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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필리버스터 충분히 보장" 돌연 속전속결 전략바꾼 與, 왜

중앙일보 2020.12.10 18:06
야당의 비토(거부)권을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민주당은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대한 종결 동의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오종택 기자

야당의 비토(거부)권을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민주당은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대한 종결 동의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오종택 기자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를 제출하지 않았다. 제출 시점은 확정된 게 없다” (더불어민주당 원내 관계자)
 
국민의힘이 10일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한 가운데, 민주당이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 제출을 늦추기로 했다.
 
국회법상 재적의원의 3분의 1(100명) 이상이 서명하면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할 수 있고, 제출 24시간 뒤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의 찬성으로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킬 수 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에 돌입하면, 곧바로 종결 동의를 제출해 24시간 만에 필리버스터를 끝내겠다는 게 당초 민주당의 ‘속전속결’ 전략이었다. 그런데 돌연 종결 동의를 당장은 제출하지 않겠다고 방침을 바꾼 것이다. “필리버스터를 충분히 보장하라는 야당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홍정민 민주당 원내대변인)는 이유지만,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우선 이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은 만큼 “급할 게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남은 두 개의 필리버스터 법안(국정원법 개정안,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은 민주당이 연내 공수처 출범을 위해 반드시 처리해야했던 공수처법 개정안과 달리 통과 시점이 상대적으로 시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민주당 독주’를 부각하는 상황에서 야당의 반론권을 충분히 보장했다는 명분을 쌓으려는 포석도 있다. 이날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회의에서 “완장 찬 정권 홍위병 세력에 의해 입법권이 무력화되고 있다”며 “집권세력이 무소불위 국정 폭주를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만에 끝내면) 우리가 야당의 입을 막고 마치 군사작전 하듯 법안을 통과시킨 것처럼 비춰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필리버스터 종결을 위한 ‘180석’ 확보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의당이 우리와 함께 한다면 몰라도, 필리버스터를 끝낼 때마다 매번 180석을 모으는 일이 간단치 않다”고 전했다.
 
현재 민주당은 173석(구속 중인 정정순 의원 제외)으로, 열린민주당ㆍ무소속 각각 3석,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을 합쳐야 180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 한 민주당 초선의원은 “(종결 동의 제출을 늦추면) 시간 여유를 갖고 당밖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고, 우리당 의원들에게도 의견을 충분히 개진할 시간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정원법 개정안 필리버스터 주자로 김병기ㆍ홍익표ㆍ오기형ㆍ김경협 의원을 선정해놨다.
 
국민의힘이 10일 국회에서 공수처법 표결을 위한 본회의를 앞두고 긴급 의원총회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국민의힘이 10일 국회에서 공수처법 표결을 위한 본회의를 앞두고 긴급 의원총회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국민의힘은 “관대함을 가장한 꼼수”라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3선 의원은 통화에서 “이미 필리버스터 종결권을 손에 쥔 민주당이 제1야당 흔들기에 나선 것”이라며 “종결 시점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야당을 지치게 만든 뒤, 불시에 필리버스터를 끝내겠다는 꼼수”라고 주장했다.
 
필리버스터 주자는 이철규ㆍ조태용ㆍ김웅ㆍ하태경ㆍ김태흠 의원이 그대로 나서기로 했다. 당 관계자는 “민주당의 흔들기에 개의치 않고 의연하게 계획대로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겠다”며 “다만 필리버스터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 추가로 나설 의원들을 선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손국희·하준호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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