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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불륜·폭력…끝없는 막장에도 왜 ‘펜트하우스’에 열광할까

중앙일보 2020.12.09 11:28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헤라팰리스에 입성한 오윤희(유진)를 쫓아내기 위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천서진(김소연). 학창시절부터 악연이었던 이들의 운명은 딸들에게도 이어진다. [사진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헤라팰리스에 입성한 오윤희(유진)를 쫓아내기 위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천서진(김소연). 학창시절부터 악연이었던 이들의 운명은 딸들에게도 이어진다. [사진 SBS]

“다르면 얼마나 다르다고 수준을 나누고 지랄들이세요. 천박하게.”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다. 학창시절 잘나가는 소프라노였지만 돈 없고 빽 없어 성악을 포기해야 했던 오윤희(유진)가 “내 딸만큼은 그런 설움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서울 삼성동 한복판에 자리 잡은 헤라팰리스에 입성하면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입주민들을 향해 던진 말이다. 자신을 짓밟고 한국 최고의 소프라노 자리에 선 천서진(김소연), 전직 아나운서 출신의 재벌가 며느리 고상아(윤주희), 세신사 신분을 속이고 졸부 행세를 하는 강마리(신은경) 등과 같은 선상에 서게 된 것만으로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사회 특권층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일갈하는 모습이 짜릿한 쾌감을 주는 동시에 스스로 뜨끔하게 만드는 것이다.

김순옥 작가-주동민 PD 재회 시청률 22%
‘SKY 캐슬’‘부부의 세계’ 자극적 소재 따와
계층 이동 막혀버린 부동산 문제로 버무려
막장 인정하면 악당 처치 게임 같은 재미

 

“수준을 나누고 지랄들이세요” 일침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100층짜리 헤라팰리스. 높은 집값 못지 않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사진 SBS]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100층짜리 헤라팰리스. 높은 집값 못지 않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사진 SBS]

헤라팰리스 입주민들이 성대하게 파티를 여는 곳으로 떨어진 민설아(조수민). [사진 SBS]

헤라팰리스 입주민들이 성대하게 파티를 여는 곳으로 떨어진 민설아(조수민). [사진 SBS]

부동산 투자회사 제이킹 홀딩스 주단태 회장(엄기준)이 100층짜리 헤라팰리스 건물을 올리게 된 것도, 오윤희가 계급 이동의 사다리를 타게 된 것도 모두 부동산 덕이다. 돈 냄새 하나는 귀신같이 맡는 주 회장은 재개발 발표 전 부지 매입 등을 통해 재산을 증식해갔고, 해당 정보를 얻게 된 오윤희도 돈방석에 앉게 됐다. 자격증 없는 부동산 컨설턴트로 일하며 목돈을 만져보기는커녕 푼돈도 떼이기 일쑤였지만 펜트하우스 안주인 심수련(이지아)의 도움으로 상류사회 입성을 향한 발판 마련에 성공했다. 이는 현 정부 들어 최고 화두로 떠오른 부동산 문제와 맞물리면서 가파른 시청률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8일 방송된 13회 시청률은 22.1%. 김순옥 작가와 주동민 PD의 전작 ‘황후의 품격’(2018~2019) 최고 시청률(17.9%)를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김순옥 작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동물적으로 포착해낸다. 층수에 따라 위계질서가 정해지는 헤라팰리스는 상승에 대한 의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의 평처럼 극 중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지난해 종편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JTBC ‘SKY 캐슬’(23.8%)이 자식을 서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던 엄마들에 집중했다면 ‘펜트하우스’는 서울대 음대 프리 코스인 청아예고 성악 전공 학생들과 이를 후방 지원하며 대리전을 펼치는 사모님들의 심리를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개연성 없어 신뢰…반드시 나쁜 놈 응징”

주석태(엄기준) 회장이 교육 문제로 쌍둥이 아들 주석훈(김영대)과 대립하는 모습. [사진 SBS]

주석태(엄기준) 회장이 교육 문제로 쌍둥이 아들 주석훈(김영대)과 대립하는 모습. [사진 SBS]

아이들 문제로 회의하는 학부모들 등 ‘SKY 캐슬’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사진 SBS]

아이들 문제로 회의하는 학부모들 등 ‘SKY 캐슬’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사진 SBS]

각 가족의 부부 관계를 전진 배치했다는 점에선 올 상반기 최고 화제작이었던 JTBC ‘부부의 세계’(28.4%)도 겹쳐진다. ‘펜트하우스’는 불륜은 물론 이를 둘러싼 청부 살인과 납치 및 시신 유기까지 서슴지 않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특히 한 학생의 죽음으로 이야기로 시작되는 ‘SKY 캐슬’과는 표절 논란이 제기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유사한 부분이 많지만 그만한 개연성이 없어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개연성이 없어서 시청자에게 신뢰를 주는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보통 드라마 같으면 현실감이 떨어져 도저히 불가능한 전개도 SBS ‘아내의 유혹’(2008~2009, 37.5%)으로 막장 드라마의 신기원을 연 ‘김순옥 월드’에서는 가능해진다. 
 
일단 막장의 세계에 발 디딘 것을 인정하고 나면 게임을 하는 것 같은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반드시 응징을 당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단 얘기다. 심수련이 헤라팰리스에서 살해된 민설아(조수민)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에 가담한 사람들을 하나씩 처리해 나가면, 민설아가 미국 입양 가정에서 만난 오빠 구호동(박은석)이 등장해 심수련을 괴롭히는 식으로 새로운 ‘빌런’이 등장한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과거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 선악 구도를 명확하게 나눴다면 ‘펜트하우스’는 모두가 악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 변화를 반영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이어 “매회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희로애락이 골고루 들어있는 드라마가 코로나 블루로 억눌려 있는 감정을 터트려주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천박하다 욕하며 내 삶이 낫다고 위로”

오윤희의 선한 마음을 자신에 복수에 이용하는 펜트하우스 안주인 심수련(이지아). [사진 SBS]

오윤희의 선한 마음을 자신에 복수에 이용하는 펜트하우스 안주인 심수련(이지아). [사진 SBS]

민설아의 오빠 구호동(박은석)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시작한다. [사진 SBS]

민설아의 오빠 구호동(박은석)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시작한다. [사진 SBS]

윤석진 교수는 “나도 저렇게 상류층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과 저렇게 막살고 싶지는 않다는 양가성을 느끼게 한다”고 분석했다. “욕망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보며 천박하다고 욕하면서도 내 삶이 저것보다는 낫다는 도덕적 우월성을 느끼게 한다”는 것. 시청자들이 천서진보다는 심수련이나 오윤희의 복수에 더 공감하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심수련이 바람 핀 남편 주석태를 벌하기 위해 오윤희를 이용해 천서진의 남편이자 그의 첫사랑인 하윤철(윤종훈)을 유혹하게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더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처단하기 위해서라면 덜 나쁜 짓은 용인될 수 있으며 그것을 응원하는 나 역시 덜 나쁜 쪽에 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SBS는 ‘펜트하우스’ 시즌 1은 21부작으로 종영하고 시즌 2와 시즌 3은 각 12부씩 금토극으로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매회 흉기가 등장할 만큼 폭력적인 장면이 이어지면서 4회부터 시청등급을 19세 이상 시청가로 상향 조정한 후에도 방송통신심의원회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SBS는 긴 호흡의 주말극과 일일극에서 활약한 김순옥 작가를 미니시리즈 구원투수로 등판한 이상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지 OTT 플랫폼 등에서 상영 중인 홍콩과 베트남은 물론 일본ㆍ필리핀ㆍ터키 등에서도 판권을 사전 구매하는 등 해외 반응도 뜨겁다. 
 
정덕현 평론가는 “자극을 더 센 자극으로 덮고 모든 사건을 흑백논리로 단순화해 접근하는 이야기의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 지상파 PD는 “김순옥 작가가 쓴 극본보다 주동민 PD의 연출이 훨씬 더 자극적이어서 매회 심의에 걸릴 만한 장면을 자르는 게 일이라고 들었다”며 “시청률만 높으면 뭐든 용납된다는 관행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 같은 문제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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