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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인사이드]“우리집엔 전쟁 없다” 미군·독일군의 크리스마스 휴전

중앙일보 2020.12.18 11:00
흔히 벌지 전투로 많이 알려진 1944년 12월에 있었던 독일군의 공세 당시에 포로가 된 미군. 초기에 많은 부대가 격파 당하며 낙오병들이 속출했다. [사진 wikipedia]

흔히 벌지 전투로 많이 알려진 1944년 12월에 있었던 독일군의 공세 당시에 포로가 된 미군. 초기에 많은 부대가 격파 당하며 낙오병들이 속출했다. [사진 wikipedia]

 
제2차 세계대전 말인 1944년 12월 24일, 독일 아헨 인근의 휘르트겐 숲속 오두막에서 벌어진 일이다.
 
근처 도시에서 살던 중 연합군이 진격해 오자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피난 온 열두 살의 프리츠 빈켄(Fritz Vinken)은 국민방위군에서 제빵사로 일하던 아버지가 퇴근하면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1944년 12월 16일 독일군 기습으로 시작된 벌지전투는 이듬해1월 27일까지 이어졌다. 기습을 받아 고립돼 참호전을 치룬 미군이 식사 배급을 받고 있다. [사진 미 육군]

1944년 12월 16일 독일군 기습으로 시작된 벌지전투는 이듬해1월 27일까지 이어졌다. 기습을 받아 고립돼 참호전을 치룬 미군이 식사 배급을 받고 있다. [사진 미 육군]

 
어머니가 문을 열자 몹시 지친 병사 둘이서 있었고 조금 뒤에는 다리에 총상을 입은 병사 한명이 눈 위에 누워 있었다. 어머니와 빈켄은 그들이 미군임을 알아채고 두려움에 떨었다. 설령 허락이 없더라도 그들은 강제로 오두막에 들어올 수는 있었다.  
 
하지만 미군은 산속을 헤매다가 이곳까지 왔다며 잠시 쉬어가게 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했다. 다행히 어머니와 미군 한명이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았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어머니가 들어오라고 손짓하자 그들은 부상자를 들어 빈켄의 침대 위에 눕혔다. 어머니는 오늘 파티에 쓰려던 수탉 한 마리와 감자를 가져와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막 끓기 시작한 고소한 치킨 수프 냄새가 오두막에 가득 찼을 무렵 또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1944년 겨울 벌지 전투에서 공세에 나선 독일군. [사진 중앙포토]

1944년 겨울 벌지 전투에서 공세에 나선 독일군. [사진 중앙포토]

 
아버지인 줄 알고 문을 연 빈켄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문밖에는 네 명의 독일군이 서 있었다.
 
뒤 따라 나온 어머니도 놀라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들이 미군을 추격해 온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적군을 숨겨 주는 행위는 즉결총살도 가능한 반역죄임을 어린 빈켄도 잘 알고 있었기에 두려움이 컸다.  
 

미군과 독일군, 크리스마스 휴전

 
그런데 독일 병사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추위를 피해 잠시 쉬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어머니가 들어오라고 답하자 병사들은 몹시 기뻐하며 음식 냄새에 코를 벌름거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우리 집에 당신들의 친구가 아닐지도 모르는 다른 손님들이 먼저 와있습니다” 그러자 독일군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고 숨어 있던 미군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년 시절 프리츠 빈켄의 모습. 그는 전쟁 중 겪었던 일을 기고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고 말년에 사건 당사자와 극적으로 해후하는데 성공했다. [사진 findagrave.com]

소년 시절 프리츠 빈켄의 모습. 그는 전쟁 중 겪었던 일을 기고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고 말년에 사건 당사자와 극적으로 해후하는데 성공했다. [사진 findagrave.com]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 집에서 싸우는 것은 허용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나 먼저 온 미군들 모두 단지 쉬고 싶어서 이곳에 왔을 뿐입니다. 오늘 밤만은 죽이는 일을 잊어버립시다”
 
“우리 모두 맛있게 저녁을 먹읍시다” 어머니가 말에 건네자 독일군과 미군들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분고분 총을 내려놓았다. 철모를 벗자 드러난 그들의 얼굴은 아직도 소년티가 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의대 출신 독일군, 미군 부상병 치료해

 
저녁을 추가로 준비하기 위해 빈켄이 창고에서 감자를 가지고 와보니 입대 전 의학을 공부했다는 독일 병사가 다친 미군의 상처를 돌보고 있었다. 어느덧 양측 병사들의 날카로운 눈빛은 사라진 상태였다.
 
따뜻한 식사가 준비되자 어머니는 모든 병사를 식탁에 함께 모아놓고 기도를 드렸다. “주님이시여, 오셔서 저희의 손님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읊조릴 때 빈켄은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았다.
 
1996년 재회한 빈켄(오른쪽)와 미군 병사 중 한명이었던 랄프 블랭크. [사진 fandom.com]

1996년 재회한 빈켄(오른쪽)와 미군 병사 중 한명이었던 랄프 블랭크. [사진 fandom.com]

 
그러자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전쟁터까지 오게 된 양국의 병사들은 그 순간 엄마 품에 안긴 어린이들의 모습으로 돌아가 펑펑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훔치기 바빴다. 그리고 맛있게 치킨 수프를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 어머니는 밖으로 나가 함께 별을 보자고 말했다.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찾는 동안 그들에게서 전쟁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독일군과 미군들은 오두막집 앞에서 악수하고 헤어져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50여년이 지난 1996년 빈켄과 당시 미군 병사 중 하나였던 블랭크(Ralph Blank)가 극적으로 해후했다. 이때 이들이 함께 먹은 음식은 치킨 수프였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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