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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베토벤 250주년 무효설

중앙일보 2020.12.15 00:11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이 점에서 그는 도무지 고집불통이어서 환각에 사로잡혔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정도다.” 베토벤의 전기 작가인 메이너드 솔로몬은 작곡가의 정신세계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글을 쓴다. 특히 베토벤이 자신의 출생연도를 자꾸만 ‘의도적으로’ 착각하는 게 환각에 가깝다고 본다.
 
문서상 베토벤은 1770년 12월 15일 또는 16일생이다. 독일 본에 남아있는 세례 증서는 그의 세례 날짜를 같은 해 12월 17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 이틀 전으로 추산한다. 이렇게 보면 베토벤의 생일은 확실한데, 베토벤은 친구에게 자신의 생일이 1772년이라고 적어 보냈다. 자신의 세례 증서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태어나고 바로 세상을 떠난 형의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똑같이 루트비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그 형의 세례 증서는 1769년 4월 2일자로 따로 있다. 결국 베토벤이 자신이 두 살 어리다고 믿은 것은 순전히 ‘뇌피셜’이라는 뜻이다.
 
베토벤 ‘합창’교향곡은 EU의 국가로도 사용된다. [AP=연합뉴스]

베토벤 ‘합창’교향곡은 EU의 국가로도 사용된다. [AP=연합뉴스]

솔로몬은 베토벤이 자신의 출생에 대해 자꾸만 이야기를 덧붙이는 행동을 근거로 내면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부정, 어머니에 대한 집착을 밝혀낸다. 자신의 출생연도까지 스스로 만들어내는 베토벤이 결국 완벽한 태생에서 시작해 완벽한 가정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됐다는 점도 드러낸다. 알코올 중독자이자 아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했던 아버지와, 늘 행복하지 않았던 어머니가 베토벤의 유년 시절 기억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제 또 다른 12월을 보자. 1808년 12월. 실제로는 38번째, 자신의 믿음으로는 36번째 생일을 넘긴 그해의 12월 2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거대한 음악회가 열렸다. 음악회장은 추웠지만 관객으로 가득했다. 청력 이상을 비관해 6년 전 유서까지 남겼던 20대 후반의 베토벤은 다시 음악에 집중해 수많은 곡을 쏟아내고 음악의 최첨단 도시인 빈 청중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었다. 베토벤은 이날 공연을 4시간짜리로 기획했다. 교향곡 두 곡, 피아노 협주곡 한 곡, 성악곡 한 곡, 미사의 발췌곡 두 곡, 합창 교향곡 한 곡을 연주하는 마라톤 프로그램이었다. 베토벤의 모든 활동에서 이 12월 공연은 가장 기념비적 무대로 꼽히고 있다.
 
그리고 이번 12월이다. 2020년 12월은 계획대로라면 베토벤의 250주년으로 화려했어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조용하다. 특히 매해 연말 무대의 단골이었던 ‘합창’ 교향곡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에, 마스크를 쓸 수 없는 합창단과 성악가 4명이 출연해야 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해에 ‘합창’ 교향곡 없는 12월이라니 생경하다. 게다가 그사이에 무대 공연은 사라지고, 예술가들은 터전을 잃었다. 베토벤의 주장처럼 올해 250주년을 무효로 하고 2년 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드는, 베토벤의 이상한 생일날이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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