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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너의 이름, 너의 의미

중앙일보 2020.12.09 15:16
독도의 우뭇가사리,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제공

독도의 우뭇가사리,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제공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이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소재한 서천에서 태어난 시인 ‘나태주’의 ‘풀꽃’이라는 ‘시’다. 풀꽃도 사람도 이름을 알면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더욱이 그 생김새까지 친숙해지면 내가 그 풀꽃이나 사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필자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분류학’이라는 학문을 마음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분류학은 영어로 ‘taxonomy’라고 하는데, 이것은 1813년 스위스의 식물학자인 드 캉돌(de Candolle)이 그리스어의 taxis(배열하다)와 nomos(법)을 합쳐서 만들었다고 한다. 학창시절에 ‘종(species), 속(genus), 과(family), 목(order), 강(class), 문(phylum), 계(kingdom)’나 ‘이명법(binomial nomenclature)’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는 분류의 핵심 개념으로 생물을 분류하는 가장 기본 단위인 ‘종’에서부터 점점 더 큰 부류로 생물들을 묶어서 구분하는 ‘계’까지 7단계의 분류계급을 뜻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성과 이름이 있듯 분류학자들은 모든 생물에 라틴어를 사용하여 속명과 종소명을 합친 ‘이명법’에 따라 학명을 짓는다. 이렇게 복잡하게 들리는 ‘분류학’을 ‘풀꽃’이라는 시의 구절처럼 모르는 꽃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 색깔과 모양을 자세히 살펴서 비슷한 생물끼리 묶어주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이제는 해조류의 분류는 어떠한 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여름이면 시원한 바다를 찾아 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푸른 바다에 발을 담그거나, 바위에 앉아 쉴 때 여러 가지 빛을 띄는 해조(海藻)들이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모습을 여러분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해조류는 그들의 색깔에 따라 크게 갈조, 녹조, 홍조로 구분할 수 있다.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그 조류(藻類)가 어떤 것인지 연상할 수 있는 좋은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영국의 조류학자인 하비(Harvey) 교수다. 그는 1836년 체색에 따라 해조류를 갈조류(Melanospermeae; melano- 흑색을 의미), 녹조류(Chlorospermeae; chloro- 녹색을 의미), 홍조류(Rhodospermeae; rhodo- 장미색을 의미)의 3군으로 분류할 것을 제창하였다. 현재의 갈조강(Phaeophyceae), 녹조문(Chlorophyta), 홍조문(Rhodophyta)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해조류는 899종(2020 국가 해양수산생물종 목록집 기준)이 알려져 있으며, 이 중 76%(685종)가 표본으로 제작되어 국가 자원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시원한 콩국을 만들어 먹는 ‘우뭇가사리’이다. 우뭇가사리는 속명 Gelidium으로, ‘응고’라는 뜻을 가진 gelidus에서 유래했다.  
 
우리 선조는 예부터 우무를 만들어 먹었으며,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끓인 다음 식히면 얼음처럼 굳는다 하여 ‘해동초(海東草)’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뭇가사리는 추출방법과 용도에 따라 식품뿐만 아니라, 한천(agar), 종이, 의약용 등으로도 활용된다. 우뭇가사리의 높은 경제성에 따라 다양한 연구와 이용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의 중요성은 인정받지 못했고, 그 예로 우리나라 우뭇가사리를 활용한 특허에 우리나라 우뭇가사리인 ‘Gelidium elegans’라는 학명이 아닌 머나먼 마다가스카르에서 자라는 ‘G. amansii’라는 이름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생물을 이해하고 그 이름을 찾아주는 ‘분류’는 오랜 기간 필요성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1993년 생물다양성협약(CBD: Convention of Biological Diversity)이 발표되고, 2010년 나고야의정서가 채택됨에 따라 조금씩 그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생명자원이 인류 공동의 자산이 아닌 국가 부(富)의 원천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이었다. 이러한 인식 변화에 따라 바이오산업의 원천소재인 생물자원 확보경쟁이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으며,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적 차원의 생물자원을 보존, 관리하기 위해 2007년 국립생물자원관을 필두로 국립생태원(2013년), 국립해양생물자원관(2015년),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2015년)이 출범되었으며, 올 연말에는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이 문을 열 예정이다. 또한 경제성장과 국토개발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최소화하고 생물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매 5년마다 전국자연환경보전계획을 수립하도록 자연환경보전법을 개정한 바 있다.
 
자국의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생명자원에 대한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마련을 위한 첫걸음은 바로 분류를 통해 생물을 바로 아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분류’가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그 생물과 친해지기 위한 통성명으로 생각하길 바란다. 그리고 소풍가면 맛있게 먹는 김밥의 김이 홍조류라는 것을 알고, 행복한 생일날 맞아주는 미역국의 ‘미역’과 같이 우리 곁에 친숙하게 다가와 있는 다양한 해조류와 함께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 김경미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생물분류실 선임연구원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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