층 아동은 400만명인데, 이들 중 3분의 1은 학교에서 주는 무료 급식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130만명가량의 아동이 학교가 쉬는 날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19로 인한 학부모들의 실직, 근로 시간 강제 단축과 맞물려 있다고 RCPCH는 설명했다. 실제 최근 발표된 영국의 실업 규모는 최악을 기록했다. 영국 통계청(ONS)의 15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월까지 3개월간 정리해고 규모는 37만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11월 기준 국세청(HM&C)에 제출된 임금근로자 수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인 지난 2월 대비 약 82만명가량이 줄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방학 무료급식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RCPCH는 이런 존슨 총리의 태도에도 "충격을 받았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원에서도 다수당인 집권 여당이 저소득층에 방학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안에 반대해 부결됐다.  
 
그러자 결국 유니세프가 나선 것이다. 참담한 상황에 야당은 "불명예"라며 보리스 존슨 총리와 리시 수낙 재무장관을 질타했다. 이에 영국 정부 대변인은 "최저 소득계층을 지원하고 있다"며 "1억7000만 파운드 규모의 겨울 보조금정책을 도입했다"고 해명했다.  
 

영국 경제성장률, 300년 전 대혹한 이후 최악

영국 런던의 옥스포드 거리에 위치한 데번햄스 백화점 앞. 코로나19로 데번햄스에 근무하는 1만2000명의 일자리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P=연합뉴스]

영국 런던의 옥스포드 거리에 위치한 데번햄스 백화점 앞. 코로나19로 데번햄스에 근무하는 1만2000명의 일자리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P=연합뉴스]

영국 정부도 고심이 깊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올해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1709년 유럽을 휩쓸었던 대혹한(Frost) 이래 최악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영국예산책임처는 지난달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은 -11.3%로 예상된다"며 "300년만에 최악의 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나마 이는 백신 접종 상황까지 반영한 낙관적 수치다. 반면 '노 딜 브렉시트' 상황은 고려하지 않았다. 브렉시트 협상이 파국으로 끝나면 -2%를 추가해야 한다.
 
리시 수낙 재무장관은 내년 실업률도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7.5%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코로나에 취약한 경제구조에 브렉시트까지

가디언 등 영국 매체들은 정부가 코로나 확산 초반 다른 국가보다 봉쇄 조치에 늦게 들어가 타격을 더 크게 입었고, 서비스업 중심의 경제 구조도 코로나에 더 취약하게 만든 요소라고 지적해왔다.
 
영국통계청도 성장률 붕괴가 상점, 호텔, 식당, 학교 및 자동차 수리점 폐쇄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서비스 부문은 영국 경제의 80%가량을 차지한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가 발효되기 전 영국애서 가장 바쁜 항구이자 유럽 대륙과 가까운 펠릭스토우 항구에 컨테이터가 쌓여있다. [EPA=연합뉴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가 발효되기 전 영국애서 가장 바쁜 항구이자 유럽 대륙과 가까운 펠릭스토우 항구에 컨테이터가 쌓여있다. [EPA=연합뉴스]

업친데 덮친 격으로 브렉시트로 인한 불확실성이란 그림자까지 드리웠다.  
 
런던정경대(LSE)는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코로나19 보다 성장률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19는 단기적인 생산량 감소로 이어지지만, 브렉시트는 장기적 피해를 낳을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LSE의 연구에 따르면 노딜 브렉시트는 15년 뒤 영국 국내총생산(GDP)을 7.6% 감소시킬 것으로 예측됐다.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BOE·영국 중앙은행) 총재도 지난달 재무부 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LSE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노 딜 시 코로나로 인한 영향보다 2~3배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가 신용등급은 이미 내려갔다. 미국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영국의 신용등급을 Aa2에서 Aa3로 하향 조정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충격과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 재정 여력 악화가 이유다. 무디스는 독일과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각각 Aaa, Aa2로 유지했다.
 

무너진 자존심…셰익스피어 백신 접종에 장관 눈물  

영국인의 자존심은 산산이 부서진 상태다. "성급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영국 의약품규제청(MHRA)이 가장 먼저 화이자 백신 긴급 승인을 낸 데는 이같은 배경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8일(현지시간) 영국이 백신 접종을 시작한 날 맷 핸콕 보건부 장관은 영국 ITV에 출연해 방송 중 눈물을 보였다.


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이름이 같은 81세 남성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영국에서 두 번째로 코로나 백신 접종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고개를 떨군 것이다. 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무너진 영국의 자존심은 회복될 수 있을까. 전 세계 최초로 시작한 백신 접종의 효과, 벼랑 끝에 몰린 브렉시트 협상 결과가 이를 좌우할 것이란 평가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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