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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공무원표’ 유튜브 홍수

중앙일보 2020.12.10 00:16 종합 30면 지면보기
전영선 산업1팀 차장

전영선 산업1팀 차장

미안하지만, 웃을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실은 마음이 좀 무겁기까지 했다. 최근 화제가 된 강원도청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한 생각이다.
 
이 채널 운영자는 지난달 15일 ‘죄송합니다. 강원도청 유튜브 담당자입니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다. 강원도청에 문제가 생겼을 것으로 생각해 눌러보면, ‘이제서야 구독자가 1만명이라 죄송하다’는 내용이다. 이어 구독자 1만명 달성을 기념하겠다며, 주무관 둘이  ‘9·독(유튜브 구독을 해 달라는 의미로 읽힌다)’이라고 적힌 운동복을 입고 도청 곳곳에서 에어로빅(으로 추정되는 동작)을 정말 열심히 보여주는 모습을 담았다.
 
이 영상은 ‘병맛’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약 한 달 동안 조회 수 80만에 육박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강원도청이 올린 역대 영상 중 최고 성과다. 물의를 일으킨 유튜버의 전형적인 사죄 모습을 차용한 도입부와 B급 감성이 결합해 만들어 낸 결실이다. 운영자는 고무된 듯, 후속작에도 인터넷 인기 밈(meme)을 이용해 흥행에 재도전하고 있다.
 
노트북을 열며 12/10

노트북을 열며 12/10

무해하다면 무해한 이 노력을 보고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는 진하게 전해지는 밥벌이의 고단함 때문이다. 당초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유튜브 조회 수에 이토록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조회 수=성공적 홍보’라는 등식이 자리 잡으면서 눈길을 끌기 위해 몸부림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강원도청 채널만 이런 것은 아니다. 각 지자체, 정부 부처, 공공기관마다 홍보 동영상 채널을 운영하면서 유사한 패턴을 보여준다. 앞다투어 채널을 개설하고, 알아주지 않아도 업데이트는 눈물 날 정도로 성실한 ‘공무원표 채널’이 풍년인 이유다. 일부는 인기에 집착하면서 무리한 설정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대부분 책정된 예산이 적거나 없다 보니 각 조직에서 가장 젊은, 고로 대체로 가장 힘이 없는 직원의 숙제로 떨어진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화제가 될 참신한 창작물을 만들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결국 대부분 투입된 노고와 시간이 아까운 결과물을 내놓게 된다.
 
물론 취지가 분명하면 어떤 콘텐트라도 무방하다. 많이 안 봐도 괜찮다. 메시지가 확실하면 최소한의 존재 의미는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초 무엇을 위한 제작인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는 무엇인지, 타깃은 누구인지 기본 청사진이라도 명확한 공무원표 채널은 한 손에 꼽는다. 절대 대다수는 없애는 편이 민원인과 특히 공무원에게 이득이 될만한 것들이다.
 
전영선 산업1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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