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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글씨도 맨들고~" 칠곡할매들 삐뚤빼뚤 손글씨가 서체로

중앙일보 2020.12.15 12:01
자신들의 글씨체가 쓰인 푯말을 들고 기념 촬영 중인 칠곡할매들. 왼쪽부터 김영분(74), 권안자(76), 이원순(83), 이종희(78), 추유을(86) 할머니. [사진 칠곡군]

자신들의 글씨체가 쓰인 푯말을 들고 기념 촬영 중인 칠곡할매들. 왼쪽부터 김영분(74), 권안자(76), 이원순(83), 이종희(78), 추유을(86) 할머니. [사진 칠곡군]

한글을 막 깨우쳐 삐뚤빼뚤하면서, 어린이 같은 글씨를 쓰는 시골 할머니들의 손글씨가 ‘서체’로 개발됐다. 유명인이나 역사적인 인물이 아닌 시골에 사는 할머니들의 손글씨가 서체로 만들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영분체 권안자체 이원순체 이종희체 추유을체
무료 다운로드, 정감가는 시쓰는 칠곡할매들 서체

 경북 칠곡군이 주관해 개발한 할머니 서체 이름은 ‘칠곡할매 서체’다. 한글을 깨우쳐 시를 쓰고, 시집 발간에 참여한 할머니들 가운데 5명을 선정해 각각 다른 5개의 칠곡할매 서체를 만들었다.  
 
 칠곡할매들은 시 쓰는 할매로 유명하다. 이런 시들이다. 
 

‘공부시간이라고/일도 놓고/헛둥지둥 왔는데/시를 쓰라 하네/시가 뭐고/나는 시금치씨/배추씨만 아는데.’ -소화자 할머니의 ‘시가 뭐고?’ (2015년 10월 1집 『시가 뭐고?』 수록)

 

‘나는 백수라요/묵고 노는 백수/콩이나 쪼매 심고/놀지머/그래도 좋다.’ -이분수 할머니의 ‘나는 백수라요’ (2016년 10월 2집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수록)

 

‘내친구 이름은 배말남 성주댁/얼구리 애뻐요/성주댁 이를 잘해요/친구가 있어 조아요.’ - 권영화 할머니의 ‘옆자리 친구’ (2018년 11월 3집 『내친구 이름은 배말남 얼구리 애뻐요』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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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뚤빼뚤한 글씨체, 문법도 꼼꼼하게 보면 틀린 게 많다. 시구의 ‘절제의 미학’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시들을 담은 시집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3권이나 발간돼 인기 속에 팔렸다. 글쓴이들이 모두 칠곡군 25개 시골 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이다. 시 쓰는 칠곡할매들은 지난해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로도 알려졌다.
 
 서체는 시 쓰는 할머니 중에 손글씨에 개성이 있는 김영분(74), 권안자(76), 이원순(83), 이종희(78), 추유을(86) 할머니의 글씨다. 그래서 서체 이름도 할머니들 이름 뒤에 '체'를 붙여 쓴다. 추유을체, 김영분체, 권안자체 같은 형태다. 
 
 칠곡할매 서체를 만든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글씨체가 담긴 푯말을 들고,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칠곡군]

칠곡할매 서체를 만든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글씨체가 담긴 푯말을 들고,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칠곡군]

 할머니들은 지난 4개월간 펜을 몇 번씩 바꾸어 가며 글씨 쓰기에 몰두했다고 한다. 한명 당 종이 2000여장에 글씨를 써가며 서체 만들기에 정성을 기울였다. 할머니들이 하기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유독 할머니들을 힘들게 한 건 영어와 특수문자였다. 한글은 배운 것이기에 쓸 수 있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영어와 특수문자의 경우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때 지원군으로 나선 건 손주들. 손주들이 옆에서 할머니들의 도우미로 서체 만들기를 도왔다. 
 
 할머니들의 서체는 경북 칠곡군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글씨를 클릭하면 자동으로 연결됩니다*) 받을 수 있다. 곧 모바일 서체도 배포될 예정이다. 
 
 윈도우용과 맥(MAC)용 모두 별도로 개발돼 있다. 칠곡군은 자체 홍보 문구와 지역 특산물 포장에 칠곡할매 서체를 사용할 계획이다. 
 
 칠곡군 측은 "개인 및 기업 사용자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서체다. 유료로 양도하거나 판매할 수 없으며, 배포되는 형태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칠곡할매들은 곧 4집 준비에도 들어간다. 4집은 시집이 아니라 편지글을 묶은 책으로 발간할지를 검토 중이라고 칠곡군 성인문예반 측은 설명했다. 앞서 발간한 모든 시집처럼 4집 발간 후 수익이 발생하면 전액 장학금으로 기부할 방침이다.  
 
칠곡=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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