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해 금산에 올라 보리암 관음보살에 소원을 빌었다. 보리암은 국내 3대 관음 성지다.
2020년을 보내는 의식을 치렀다. 마음이라도 편해질까 싶어 나만의 송년회를 작정했다. 고민 끝에 남해 금산을 찾았다. 이 사연 많은 산을 오른 건 보리암 때문이다. 보리암 관음보살이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하여 정성껏 기도하고 진심으로 소원했다. ‘내년에는 거리에서 웃는 얼굴을 보게 해주세요.’
왕이 내린 이름

해 지기 직전 보리암 풍경. 상사암 꼭대기에서 촬영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보리암이 위태로이 서 있다. 천하의 명당이라 할 만하다.
이름의 내력도 범상치 않다. 금산(錦山)이란 이름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지었다. 금산에서 100일 기도를 올린 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했다. 과업을 이룬 보답으로 이성계가 산에 비단을 내리려 했다. 하나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을 수 없어 이름에 비단을 내려줬다. 사실이든 전설이든, 임금이 이름을 하사했다는 산은 남해 금산이 유일하다.

상사암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남해 앞바다. 전망이 장쾌하다.
금산은 큰 산이다. 차 타고 올라가 보리암만 들어갔다 나오면 작은 산이다. 하나 금산에는 무려 38경(景)이 전해 내려온다. 관동 지방의 명승 8곳을 일러 ‘관동팔경’이라 하듯이, 금산 자락에는 38개나 되는 명승이 있다. 명승마다 전설이 서려 있고, 역사가 배어 있다. 중국 진시황의 전설이 내려오는 터도 있고, 신라 불교의 양대 산맥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참선했다는 자리도 있다. 비둘기(천구암), 두꺼비(천마암), 닭(천계암), 용(용굴), 돼지(저두암), 사자(사자암), 거북이(요암)도 있다.

제석봉에서 바라본 상사암.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내려온다. 시인 이성복이 이 바위에 서린 전설을 듣고 '남해 금산'이란 시를 썼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이성복, ‘남해 금산’ 전문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라는 '금산산장'의 컵라면 인증사진.
세상의 모든 소원

남해 금산 보리암의 해수관음상.
‘백천만 억 중생이 큰 바다에 들어갔다가 폭풍이 불어 나찰(악귀)에 잡혔을 때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으면 나찰의 난을 벗어나게 되나니.’
『법화경』에서 인용했다. 관음보살은 곤경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쉽게 말해, 소원을 빌어주는 보살이다. 『법화경』에 관음보살에 관한 두 가지 단서가 담겨 있다. 하나가 바다다. 관음보살은 바다와 인연이 깊다. 하여 관음 도량 대부분이 바다를 끼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관음보살도 바닷가에 있다. 바다에 계신 관음보살상이라 하여 ‘해수관음상’이라 한다. 보리암 관음상도 해수관음상이다.
다른 하나는 ‘이름을 부른다’는 구절이다. 관음보살을 관세음보살이라고도 한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소리를 듣는 보살이다. 하여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경(經)의 한 대목 ‘나무관세음보살’은 꼭 소리를 내어 읊어야 한다. 그래야 관음보살이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무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뜻이다.

보리암 해수관음상.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보리암 일주문 역할을 하는 쌍홍문. 해골바가지처럼 무섭게 생겼다. 왼쪽 동굴로 들어가면 보리암 아래로 이어진다.
남해 금산은 불교 성지일까. 보리암 전각 중에 간성각(看星閣)이 있다. 별을 보는 건물이라는 뜻이다. 별 중에서도 남극노인성을 보는 곳이다. 남극노인성은 도교에서 신성히 여기는 별이다. 도교에서는 이 별을 보면 장수한다고 믿는다. 관음 도량 안의 도교 건물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보리암 아래 벼랑에 이성계가 기도를 드렸다는 이태조기단(李太祖祈壇)이 있는데, 여기서 이성계는 보리암 관음보살을 섬기지 않았다. 남해 금산 산신령을 찾았다. 남해 금산 정상 어귀에는 단군을 모시는 신전도 있다. 남해 금산에는 우리네 모든 믿음이 모여 있다.

쌍홍문 동굴 안쪽으로 돌계단이 이어져 있다. 보리암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라 할 수 있다.

상사암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조. 바다 건너에 여수 향일암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