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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단문세상] 윤석열의 ‘침착하고 강하게’

중앙일보 2020.12.17 00:35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문재인 정권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그 기세는 사납다. 움직임은 동시 다발이다. 압권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등장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선언적이다(15일 국무회의). “한국 민주주의 숙원이었던 권력기관 개혁의 제도화가 드디어 완성됐다.”
 

‘문재인 신세계’가 펼친 공수처와
총장 징계, 거기에 맞서는 듯한 말
『노인과 바다』의 고독한 투혼 담아
“인간은 파괴돼도 패배하지 않아”

그 말이 신호였나. 다음 날 새벽 4시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가 단행됐다. 정직 2개월이다. 검찰총장 징계는 헌정 사상 최초다. 저녁에 문 대통령의 징계안 재가가 있었다. 그것으로 두 사람은 결별했다. 파격적인 총장 발탁 1년 5개월 만이다.
 
신세계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다. 문 대통령의 그 야심은 성취됐다. ‘완성과 최초’는 거기에 어울린다. 그 어휘의 의미는 이중 보호망 구축이다. 윤석열 검찰의 칼날은 권력 심장부로 향했다. 징계는 그것을 차단하는 장치다. 다른 하나는 공수처의 파괴력 배양이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말은 노골적이다. “검찰 개혁 두 개의 축이 만들어진 것이다.” 공수처의 모습은 악성 진화됐다. 야당의 공수처장 비토권은 사라졌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공수처 그림과 판이하다. 그때는 반듯하고 당당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경고가 실감난다. 그것은 ‘대통령 전제(專制)정치’의 수단이다.
 
윤석열에 대한 중징계는 예고됐다. 법무부 징계위원들은 편파적이다. 그들은 추미애 법무장관 쪽 사람들이다. 징계 과정은 위법·편향의 시끄러움이다. 거기에 직권남용죄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검찰 개혁에 적힌 구호는 ‘민주적 통제’다. 그 말은 간사하다. 그것은 선출된 정치권력의 으스댐이다. 586 집권세력은 그 우월감을 과시한다. 그것으로 검찰의 중립성은 망가진다. 검찰은 청와대에 예속된다.
 
언어의 위장술은 그들의 잔재주다. 말뜻의 변질도 신세계의 풍광이다. 평등은 평등하지 않다. 정의는 헛소리다. 문재인 정권의 정체성은 촛불혁명이다. 혁명의 속성은 자기 배신과 기만이다.
 
윤석열의 카톡 프로필은 새롭다. 짧은 영어 문구가 들어갔다. ‘Be calm and strong’-. 그것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온다. ‘침착하고 강하게’-. 주인공인 늙은 어부의 단독 출항 85일째, 낚싯줄에 드디어 청새치가 물린다. 고기는 노인의 조각배보다 크다. 그는 하나님을 찾는다. “나는 신앙심이 없어요.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면 주기도문 열 번과 성모 마리아 열 번을 외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욀 수 없습니다.”  
 
그 구절은 신에 의존하지 않는 자의 말투다. 노인은 홀로 결투를 마무리한다. 그는 투혼을 불사른다. 그것이 윤석열 카톡의 글귀다. 그 말은 불굴의 삶 속의 매력을 발산한다. 윤석열은 그 글귀로 자신을 단련하는 것일까.
 
소설은 반전한다. 상어와의 사투로 바뀐다. 상어 떼가 잡힌 청새치를 공격한다. 청새치 살점이 뜯겨 나간다. 노인의 고독 속 독백이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하지 않는다.” 그 말은 비장미를 풍긴다. 늙은 어부의 기백은 절정이다. 거기에 주입된 정신이 ‘역경 속 품위’다. 헤밍웨이는 그것을 승부사의 ‘용기’로 설명한다.
 
‘문재인의 신세계’는 윤석열에게 거친 바다다. 그의 항해는 외롭다. ‘성역 없는 수사’는 승부사 근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운명은 높은 파도를 만난다.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는 치열하다. 그것들은 투혼으로 낚은 청새치다. 정직 2개월 조치는 교묘하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의 지적은 실감난다. “민심의 두려움 때문에 해임하지 못했다. 2개월 시한은 공수처 출범 일정에 맞추려고 잔머리를 굴린 졸렬한 짓이다.” 그 기간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월성 원전 수사는 헝클어질 것이다. 관련 수사팀은 바뀔 것이다.
 
공수처는 상어의 위세로 등장할 것이다. 청새치는 권력 비리 수사의 수확물이다. 공수처는 그것들을 넘겨받을 것이다. 문 정권은 수사기관의 서열을 재편했다. 공수처의 위상은 압도적이다. 경찰도 위세를 누리게 됐다. 그것은 충성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런 작업의 초점은 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 문제다. 그것은 평온한 삶이다. 전임 대통령들과 달라야 한다. 하지만 최고 권력자의 장래는 보장되지 않는다. 그것이 권력의 본질이다.
 
16일 새벽의 정직은 헌정 질서의 뒤틀림이다. 윤석열의 거부 언어는 단호하다. “임기제 검찰총장을 내쫓기 위해 위법한 절차와 실체 없는 사유를 내세운 불법부당한 조치다.” 그는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다수 국민은 그런 말들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윤석열은 민심의 등에 올라 있다. 민심의 내면은 여러 가지다. 거기에 과거 윤석열의 적폐 수사에 대한 원망과 불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국민의 우선순위도 뚜렷하다. 그것은 정권의 탐욕과 폭주 막기다.
 
민심은 야당의 분발을 요구한다. 거여 민주당의 다수결 횡포는 거침없다. 국민의힘의 대응은 유약하다. 윤석열의 투혼은 검찰에 깊숙이 주입됐다. 그의 거취는 ‘식물총장’으로 바뀐다. 그의 직위는 파괴됐다. 하지만 윤석열은 패배하지 않았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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