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수북한 털이 남자다움?…털 깎는 ’그루밍’아이템

중앙일보 2020.12.09 14:00

[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27)

남자의 머리는 외모의 팔 할이라는 말이 있다. 속된말로 ‘머릿발’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두발 자유화라는 말을 모르는 Z세대는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나의 남중·남고 생활에서 가장 절실했던 것은 구레나룻의 길이였다. 이것은 군대에서도 이어졌다. 민간인은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군인의 구레나룻 사수기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도 군대와 비슷한 사내문화를 가진 직장이었다. 브라운색으로 살짝 염색하면 어려 보인다는 미용실 실장님의 제안에 넘어가 염색을 했다가 출근 다음 날 한마디 듣고 바로 ‘블루블랙’으로 혼자 염색을 했다.
 
나의 두상은 넙데데해 정면에서 보았을 때 상당히 거대한 느낌이다. (사실 절대적인 지름도 크다. 남들이 편하게 쓰는 모자를 쓰면 머리가 조여서 아파온다) 그래서 나의 머리 스타일은 2가지 절대적인 목표를 추구한다. 첫째 머리가 작아 보이는 스타일, 둘째는 그나마 어려 보이는 스타일.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가장 적합한 머리 스타일을 찾았다. 바로 ‘투블럭컷’ 스타일이다.
 
‘투블럭컷’은 쉽게 이야기해 양옆 부분을 짧게 잘라 얼굴이 슬림해 보이는 스타일이다. 몇 년 전부터 유지하고 있는데, 옆머리가 금방 자라 자주 미용실을 가야 하는 단점이 있다. 문득 군대에서 쓰던 이발기가 떠올랐다. 왠지 스스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3달 안에 이발기값을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포털에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제품이 있었고, 한번 쓰고 안 쓸지도 모르는데 굳이 유명 브랜드의 비싼 제품 보다는 중소기업의 저렴한 모델을 구매했다. 배송 온 이발기를 보더니 아내가 전에 키우던 반려견 미용 기계와 똑같이 생겼다며 옆머리 미는 것을 도와준다고 했다. 그렇게 아마추어 2명이 거울 앞에서 이발기를 들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미용실에서 봤을 때는 쉽게 쓱쓱 미는 것 같았는데, 내 이발기가 지나간 자리는 층을 이루며 마치 강원도의 계단식 논 같이 되고 말았다. 수습하려 하면 할수록 머리 모양은 점점 이상해졌고, 결국 맨살이 드러나는 수준이 되었다. 전문가의 기술을 금방 따라 할 수 있으리라 착각했던 것에 대한 대가였다. 그렇게 이발기는 한번 쓰고 창고에 넣어졌으며, 15년 단골인 미용실 실장님은 역시나 훌륭하게 나의 머리를 수습해주셨다.
 

보기에는 쉬워 보였지만 전문가의 숙련된 기술을 따라갈 순 없었다. [사진 unsplash]

 
남자의 털을 관리해 주는 ‘그루밍 아이템’은 이발기 말고도 몇 종류가 더 있다. 나도 몇 가지 써보았는데, 그중 가장 추천할 만한 것은 코털 정리기다. 아무리 말끔하게 꾸미고 나가도 코털이 삐죽 나와 있으면 말짱 꽝이다. 그만큼 중요하지만 코털이 쉽게 정리되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해왔던 것이 코털 가위 등으로 수시로 잘라주는 것이었지만, 어느새인가 가위질을 피한 기다란 가닥이 코 밖으로 나오기 일쑤였다. 그때 발견한 것이 전동 코털정리기였다. 기존 코털 가위의 10배가 넘는 2만 원대 가격이 부담이긴 했다. 코털 때문에 그 돈을 쓴다는 것이 고민이었지만 사고 보니 신세계였다. 기존의 코털 가위가 숯을 치는 수준이라고 하면, 전동 코털 제거기는 잔디 깎는 기계 수준으로 정리해준다. 주 1회 정도 써주면 코털로 깔끔한 이미지를 망칠 일은 없을 것 같다. 

 
기술발전의 진면목을 보여준 전동 코털정리기. [사진 shopik]

기술발전의 진면목을 보여준 전동 코털정리기. [사진 shopik]

 
또 하나의 추천 아이템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제품이다. 바로 다리털 숱을 정리해 줄 수 있는 남성용 레그트리머다. 남자의 다리털은 말 그대로 계륵 같은 존재인데, 너무 많아도 곤란하고 아예 없어도 아쉽기 때문이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맨다리를 드러낼 일은 거의 없지만, 여름에 반바지나 앵클 팬츠를 입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면도기 같이 생긴 트리머를 쓱쓱 문질러 주면 다리털 숱이 정리된다. 칼날이 드문드문 있어서 숱가위처럼 횟수에 따라서 다리털을 얼마나 남길지 조절할 수 있다. 나도 여름이 다가오면 한 번씩 정리하고는 하는데, 다리털을 정리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다시 자라면서 상당히 간지럽다는 단점이 있다.

 
레그트리머는 사용자가 원하는 만큼 다리털 숱을 조절할 수 있다. [사진 롯데홈쇼핑]

레그트리머는 사용자가 원하는 만큼 다리털 숱을 조절할 수 있다. [사진 롯데홈쇼핑]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남자가 뭘 그런 것까지 하느냐’는 분이 가끔 있다. 대부분 어른이라 앞에서는 그냥 “허허” 웃으며 넘어갔지만 사실 그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이렇게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다만 그루밍하는 남자를 비웃기에 앞서 스스로가 매력을 위해 무엇을 노력했는지 먼저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남자다움’이라는 것은 관리를 게을리하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한재동 한재동 직장인 필진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 '이제부터 쇼핑을 잘해야지!'라고 다짐하면 쇼핑을 잘할 수 있을까? 알고 보니 쇼핑에도 공부가 필요하더라. 쇼핑! 하면 비싼 명품 백을 사려고 줄을 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집 앞 편의점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는 것도 쇼핑이다. 그렇다면 ‘쇼핑을 잘한다’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구매하는 것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곧 불혹 직장인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쇼핑 경험담이다. 거창한 명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는 패션과 생활용품에 집중되어 있음을 미리 양해 구한다.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