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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프리즘] 코로나 확진자에게도 잊혀질 권리를 주자

중앙일보 2020.12.17 00:16 종합 28면 지면보기
최모란 사회2팀 기자

최모란 사회2팀 기자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던 지인 A씨가 “이사했다”고 근황을 전했다. 갑작스러운 이사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었다. A씨의 가족 중 한 명이 직장 동료에게 감염돼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환자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머지 가족은 ‘음성’ 판정이 나와 집에서 2주간 자가격리했다. 더는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고 환자도 별다른 후유증 없이 무사히 퇴원했다.
 
하지만 그사이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엔 A씨 가족의 신상이 떠돌았다고 한다. 일과 관련된 동선에도 “놀러 간 것 아니냐”는 억측이 쏟아졌다. 이웃들도 싸늘하게 변했다. A씨는 “이사한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예전 동네 커뮤니티 등에는 아직도 우리 가족에 대한 정보가 뜬다”며 허탈해했다.
 
서울역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검체 채취를 하는 의료진. [뉴스1]

서울역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검체 채취를 하는 의료진. [뉴스1]

‘코로나 낙인(烙印)’을 막기 위해 정부는 지난 10월 확진자의 이동 경로 등 정보공개에 대한 지침을 내놨다. 확진자의 성별·나이·국적·거주지나 직장명 등 개인을 특정하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도록 했다. 거주지도 읍면동 이하 정보는 비공개로 하고 접촉자가 모두 파악된 장소 등은 공개하지 않는다. 공개된 정보도 14일 뒤엔 삭제해야 한다. 환자에 대한 과도한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지역 커뮤니티에선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어느 아파트에 산다” “아이가 어느 학교, 몇 학년” 등의 정보가 올라온다. 화성시의 한 시의원은 지난 2월부터 지난달까지 확진자의 개인 정보 등이 담긴 시 내부 자료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지속해서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지자체가 확진자 정보를 숨기고 알려주지 않아서 국민의 알 권리와 감염 예방을 위해 직접 나섰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공유한 정보가 확진자를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라는 거다. 여기에 추측까지 더해져 헛소문이 퍼져도 이를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환자들의 정보를 2주 뒤 비공개로 전환하는 공공기관과 달리 지역 커뮤니티와 SNS는 확진자나 이동 경로에 대한 정보가 계속 남는다. 이로 인해 확진자는 물론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들도 ‘코로나’라는 낙인이 찍힌다. 환자가 다녀간 곳이라는 헛소문에 폐업 위기에 몰린 곳도 한두 곳이 아니다. 오죽하면 ‘확진’보다 ‘신상이 알려지는 것이 더 무섭다’는 말도 나오고, 지자체가 나서서 확진자 정보를 삭제하는 ‘인터넷 방역단’을 운영할까.
 
코로나19 3차 유행이 본격화되면서 지자체마다 “확진자의 자세한 이동 경로를 공개하라”는 민원이 다시 빗발친다. 공감하면서도 동선 공개가 ‘코로나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닐까’하는 노파심이 든다. 나도, 내 가족도 억울한 감염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환자의 정보를 캐기보단, 이들이 원만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잊혀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최모란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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