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거대 여당의 ‘편 가르기 입법’, 민심이 심판할 것

중앙일보 2020.12.15 00:02 종합 34면 지면보기
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등 이른바 ‘편 가르기 법안’들을 완력으로 밀어붙여 처리했지만 민심은 냉랭하다. 거대 여당은 공수처법 처리로 문재인 대통령의 숙원인 공수처 설립의 기틀을 마련했고, 5·18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및 역사왜곡 처벌 특별법과 국정원법도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여당의 일방적인 폭주에 민심은 등을 돌렸다. 어제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공수처법 통과가 ‘잘못된 일’이라는 응답은 54.2%, ‘잘된 일’이라는 대답은 39.6%였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36.7%로 역대 최저치였다.
 

기본권 침해 법안에 필리버스터 강제 종결
거여 폭주 어떤 결과 낳을지 몰라, 자성해야

거대 여당은 편 가르기 법안 시리즈 처리 막판까지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면서 민주주의 관행을 훼손했다. 소수 의견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인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강제 종결시키고 쟁점 법안들을 단독 처리했다. 당초 여당은 “충분한 의사 표시를 보장해 달라는 야당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김태년 원내대표)며 필리버스터를 허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제풀에 꺾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국민의힘 초선 전원이 참여키로 한 필리버스터에서 부동산과 입법 독주 이슈 등이 부각되자 여당은 “무제한 토론이 아니라 무제한 국력 낭비에 불과하다”(김태년)며 태도를 바꿨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역대 최장 시간인 12시간47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하며 주목받는 등 분위기가 여권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코로나 확진자 급증을 명분으로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결시켰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과 5·18 특별법 등에 대해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가 침해돼 기본권이 무너진다는 지적이다.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에 대한 우려는 국제사회로 확대됐다. 미국 의회 내 초당적 국제인권기구 공동위원장인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하원 의원은 “한국 헌법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상 의무의 명백한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5·18 특별법에 대해서도 얼마 전 광주 출신의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그들만의 5·18을 폄훼한다”는 글로 주목을 끌었다. 실제 5·18을 악의적으로 왜곡·날조하는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등으로 처벌하는 이 법은 5·18을 앞세워 편 가르기를 하려는 게 아닌가 싶어 심히 우려스럽다.
 
거칠게 폭주만 할 줄 아는 여당은 지금 저지른 일들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칼이 있다고 휘두르기만 해서 되겠나. 이해찬 전 대표가 지난 4월 총선 승리 후 과거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언급하며 “국민이 원하는 것 생각지 않고 우리 생각만 밀어붙였다”고 반성한 것을 여당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