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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국회의원의 내로남불…‘해석노동자’라 그래

중앙일보 2020.12.17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75)

지금 흐느끼는 당신 혼자 아프다고 지레짐작 마시라. 그대 손톱 밑 가시보다 못하겠지만 잠 못 이루며 애간장 끊어지는 침묵도 있다. [사진 pixabay]

지금 흐느끼는 당신 혼자 아프다고 지레짐작 마시라. 그대 손톱 밑 가시보다 못하겠지만 잠 못 이루며 애간장 끊어지는 침묵도 있다. [사진 pixabay]

 
눈물에는 예방주사가 없다

 
진통과 눈물에는 예방주사가 없다
사랑을 떠나보내고
살이 끊어지는 고통을 겪었어도
새로 다가오는 건 여전히 두려움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던 그대여
일곱 번씩 일흔 번에 또 한 번을 용서해야
내 죄가 씻길 그대여
네 불임의 입을 증오한다
 
지금 흐느끼는 당신
혼자 아프다고 지레짐작 마시라
그대 손톱 밑 가시보다 못하겠지만
잠 못 이루며 애간장 끊어지는 침묵도 있다
 
한낱 미소로 떠올릴 날이 있겠지
그날이 오기까지 예방주사가 아니라
동반자가 주는 위로의 쓴 잔을 마시자
벗이 되고자 뒤척이는 고독을 알아챘다면
옹알이하는 아이처럼 보채 보련
 
아프지 않으면 외치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네 십자가가 될 수 없다
 
해설
한의원에서 치료하다 보면 환자의 육체적 고통이 외상이나 과로로 비롯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상담하다 보면 심리적, 정신적 유발인자가 더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심리적 고통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비롯한다.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갈등에서 유래한 고통은 해소하기가 어렵고 무척 광범위해 본인 한 사람만의 자각으로는 해소하기 어렵다.
 
사람이 태어나 만나는 첫 공동체는 사랑과 공감과 이해로 맺어진 게마인샤프트다. 그러나 하나의 독립적 인격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맺어진 계약사회(게젤샤프트)로 들어가 자신의 노동력을 바쳐 피땀을 흘리고 경제활동을 영위해야 산다.
 
이러한 인간 조건은 성경에서도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3,19)라고 말한다. 곧 노동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조건이라는 뜻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 노동이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노동이 단지 굴레가 아니라 보람이며 생존의 의미라는 걸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자칫 성경 구절이 축복의 말인지 저주의 말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축복하다’라는 히브리어 ‘버러카’는 무릎이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네가 무릎을 꿇고 신의 말을 수긍하면 언젠가 순종의 결과가 펼쳐지고 놀라운 체험을 하리라는 뜻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 노동이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노동이 단지 굴레가 아니라 보람이며 생존의 의미라는 걸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사진 pxhere]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 노동이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노동이 단지 굴레가 아니라 보람이며 생존의 의미라는 걸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사진 pxhere]

 
인간의 노동을 가톨릭 사제인 이반 일리치는 세 가지로 나누었다. ‘자급자족 노동’, ‘임금 노동’, ‘그림자 노동’이다. 자급자족 노동은 자기가 필요한 것을 직접 생산하는 노동이며, 임금 노동은 남이 필요한 재화를 임금을 받고 생산하는 것이다. 그럼 그림자 노동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임금 노동을 통해 임금과 소득을 얻으려 할 때 임금 노동자 뒤에서 그림자처럼 무보수로 도움을 주는 노동을 말한다. 노동은 있으나 눈에 띄는 생산물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집안에서 행해지는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이 이에 속한다. 그동안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현대사회에는 교묘하게 그림자 노동을 확대하고 있다. 임금노동자가 되기 위한 교육이라든가, 출근하는데 드는 시간, 자기 계발 비용 등이다. 또 어떤 서비스를 받기 위해 소비자가 스스로 발품을 팔거나 시간과 노력을 사용하게 하는 것 등이 새로운 그림자 노동이 되고 있다. 이는 정부와 기업이 제공해야 할 서비스를 교묘하게 무임금으로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나쁜 행위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라든가, 층간소음 문제, 쾌적한 공원 확보, 학교 교육, 유치원 확보, 공공의료, 저렴한 주거비 등은 사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미리 정부가 나서 대책을 세우고 비용을 들여 해결해야 하는데 교묘하게 개인에게 도덕적 책임을 지우며 비용과 노동을 유도하고 있다.
 
기업은 가사노동도 질을 높여야 한다며 교묘한 방법으로 경쟁을 시켜 기업의 소비자로 만든다. 그림자 노동이 무임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비용을 써가며 노력해야 하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점점 옥죄어 오는 강도가 세지고 있다. 앞으로는 이런 그림자 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더불어 그 한계를 정해 쓸데없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적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없는 사람이 점점 가난해지는 원인 중에 큰 이유도 그림자 노동 비용의 증가에 있다.
 
감정노동이란 직업상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정해진 감정표현을 연기하는 노동을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함을 잃지 않아야 하는 서비스직 종사자가 겪는 노동형태이다. [사진 pixabay]

감정노동이란 직업상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정해진 감정표현을 연기하는 노동을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함을 잃지 않아야 하는 서비스직 종사자가 겪는 노동형태이다. [사진 pixabay]

 
요즘 노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그중에 ‘감정노동’과 ‘해석 노동’에 대한 이해가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겪는 고통의 원인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됐다. 이런 연구 덕분에 자신과 타인이 겪는 어려움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감정노동이란 직업상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정해진 감정표현을 연기하는 노동을 말한다. 고객과 전화 통화나 직접 대면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함을 잃지 않아야 하는 서비스직 종사자가 겪는 노동형태이다. 고용주가 교육이나 감독을 통해 직원의 감정을 통제하는 경우를 감정노동을 일으키는 감정 업무로 본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감추고 관리해야 하는 일이 업무의 40% 이상이라면 감정노동에 해당한다. 판매, 유통, 음식, 관광, 간호, 공무원 대민업무 등 대인 서비스 노동에서 주로 발생한다. 그러나 그 범위가 점점 확장하는 추세이다. 심지어 존경받는 교사도 감정노동자로 변하고 있다. 서비스직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에서도 인간관계나 권력관계로 인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감정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은 자신의 감정을 감춰야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온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나 번아웃 증후군(감정적 소진), 우울증을 동반한 심리적, 정서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심할 경우 정신질환이나 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까지 이를 수 있다.
 
해석노동은 어떤 직책이나 직위가 낮은 계급의 사람이 자신보다 높은 사람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노력하는 노동형태를 말한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처음 밝힌 용어이다. 해석 노동의 사례는 주로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 일반에게서 나타난다. 그에 따르면 “바닥에 있는 자는 꼭대기에 있는 자의 관점을 상상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실제로 그들에게 마음을 쓰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적 약자는 모든 상황을 자기 나름으로 해석하기보다 권력을 가진 자의 눈으로 보려고 한다. 어차피 현실 상황은 권력자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해석 노동이 자신의 위치가 바뀌면 금세 잊어버린다는 데 있다. 국회의원이나 정치가가 표를 바랄 때와 당선되었을 때 달라지는 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사진 pixabay]

문제는 이런 해석 노동이 자신의 위치가 바뀌면 금세 잊어버린다는 데 있다. 국회의원이나 정치가가 표를 바랄 때와 당선되었을 때 달라지는 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사진 pixabay]

 
여성은 남성의 관점에서 사태가 어떻게 보일지를 자주 상상하며 남성의 시각을 자기 시각으로 만드는 경험을 많이 한다. 연애할 때도 여자는 남자의 반응을 잘 맞추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기에 십상이다. 대부분의 남자는 여자의 의도를 몰라 쩔쩔맨다. 평소 이런 해석 노동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해석 노동이 자신의 위치가 바뀌면 금세 잊어버린다는 데 있다. 국회의원이나 정치가가 표를 바랄 때와 당선되었을 때 달라지는 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일반 직장이나 군대에서도 아래 직급이었을 때 느꼈던 불합리한 점이나 괴로움을 실제로 승진했을 때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급격히 사라진다. 사회에서 ‘내로남불’의 행태를 보이는 것이 바로 자기가 여태 해석 노동을 해왔으니 이제는 너희가 이해할 차례라는 무언의 강요이다.
 
그림자 노동, 감정노동, 해석 노동의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이다. 불행하게도 날이 갈수록 그런 노동의 피해가 점점 악화하고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대부분이 한 가지씩 걸려 있다. 그런데도 마치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처럼 생각해왔다.
 
현대사회의 건강한 공동체 일원과 리더는 모두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통합해 목표지점을 향해 이끄는 사람이다. 그림자 노동, 감정노동, 해석 노동 등 여태껏 소홀히 여겼던 사람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여 더는 문제가 악화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고 사회적 장치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그 첫 출발은 모두가 벗이라는 생각을 실천하는 데 있지 않을까.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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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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