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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에코사이언스] 바이러스 전쟁 이기려면 ‘생태계 지원군’ 도움 있어야

중앙일보 2020.12.15 00:30 종합 26면 지면보기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전 세계에서 7000만 명 이상이 감염됐고, 16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누적 확진자는 4만30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600명에 육박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지배해온 행성 지구
인류 세력 커지며 주도권 다툼
코로나·AI·돼지열병으로 충돌
생물다양성 지켜 역병 막아야

이런 와중에 조류인플루엔자(AI)도 극성이다. 지난달 26일 전북 정읍의 육용 오리 농장에서 AI가 발생한 이후 경북 상주와 경기 여주의 산란계, 충북 음성 메추리 농장, 전남 나주 육용 오리 농장에도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이 나왔다. 이미 500만 마리의 닭·오리·메추리가 도살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도 걱정이다. 지난 5일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에서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감염 멧돼지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설치한 광역 울타리로부터 남쪽으로 4.3㎞ 남쪽 지점이다. 지난달 28일 경기도 가평군의 광역 울타리 밖에서 포획된 멧돼지 4마리에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돼 양돈 농가를 긴장시키고 있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곳곳에서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일부에서 “인류가 핵전쟁이 아니라 바이러스로 인해 멸망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는데, 요즘 같아서는 엄살이나 과장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인류와 바이러스가 전면전은 지구 생태계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다. 바이러스가 지배하던 행성 지구를 인류가 장악했고, 바이러스가 재탈환에 나선 형국이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여주시 산란계 농가 인근 오리 농장에서 지난 8일 예방적 살처분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여주시 산란계 농가 인근 오리 농장에서 지난 8일 예방적 살처분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뉴욕타임스 과학 기자이자 저술가인 칼 짐머의 책 제목처럼 지구는 ‘바이러스 행성’이다. 학자들은 지구 바닷속에 10의 30승(乘)개 정도의 바이러스가 존재한다고 추정한다. 또 세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 즉 박테리오파지의 숫자도 지구 전체로 10의 31승이나 된다. 바이러스가 세포(세균)보다 먼저 출현했는지, 나중에 출현했는지는 여전히 논란이지만 대략 15억 년 전에 지구에 출현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 바이러스가 동물·식물·미생물을 공격해 숫자를 조절하면서 지구 생태계를 유지해왔다. 보이지 않는 지배자인 셈이다.
 
여기에 인류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길게 잡아야 250만 년 전, 현생 인류로 따지면 20만 년 전에 출현했지만 엄청난 힘을 키웠다. ‘지구 환경변화(Global Environmental Change)’ 저널에 최근 발표된 오스트리아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건물·도로·자동차 등 인공물의 무게는 2015년 기준으로 9610억 톤으로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 무게를 초과했다. 지난 10월 미국 콜로라도대학 연구팀은 ‘네이처 지구 환경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오늘날 지구 포유류 생물량(biomass)의 96%는 사람과 가축이, 조류의 70%는 가금류가 차지한다. 인류는 1950년 이후 지구 생태계를 급격히 변화시킨 끝에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 시대를 열었다고 선언할 정도다.
 
지난해 10월 강원도 화천군 지역에 설치한 포획틀에 잡힌 야생 멧돼지. [뉴스1]

지난해 10월 강원도 화천군 지역에 설치한 포획틀에 잡힌 야생 멧돼지. [뉴스1]

인류는 코로나19 등으로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는 오랜 세월 행성을 지배해온 바이러스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침입종’인 인류를 제어하기 위해 투입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보다는 인류 스스로 불러온 재앙일 가능성이 높다. 야생 동물 서식지를 파괴하고 야생동물을 밀렵·밀거래한 탓에 박쥐에 있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에게 번졌고, 갯벌을 간척해 농지로 바꾼 탓에 AI 바이러스를 가진 철새가 서식지를 잃고 사람 사는 곳으로 다가왔다. 아프리카에 숨어있던 돼지열병 바이러스를 전 세계에 퍼뜨린 것도 결국은 사람이다.
 
인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박쥐를 없애면 코로나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고, 멧돼지를 몰아내고 철새를 다 쫓으면 AI나 ASF를 뿌리 뽑을 수 있을까. 쉽지 않다. 멧돼지·철새를 몰아내도 다른 동물이 다른 바이러스를 옮길 것이기 때문이다.
 
종 희석(Species Dilution) 이론에 따르면 생태계에 다양한 생물종(숙주)이 공존하면 바이러스가 희석되고 매개 곤충을 거쳐 인류에게 전달되는 것도 줄어든다고 한다. 생물 다양성이 줄면 바이러스가 더 쉽게 사람에게로 옮아온다는 것이다.
 
지난 7월 미국 프린스턴 대학 연구팀은 ‘사이언스’에 기고한 글에서 코로나19로 2020년 전 세계는 최소 5조 달러(5546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비해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을 방지하기 위한 생태계에 보호에 들어가는 비용은 180억~270억 달러(20조~29조 원)면 된다. 피해액의 0.5%만 생태계 보호에 투자하면 코로나19와 같은 고통을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바이러스 위기를 극복하려면 지구 생태계라는 지원군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2050 탄소 중립’ 선언은 하나의 청신호다.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기후변화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자연 생태계와 화해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탄소 중립 선언을 일회성 이벤트로 삼아 한껏 생색만 내고 책임은 다음 정권에 넘기는 ‘온실가스 폭탄 돌리기’가 반복돼서는 곤란하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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