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조가 있는 아침] (50) 겨울 정동진

중앙일보 2020.12.17 00:07 종합 26면 지면보기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겨울 정동진
김영재 (1948∼ )
나를 버리러 왔다가 너무 쓸쓸해
차마 버리지 못하고 다시 챙겨 돌아선
바닷가 겨울 간이역 첫사랑 언 새벽
-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47 ‘참 맑은 어둠’



고통을 묵묵히 견디는 모습들
 
첫사랑. 그 황홀한 무서움이여. 어쩌면 사랑을 잃고 겨울 정동진을 찾았을 것이다. 너무 쓸쓸해 나를 버리지 못했다는 표현이 애잔하다. 다시 챙긴 목숨을 싣고 떠나는 새벽 열차가 긴 여운을 남긴다. 겨울 간이역의 모습을 이보다 더 이상 절실하게 그릴 수 있을까?
 
코로나바이러스에게 빼앗긴 이 겨울이 너무나 쓸쓸하다. 사람들이 자취를 감춘 세모의 풍경이 눈물겹기만 하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렇게 사람을 피하고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백신은, 치료제는 어디쯤 오고 있는가? 고통을 묵묵히 견디는 모습들이 마치 인적 끊어진 겨울 정동진의 꽁꽁 언 새벽 풍경을 보는 듯하다.
 
197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김영재 시인은 ‘참나무는 내게 숯이 되라네’ ‘사랑이 사람에게’ ‘화엄동백’ ‘겨울별사’ ‘오지에서 온 손님’ 등의 시집을 펴냈고, 중앙시조대상과 월간 문학 동리상을 수상했다. 도서출판 ‘책만드는집’을 운영하면서 전문지 ‘열린시조’를 간행하고 있다. 등산을 좋아하는 그는 이성부 시인과 백두대간을 주파하기도 했다. 권정우 문학평론가는 “김영재 시인이 쓴 시조는 모두 고전시조의 형식을 부단히 변형시키려 하고 현대시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함으로써 작품에 시적 긴장을 부여했다”고 평했다. 
 
유자효 시인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