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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전화위복됐나, 중국 영화 '800' 올 세계 박스오피스 1위

중앙일보 2020.12.16 12:46
1937년 중일전쟁 속 무명용사들의 항전을 다룬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 ‘800(팔백)’. 자국 내 흥행을 발판으로 코로나19로 요동친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중국 영화다. [사진 TCO㈜더콘텐츠온]

1937년 중일전쟁 속 무명용사들의 항전을 다룬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 ‘800(팔백)’. 자국 내 흥행을 발판으로 코로나19로 요동친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중국 영화다. [사진 TCO㈜더콘텐츠온]

 
지금 극장가에선 올해 세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중국 영화가 상영 중이다. 1937년 중일전쟁을 다룬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 ‘800(팔백)’. 코로나19 악화 속 지난 10일 개봉해 일주일 간 1만 관객에 그쳤을 정도로 국내 반응은 미미하다. 하지만 극장통계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800’의 전 세계 매출은 4억6122만 달러(약 5039억 원)나 된다. 2위 소니픽쳐스의 ‘나쁜 녀석들: 포에버’(4억2650만 달러)을 제치고 2020년 박스오피스 1위다. ‘어벤져스’ ‘겨울왕국’ 등 할리우드 대작들이 지배해온 글로벌 박스오피스 시장에서 중국 영화가 1위에 오른 건 사상 처음이다.

중국서 9000만명 본 블록버스터 전쟁물
중일전쟁 유일한 항전 그려 '국뽕' 자극
코로나19 속 할리우드 제치고 세계 1위
"막강 자본 바탕, 시진핑식 영화굴기 가속"

 
물론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이다. 지난 3월 이후 북미 극장이 셧다운을 되풀이하면서 ‘007 노 타임 투 다이’ 등 할리우드 대작들이 일제히 개봉을 미뤘다. 월드와이드 개봉을 예정대로 한 것은 ‘테넷’ 정도이고 ‘뮬란’ ‘원더우먼’ 등은 OTT와 병행해서 극장가로 나왔다. 실제 ‘800’ 매출의 99%(4억6000만 달러)도 중국 내에서 나왔다. 눈여겨 볼 것은 그 와중에 ‘테넷’이 북미(5780만 달러)보다 중국(6660만 달러)에서 더 벌어들였다는 점이다. 올 하반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정상에 가깝게 가동되는 시장은 중국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10월 외신들은 올 중국 영화시장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북미를 제쳤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극장 스크린 수는 수년전부터 세계 1위다. 지난해 말 기준 6만9787개로 4만여개로 집계되는 북미 시장 스크린 수를 훌쩍 넘었다. 지난해 중국 전체 극장가에선 총 1억 2500만 회의 영화 상영이 이뤄져서 전년 대비 12.9%가 늘어났다. 이 많은 극장들이 올 상반기 코로나19로 초토화됐다. 부활을 이끈 게 ‘800’이다. 지난 7월 개봉 당시 중국 극장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좌석 판매를 30% 이하로 제한했다. 그런 여건에서 ‘800’은 열흘 만에 6000만명을 끌어들였다. 좌석 판매율은 10월 이후 75%로 완화됐고 이때까지 이미 9000만명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된다. ‘800’은 국경절 연휴(10월초) 성수기를 맞아 개봉한 ‘아화아적가향(我和我的家乡)’에 1위를 물려줄 때까지 영화 부흥 열기를 이끌었다.
1937년 중일전쟁 속 무명용사들의 항전을 다룬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 ‘800(팔백)’. 자국 내 흥행을 발판으로 코로나19로 요동친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중국 영화다. [사진 TCO㈜더콘텐츠온]

1937년 중일전쟁 속 무명용사들의 항전을 다룬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 ‘800(팔백)’. 자국 내 흥행을 발판으로 코로나19로 요동친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중국 영화다. [사진 TCO㈜더콘텐츠온]

1937년 중일전쟁 속 무명용사들의 항전을 다룬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 ‘800(팔백)’. 자국 내 흥행을 발판으로 코로나19로 요동친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중국 영화다. [사진 TCO㈜더콘텐츠온]

1937년 중일전쟁 속 무명용사들의 항전을 다룬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 ‘800(팔백)’. 자국 내 흥행을 발판으로 코로나19로 요동친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중국 영화다. [사진 TCO㈜더콘텐츠온]

 
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중국 관객들이 노도처럼 달려간 걸까. 영화는 중일전쟁 당시 거의 유일한 항전의 기억 ‘상하이 사행창고 보위전’을 다룬다. 당시 중국은 난징(南京) 불평등조약에 따라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고 상하이·광저우 등 항구를 개방한 상태였다. 특히 상하이는 폭 50m에 불과한 쑤저우 강(황푸 강 지류)을 경계로 영국이 치외법권을 행사 중인 조계 지역(남쪽)과 북쪽이 완전 딴 세상이었다. ‘동방의 파리’로 불린 강 남쪽에서 서양식 옷차림의 상류층이 외국인들과 섞여 향연과 도박을 벌이는 동안 북쪽에선 살육에 가까운 일본군의 진격이 이어졌다. 영화의 주무대는 이 북쪽에서 일본군의 진격을 막는 마지막 보루가 된 6층짜리 건물 사행창고다. 사행창고란 전쟁 발발 전까지 네 개의 외국은행이 같이 쓴 창고라서 붙은 이름이다.
 
이 창고를 최후 방어선으로 사수한 이들은 국민혁명군 제88사단 제524연대 제1대대. 훗날 중국 특유의 부풀림이 붙어 800명으로 회자됐지만 실제론 400여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들은 최신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맞서 말 그대로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다. 실제 역사 속 나흘 격전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데 엎치락뒤치락 전투 자체가 손에 땀을 쥐게 해 총 149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이 과하지 않다. ‘덩케르크’ ‘어벤져스’처럼 전체 영화를 디지털 아이맥스(IMAX)로 촬영했다. 아시아 최초다.  
 
1937년 중일전쟁 속 무명용사들의 항전을 다룬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 ‘800(팔백)’. 자국 내 흥행을 발판으로 코로나19로 요동친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중국 영화다. [사진 TCO㈜더콘텐츠온]

1937년 중일전쟁 속 무명용사들의 항전을 다룬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 ‘800(팔백)’. 자국 내 흥행을 발판으로 코로나19로 요동친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중국 영화다. [사진 TCO㈜더콘텐츠온]

1937년 중일전쟁 속 무명용사들의 항전을 다룬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 ‘800(팔백)’. 자국 내 흥행을 발판으로 코로나19로 요동친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중국 영화다. [사진 TCO㈜더콘텐츠온]

1937년 중일전쟁 속 무명용사들의 항전을 다룬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 ‘800(팔백)’. 자국 내 흥행을 발판으로 코로나19로 요동친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중국 영화다. [사진 TCO㈜더콘텐츠온]

중국 6세대 감독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관후(管虎) 감독이 10년 간 구상하고 제작비 5억 위안(약 860억 원)을 쏟아 부었다. 1년여에 걸쳐 당시 건물들을 실제 크기·형태대로 복원하고 실감 나는 전투 장면을 찍었다. 다수 할리우드 스태프의 노하우를 빌었지만 중국의 자본과 인력 없이는 어림없을 규모다. 한마디로 ‘중국 영화가 할리우드만 못할 게 뭔가’ 하는 자신감이 물씬하다. 이를 받쳐주듯 영화의 엔드크레딧에는 수백채의 마천루가 즐비한 상하이 푸둥(浦東) 지구의 현재 모습을 조감한 영상이 포함됐다.
 
그렇다고 ‘특수부대 전랑2’(2017), ‘유랑지구’(2019) 등을 잇는 ‘국뽕’ 블록버스터로만 볼 수도 없다. 시골에서 농사짓다 갑자기 군인이 된 젊은이들이 일본군 포로를 사살하는 상황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이나 강 남쪽의 휘황찬란한 ‘천국’을 보면서 탈영 욕망을 느끼는 장면 등은 전쟁의 비인간성과 아이러니를 여실히 담아낸다. 서방 언론에 중계된 이 전투 자체가 수뇌부의 국제여론 호소용 전략이었고 무명용사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한 애국심 호소였다는 결말에 이르면 ‘이게 정말 시진핑 시대의 중국 영화 맞아?’ 싶을 정도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영화는 지난해 상하이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가 상영 전날 “기술적인 문제로” 취소됐고 개봉이 연기돼 왔다. 그랬다가 중국이 코로나19 방역 성공을 자화자찬할 시기에 극장에 걸려 대박을 터뜨렸다.
 
김원동 한중콘텐츠연구소 대표는 “‘800’은 체제 선전용인 주선율(主旋律)로 만들어진 건 아니지만 개봉 시기에 그런 역할을 하게 된 영화”라고 짚었다. 주선율 영화란 중국에서 건전한 사회주의적 가치를 고취시키고 정부 정책과 체제 옹호 목적에서 제작되는 영화다. 지난달 국내에도 개봉한 코로나19 방역 영화 ‘최미역행’이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전쟁영화란 게 기본적으로 애국주의를 깔고 가는데, ‘800’은 미·중 무역전쟁이 악화하고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국민의 애국 단결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관객의 영화 갈증과 맞물려 흥행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800’의 관후 감독은 10월 말엔 항미원조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금강천’을 개봉해 11월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항미원조전쟁이란 6·25전쟁을 중국이 부르는 이름으로 최근 중국에선 이를 소재로 한 대작 영화가 잇따르고 있다. 임대근 한국외국어대 교수(글로벌문화콘텐츠학)는 “시진핑 집권 이후 미디어·영화를 이데올로기 수단으로 ‘대국굴기’를 꾀하는 중국의 정책은 강화돼 왔다”면서 “할리우드 및 한국과의 합작을 통해 제작·기술력을 따라잡은 중국은 막강한 인력과 자본을 통해 계속 공격적인 영화들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0 글로벌 영화 흥행 순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20 글로벌 영화 흥행 순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한편 코로나19가 덮친 올 세계 극장가에선 5억 달러 이상 흥행작이 한편도 없었다. 지난해 14편에 이르렀던 것과 대조적이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박스오피스 순위는 ‘800’과 ‘나쁜 녀석들’에 이어 ‘테넷’(3억6140만 달러), ‘수퍼 소닉’(3억1022만 달러), ‘닥터두리틀’(2억4607만 달러)이 톱5에 들었다. 6위는 중국 애니메이션 ‘강자아’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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