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해 금산에 들었다. 남해안의 이 가파른 산에는 소원 하나는 꼭 들어주신다는 관음보살이 계시다. 상사암에 올라 보리암 관음보살을 바라봤다. 마침 해가 지는 시간이어서 관음보살에만 누런 해가 비쳤다. 이번에는 꼭 소원을 들어주시리라 믿는다.
3대 관음 성지 보리암
남해 바라보고 선 천하 명당
산과 절 경계 모호한 별천지
산장에선 컵라면 인증사진도
왕이 내린 이름
남해 금산은 임금이 내린 이름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금산(錦山)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금산에서 100일 기도를 올린 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했다. 과업을 이룬 보답으로 이성계가 금산에 비단을 내리려 했다. 하나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을 수 없어 이름에 비단을 내려줬다. 사실이든 전설이든, 임금이 이름을 하사했다는 산은 금산이 유일하다.

저녁놀 진 상사암. 바다 건너에 여수 향일암이 있다.
남해 금산의 기암괴석 중 단연 돋보이는 건 상사암이다. 금산 오른쪽 자락 비쭉 돋은 자리에 솟아 있다. 상사암에서 금산이 가장 잘 보인다. 보리암을 가운데 품고 양쪽으로 날개를 펼친 듯한 산세가 장쾌하다. 풍수를 몰라도 천하 명당 금산이 보인다.

금산산장에서 컵라면 먹는 인증사진이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다.
세상의 모든 소원

보리암 해수관음상. 관음보살은 중생을 구해주는 보살이다.
보리암 해수관음상이 서 있는 자리가 명당 중의 명당이다. 관음상 앞에 삼층 석탑이 서 있는데, 이 자리가 제일 기가 세다고 한다. 서재심(56) 남해군 문화관광해설사가 석탑에 나침반을 갖다 대니 바늘이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석탑 안에 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얘기도 있고, 석탑을 이루는 바위가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얘기도 있다.

쌍홍문. 왼쪽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보리암 경내로 이어진다.
남해 금산은 불교 성지일까. 보리암 전각 중에 간성각(看星閣)이 있다. 별을 보는 건물이라는 뜻이다. 별 중에서도 남극노인성을 보는 곳이다. 남극노인성은 도교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별이다. 도교에서는 이 별을 보면 장수한다고 믿는다. 관음 도량 안의 도교 건물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보리암 아래에 이성계가 기도를 드렸다는 이태조기단(李太祖祈壇)이 있는데, 여기서 이성계는 보리암 관음보살을 섬기지 않았다. 남해 금산 산신령을 찾았다. 남해 금산 정상 어귀에는 단군을 모시는 신전도 있다. 남해 금산에는 우리네 모든 믿음이 모여 있다.
가파른 산을 오르려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소원을 빌 때도 고개 숙이고 절을 해야 한다. 고개 숙여 절을 하는 건, 나를 낮추는 행동이다. 그러니까 나를 내려놓는 의식이다. 보리암 관음보살이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고 앞서 적었다.
다만 조건이 따른다. 나를 위한 소원이 아니라 남을 위한 소원이어야 한다. 이번에도 나는 내려놔야 한다. 하여 소원을 다시 빌었다. ‘내년에는 사람들이 웃는 제 얼굴을 보게 해주세요.’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