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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성추행 의혹 장외 논쟁...하다하다 피해자 실명까지 깠다

중앙일보 2020.12.15 05:00

“고소인(피해자 A씨)은 고인(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존경하는 분으로 표현했고, 위력에 의해 의사가 제압돼 추행을 거부할 수 없었다고 하는 고소인의 주장에 반하는 정황과 증거가 우세하다” (오성규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지 5개월이 넘었지만, 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을 둘러싼 ‘장외 논쟁’은 여전하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경찰 등이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지만, 아직 사건 관계자들의 주장과 정황 외에는 객관적이라고 할 만한 증거가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탓이다.

[현장에서]

 

“피해자 중심주의 넘어선 절대주의는 안돼”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린 지난 7월 13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한 시민이 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린 지난 7월 13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한 시민이 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지난 12월 초 김주명·오성규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 등 사건 관계자가 인권위에 제출한 의견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A씨의 평소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위력에 의해 성추행을 당했다 보기 어렵고 전·현직 비서실 직원이 사건을 묵인·방조했다고 보기엔 증거도 부족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오 전 비서실장은 “강제추행을 증명할 근거로 고소인 측이 제시한 것은 ‘텔레그램 비밀대화 초대화면’이 유일하다”며 “아무리 ‘피해자 중심주의’가 관철된다 해도 구두 주장만 가지고 사실관계를 확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A씨가 자발적으로 박 전 시장의 SNS에 ‘좋아요’를 누르고 자신의 SNS에도 #감사 #박원순 #만세 등을 썼기 때문에 위력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작다”고도 했다.
 
두 비서실장의 의견문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넘어선 ‘피해자 절대주의’를 강요해선 안 된다”는 대목이다. 오 전 비서실장은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해야 한다는 증거재판주의를 일방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하는 판단을 하게 된다”며 “고소인의 진술 하나만 있으면 아무런 근거가 없어도 같이 근무한 사람들까지 처벌할 수 있다는 압박에 최소한의 존엄은 어디서 구할 수 있나”라고 호소했다.
 
피해자 중심주의란 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과 주장을 우선시하는 관점으로 권력 차이에 의해 발생하기 쉬운 성폭력 사건 등에서 피해자의 진술과 관점이 중시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 재검토와 관련해 피해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의 해결 등 맥락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말이다.
 

피해자 실명·직장 공개에 피해자 측 고소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피해자의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김재련 변호사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2차 가해자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피해자의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김재련 변호사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2차 가해자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그런데 ‘피해자 중심주의적인 시각으로 해당 사건이 편향되게 알려졌다’는 취지의 주장이 나온 지 닷새 만에 이를 반박하는 고소사건이 발생했다. 박 전 시장의 지지자로 추정되는 2명이 회원 1000명이 넘는 네이버 밴드 ‘박원순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블로그에 피해자 A씨의 실명과 직장명을 공개적으로 적시한 데 따른 것이다.
 
A씨의 법정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실명, 직장, 사진 공개 등 피해자에 대한 위협이 이뤄져 왔다”며 “우리 법 시스템에선 피해자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지 않을 뿐더러 이 같은 사례에 비춰보면 ‘피해자 중심주의가 과도하다’고 말하기는 더더욱 어렵다”고 했다. 
 
그간 친여 성향의 유튜브 채널은 박 전 시장의 결백을 주장하며 피해자의 평소 행동을 담은 영상과 사진 등을 지속해서 공개해왔다. A씨가 민소매 차림의 사진을 박 전 시장에게 보냈고 A씨가 오히려 박 전 시장에게 무릎에 ‘호~ 해달라’고 요청했으며 박 전 시장의 생일파티나 등산 때 신체를 접촉했기 때문에 박 전 시장은 결백하다는 게 이들 주장의 요지다. “비서가 박 시장님을 성추행한다”는 댓글도 많이 달렸다.
 

경찰, 박 전 시장 휴대폰 포렌식 재개

한 유튜브 채널이 전직 서울시청 관계자에게 제보받아 공개한 피해자 A씨의 평소 모습. [유튜브 캡처]

한 유튜브 채널이 전직 서울시청 관계자에게 제보받아 공개한 피해자 A씨의 평소 모습. [유튜브 캡처]

하지만 이런 유튜버의 주장과 두 전직 비서실장의 주장 역시 직접적인 증거를 근거로 한 것은 아니다. 이들의 주장대로 A씨가 SNS에 자발적으로 ‘좋아요’를 눌렀다고 해도 ‘피해자의 평소 행동으로 미뤄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 없었다’고 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전 비서실장들이 주장한 증거재판주의(사실의 인정은 증거능력이 있는 증거에 의해야 한다)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적용돼야 하는 원칙일 것이다. 피해자 측은 사건의 증거가 담긴 휴대전화를 인권위와 경찰 측에 모두 제출했다. 인권위는 이를 바탕으로 조사 보고서를 이달 중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경찰 역시 지난 7월 유족의 요청으로 정지됐던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을 재개한다는 계획을 14일 밝혔다. 정황만으로 사실관계를 다투기엔 아직 많은 증거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입증되지 않은 주장들을 계속해서 내놓는다면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수준을 넘어 왜곡으로 흐를 수 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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