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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 2389억까지 털었다···'로봇기업 변신' 약속 지킨 정의선

중앙일보 2020.12.11 17:34
현대차그룹이 로봇 개 '스팟'으로 유명한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다. 미래 사업 분야의 20%를 로보틱스로 바꾸겠다는 전략을 본격화하는 셈이다. 지난 8일 노르웨이 티나 브루 노르웨이 석유·에너지부 장관이 산타 클로스 모자를 쓴 스팟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이 로봇 개 '스팟'으로 유명한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다. 미래 사업 분야의 20%를 로보틱스로 바꾸겠다는 전략을 본격화하는 셈이다. 지난 8일 노르웨이 티나 브루 노르웨이 석유·에너지부 장관이 산타 클로스 모자를 쓴 스팟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년 전 밝혔던 로봇 기업으로 변신 약속을 지켰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를 통해서다.
 
현대차그룹은 이 회사 지분의 80%를 인수하기로 했고, 정 회장은 이 가운데 20%(2389억원)를 직접 매입하며 사업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로써 그룹의 미래 사업 방향 중 하나인 로보틱스 사업이 본격화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임직원과 타운홀 미팅에서 “그룹의 미래는 자동차(50%)·개인항공(30%)·로보틱스(20%)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회장, 사재 털어 지분 획득

현대차·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현대차그룹 3사는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를 8억8000만 달러(약 9500억원)에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인수하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11일 공시했다.  
보스터 다이내믹스. 사진 현대차

보스터 다이내믹스. 사진 현대차

정 회장이 사재를 털어 대규모 인수·합병(M&A)에 투자한 건 이례적이다. 현대차는 “미래 신사업에 대한 책임경영 강화와 지속적인 투자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차두원 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 소장은 “자율주행·도심항공모빌리티(UAM)·로봇 등 미래 기술 확보를 위해 완성차업계 간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현대차도 여러 방면에서 ‘기술 획득 단계’를 밟고 있는 중”이라며 “회장이 지분 20%를 투자한 건 로봇 사업에 대한 그룹 미래 사업의 우선권을 표방한 것”이라고 말했다.
 
네발로 걷는 로봇 개 ‘스팟(SPOT)’으로 유명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였던 마크 레이버트가 대학 내 벤처로 시작한 뒤 1992년 분사해 창립했다. 로봇 운용에 필수적인 자율주행(보행)·인지·제어 등 종합적인 측면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3년 구글에 인수된 후 2017년 다시 소프트뱅크로 넘어갔다.

세계 최고 로봇 기술력 가져 

현대차는 이번 인수로 로봇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선 회장은 이날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난 현대차의 역량에 더해져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플레이터 보스턴 다이내믹스 CEO는 “현대차그룹과 함께 모빌리티 산업이 직면한 변화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첨단 자동화 목표를 실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등과 연계해 로봇 시장 진입부터 스마트 물류 솔루션까지 사업 영역이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제조업 현장의 자동화 등 로봇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밸류 체인 구축도 가능해졌다. 모빌리티의 마지막 단계인 ‘라스트 마일(Last Mile)’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할 수도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대차가 큰돈을 들여 글로벌 1위 기업을 인수한 이유는 양산 체제로 원가를 낮춰 상용화하겠다는 것”이라며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밸류 체인(가치 사슬) 차원에서 현대모비스 등이 로봇 부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스터 다이내믹스. 사진 현대차

보스터 다이내믹스. 사진 현대차

“현대차, 인수 후 관리 능력 시험대 될 것”

전문가들은 이번 인수를 현대차가 미래기술 인수 후 관리자 능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두원 소장은 “최근 조인트벤처 투자는 몇 차례 있었지만, 대규모 인수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자존심 강한 MIT 연구진과 전통적인 제조업체인 현대차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콧대가 높다’는 평가가 퍼져 있다. 전 주인이었던 구글·소프트뱅크도 이런 점에 애를 먹었다는 얘기도 있다. 자칫 현대차도 전 주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하만도 삼성에 인수됐지만, 사실상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며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앞선 기술을 자율주행·도심항공 등 여러 방면에 이식하고 싶은 현대차가 원하는 건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독자 노선을 걷는 게 아닌 만큼 더욱 긴밀한 관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태봉 센터장도 “기술 이전이 없으면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로 현대차가 얻는 실익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최근 글로벌 로봇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제조 로봇을 비롯해 물류 운송 로봇 등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현대차에 따르면 2017년 245억 달러 수준의 세계 로봇 시장은 연평균 성장률(CAGR) 22%를 기록해 올해 444억 달러(약 48조원)까지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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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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