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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데스탱의 박정희 핵개발 담판...美 압력으로 3년만에 좌초"

중앙일보 2020.12.11 05:00 종합 16면 지면보기
1973년 5월 하순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와 핵재처리 시설 도입 및 북한의 유럽경제공동체(EEC) 승인 거부 문제를 놓고 비밀 협상을 벌인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당시 재무장관. 이듬해 대통령이 된 데스탱은 김 총리와 1926년생 동갑으로 뜻이 서로 맞았다. 그는 지난 2일 94세로 별세했다. [중앙포토]

1973년 5월 하순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와 핵재처리 시설 도입 및 북한의 유럽경제공동체(EEC) 승인 거부 문제를 놓고 비밀 협상을 벌인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당시 재무장관. 이듬해 대통령이 된 데스탱은 김 총리와 1926년생 동갑으로 뜻이 서로 맞았다. 그는 지난 2일 94세로 별세했다. [중앙포토]

"지스카르 데스탱 재무장관과 회담을 하는 데 재무성으로 빨리 좀 와 주세요."

 
1973년 5월 하순 아침. 당시 주섭일(83) 중앙일보 프랑스 파리 특파원의 자택으로 프랑스 정부 영빈관으로 쓰이던 크리용 호텔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호텔 교환을 통해 주 특파원을 찾은 이는 김종필(JP) 당시 총리였다.

주섭일 당시 중앙일보 파리특파원 비화 공개

 
한·일 청구권협정 반대 6·3 시위(1964년) 당시 서울대생과 JP간의 토론을 취재한 적은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다. 하지만 이 전화 한 통이 박정희 대통령의 극비 핵개발 계획의 한가운데로 주 특파원을 끌어들였다.
 
1975년 5월 주섭일 중앙일보 파리 특파원(가운데)이 지스카르 데스탱 당시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김종필 국무총리(왼쪽)를 상대로 회담 내용을 취재하고 있다. [중앙포토]

1975년 5월 주섭일 중앙일보 파리 특파원(가운데)이 지스카르 데스탱 당시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김종필 국무총리(왼쪽)를 상대로 회담 내용을 취재하고 있다. [중앙포토]

 
주섭일 당시 특파원은 "JP는 장관실 문 앞까지 함께 간 뒤 '회담 후 데스탱이 프랑스 기자들에게 어떤 내용을 브리핑하는지를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며 "데스탱은 브리핑에서 '한국과 군사·항공·원자력·중공업 분야 경제교류를 확대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기 곤란하다'고만 해서 호텔로 돌아간 JP에 그대로 전달했다"고 회고했다.
 
김종필 당시 총리는 그 자리에서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JP는 '데스탱이 한국이 큰 덩어리만 해주면 유럽경제공동체(EEC)의 북한 승인 거부 문제를 포함해 다른 건은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보고했고, 박 대통령은 바로 오케이했다"며 "이어 JP는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파리로 오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당시 데스탱이 요구한 '큰 덩어리'는 당시로선 신생 항공기 제조사인 에어버스의 A-300 여객기를 구매해달라는 것이었다. 맥도널 더글러스 DC-10을 계약하려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던 조 회장이 총리 호출로 닷새 뒤 파리로 날아왔고 에어버스 A-300 10대를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에어버스가 해외 항공사와 맺은 첫 판매 계약이었다.
 
JP는 데스탱과의 회담에서 프랑스 핵(플루토늄) 재처리 시설 도입을 추진키로 한 것에 대해선 함구했다. 주 특파원에겐 "에어버스 구매도 알고만 있되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주 특파원은 일주일여 뒤 6월 6일자 기사로 "김종필 국무총리가 5일 퐁피두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갖고 양국 정치·경제협력 확대에 관해 논의했다"는 기사를 송고했다.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왼쪽 두 번째)은 1976년 5월 17일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제럴드 포드 대통령(세 번째)과 회담했다. 그는 다음 날 ″한국에 대한 핵재처리 시설 판매 계약을 최종 결재를 거부하고 돌려 보냈다″고 밝혔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 기념 도서관]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왼쪽 두 번째)은 1976년 5월 17일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제럴드 포드 대통령(세 번째)과 회담했다. 그는 다음 날 ″한국에 대한 핵재처리 시설 판매 계약을 최종 결재를 거부하고 돌려 보냈다″고 밝혔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 기념 도서관]

주 특파원이 핵재처리 시설 도입 문제를 감지한 건 이후 경제기획원 출신인 이희일 프랑스대사관 경제공사(이후 농림장관)가 한국 원자력연구소와 프랑스 국영 상고뱅(SGN)사와 비밀 계약을 추진하면서였다.
 
JP도 이듬해 대통령이 된 지스카르 데스탱과 1974년, 1975년 계속 만났다. 결국 1975년 4월 두 나라는 비밀리에 '재처리 시설 건설 및 기술용역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재처리 시설은 1년이 되도록 인도되지 않았다.
 
 
주 특파원은 "왜 재처리 시설 인도가 안 됐는지 비밀은 1976년 5월 데스탱의 미국 독립전쟁 지원 200주년 기념 미국 방문을 취재기자로 수행하면서 풀렸다"라며 "데스탱이 제럴드 포드 대통령과 회담한 다음 날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 조찬 회견에서 '한국과의 계약서 최종 결재를 거부하고 돌려보냈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박정희 대통령에 먼저 핵개발 중단과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을 설득했지만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상황에서 핵은 제2의 6·25를 막을 유일한 수단"이라며 거부하자, 포드 대통령이 데스탱 대통령에 직접 압력을 넣은 결과였다.
 
주 특파원은 "당시 뉴욕 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데스탱 대통령, 한국에 핵시설 수출 거부'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지만, 유신 시절 한국 언론은 '핵'은 한 줄도 소개하지 못했다"며 "대신 내가 송고한 미국이 데스탱이 처음으로 타고 온 초음속 콩코드 여객기의 소음을 측정했다는 기사만 크게 실렸다"라고 말했다.
 
조중훈 대한항공 당시 사장(오른쪽)이 1976년 파리에서 열린 한·불 경제협력위원회 회의에 한국측 의장으로 참석했다. 박정희 정부의 비밀 핵개발 추진을 위해 1973년 에어버스 10대를 구입한 조 회장은 199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 그랑오피시에 훈장을 받았다. [중앙포토]

조중훈 대한항공 당시 사장(오른쪽)이 1976년 파리에서 열린 한·불 경제협력위원회 회의에 한국측 의장으로 참석했다. 박정희 정부의 비밀 핵개발 추진을 위해 1973년 에어버스 10대를 구입한 조 회장은 199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 그랑오피시에 훈장을 받았다. [중앙포토]

 
그는 "박 대통령이 꿈꿨던 핵개발은 결국 무산됐지만, 프랑스와의 원자력 협력은 울진(현재 한울) 원자로 1·2호기로 남았고 이것이 한국형 경수로의 모태가 됐다"며 "김 총리의 부탁으로 에어버스를 도입한 대한항공 역시 국제적인 항공사로 발돋움했기 때문에 돌아보면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라고 회고했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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