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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처럼 했다면 정은경 감옥 갔다"…韓, 백신전쟁서 진 이유

중앙일보 2020.12.17 05:00 종합 6면 지면보기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뉴시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뉴시스

영국ㆍ미국ㆍ캐나다 등 해외 선진국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국 대열에 속속 합류하는 가운데 한국은 백신 없는 겨울을 보내게 됐다.  
 

'백신 후진국' 이유 추적해보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기윤 의원이 입수한 보건복지부의 ‘해외국가별백신 확보 동향 내부 문건’에 따르면, 미국은 최대 24억회분, 캐나다는 최대 1억 9000만회분, 영국은 최대 3억 8000만회분, EU는최대 11억회분, 일본은 5억 3000만회분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000만회분 계약이 완료된 상태다. 게다가 국내 백신 도입 시기는 일러야 내년 2~3월로 전망되면서 ‘백신 디바이드(격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선진국으로 주목받아온 한국이 백신 도입 경쟁에선 어쩌다 이렇게 뒤쳐지게 됐는지 추적해봤다.
 

“미국처럼 리스크 안고 선구매했다간 정은경 감옥행”  

방역당국에 따르면 우리 정부가 본격적인 백신 선구매 협상에 나선 것은 지난 7월이다. 그보다 이른 5월 검토에 나섰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창원파티마 소아과 교수)은 “5월에 백신에 관한 국내에서 태스크 포스(TF)를 만들어서 운영했다. 그런데 이 당시만 하더라도 환자의 발생이 많지 않아 소극적으로 대응한 측면이 있고 예산에서도 제외됐다”라고 설명했다. 
 
아스트라제네카(7월)ㆍ노바벡스(8월)와 계약의향서(letter of intent)를 각각 작성했고, 모더나(8월)ㆍ화이자(9월)ㆍ얀센(10월)등과 차례로 협의를 시작했다. 미국ㆍ캐나다 등이 인구 수를 뛰어넘는 백신 물량을 쓸어담는 상황이었지만, 우리 정부는 선구매에 주저했다. 결국 다른 나라 백신 접종이 시작된 현재 한국이 구매 계약서 체결에 성공한 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1000만회분) 하나 뿐이다. 정부는 화이자ㆍ얀센과 이달 중, 모더나와는 1월을 목표로 계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2~3월 도입 예정이지만 나머지 백신은 언제 공급될지 기약이 없다.
 
백신 도입 논의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한국이 뒤쳐진 이유에 대해 사후 책임을 두려워한 정부 관료들의 보신주의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격과 임상 성공 여부 등 여러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차근차근 (협상을 진행)한 것 같다”면서도 “우리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따져온 것이다. 미국은 리스크를 짊어지고 모더나에 1조2000억원의 연구개발(R&D) 자금을 주고 3억 도즈를 선구매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우리가 그렇게 했으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감옥 가야 하지 않았겠느냐. 그럴 만큼 돈이 있는 나라도 아니고 미국·영국처럼 하기 쉽지 않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백신을 선구매했다가 잘못됐을 경우 협상을 이끈 누군가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다보니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말 행정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백신을 과도하게 비축했을 때 그것을 몇 개월 이내에 폐기해야 되는 문제가 생기는데 그에 따르는 사후적인 책임 문제도 사실은 있다”며 책임 문제를 직접 언급했다. 그는 “세계 어느나라든 백신을 거부하는 연령층이 있고 대부분 젊은층이 그렇다”며 “코로나19 백신의 경우도 5000만명분을 다 확보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맞지 않는 분들이 분명히 많이 있을 것”이라는 궁색한 설명을 덧붙였다.  
 

“화이자ㆍ모더나가 빨리 계약맺자고 하는 상황”이라던 박능후

백신 선구매 계약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백신 성공여부ㆍ안전성 등을 감안하면 정부가 고려해야할 요소가 너무 많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정부가 실기(失期)했다고 지적한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백신이 유일한 게임체인저(판도를 뒤집어놓는 요소)이다”라며 “하루라도 빨리 맞춰 집단 면역을 형성하고 코로나를 종식시켜야 모든 것이 정상화된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지난 3~4월부터 미국ㆍ영국 등 많은 나라가 선구매 방식으로 백신 전쟁을 벌인 이유도 그때문이다. 여러 군데 다 걸쳐서 확보는 공격적으로, 대신 접종은 신중하게 했어야 했는데 정책 실패”라고 지적했다. 그는 “안전성에 문제가 있으니 천천히 확보해도 되는 것 아니냐 순진하게 생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능후 장관 발언의 변화를 따져보자. 지난달 17일 박 장관은 국회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서둘러달라”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의 주문에 “개별기업 접촉을 통해서 여러 가지 물량과 가격을 협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에 대해서 “두 회사에서도 일반 예상과는 달리 우리와 빨리 계약을 맺자고 오히려 그쪽에서 재촉을 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백신 확보에서 그렇게 불리하지 않은 여건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겠다”라고 자신했다. 
 
그의 이런 자신감 넘치는 발언은 이달 8일 정부의 백신 공급 계획 공개 때 확 바뀌었다. 박 장관은 “코로나19 백신이 세계적으로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 불공정 계약을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신 제조사들이 부작용 면책 요구를 해도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우리 정부가 백신 구매 경쟁에서 뒤쳐지면서 국민은 백신 없는 겨울을 맞이하게 됐다. '안전성'을 최우선에 놓고 백신을 들여오겠다던 정부의 말과 달리, 결과적으로 백신 효과가 가장 떨어지고(평균 70%), 해외 사용 승인을 받지 못해 불완전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만 손에 쥐게 됐다. 
       
강기윤 의원은 “정부가 K방역은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우리나라 백신 확보는 정작 해외국가 백신 확보 모니터링만 하다가 늑장 대처하고 있다”며 “방역은 선제적으로 하고 백신확보는 공격적으로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스더ㆍ황수연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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