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시어머니의 50년 아들 바라기에 이혼 결심한 며느리

중앙일보 2020.12.09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69) 

며칠 전 지인을 만나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존감은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며, 자존심은 ‘경쟁 속에서 나 자신을 주장하고 싶은 감정이 큰 경우’라고 사전이 알려준다. 자존심은 상대가 있어야 하고, 자존감은 자신과의 대화 같다.
 
지인에겐 집에서 함께 사는 부자 엄마가 있다. 당신 명의의 아파트도 있지만 비워놓고 맞벌이 부부인 아들 내외가 결혼하면서부터 함께 살았다. 엄마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친구가 있는데, 그것은 아들이다. 딸 많은 집 막내아들은 남편을 일찍 떠나보낸 엄마의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존재였다. 아들만 바라보고 살았다. 애써 모은 많은 재산도 아들에게 모두 주었고, 딸들은 외면했다. 손자가 태어나면서 아이도 키우며 아들네 살림까지 맡아 파출부같이 살았다. 당신의 인생도, 당신을 위로해줄 친구 하나 없었지만 아들만 옆에 있으면 행복했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많던 집안일도 아이들이 커 떠나면서 줄어들고 어른들만 덩그러니 집에 남았다.
 

엄마의 지나친 사랑에 자신들의 영역이 사라진 부부는 함께 있어도 의미 없는 삶에 이혼하기로 합의했다. [사진 pixabay]

 
오래 살다 보니 문제는 근래에 와서 일어났다. 엄마의 지나친 사랑에 자신들의 영역이 사라진 부부는 함께 있어도 의미 없는 삶에 이혼하기로 합의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엄마는 ‘나는 아들만 있으면 된다’며 초연해 했다.
 
50년 엄마의 바라기로 살아오면서 마음대로 날개를 펴 보지 못한 지인, 많은 자식을 혼자의 힘으로 키워주신 늙은 엄마의 고집스러운 상황, 신혼생활도 없이 시어머니의 눈총 속에서 살아온 같은 처지의 며느리…. 모두 입장 바꿔 생각하니 이해가 되고 측은했다. 이것이 엄마의 자존감인지 자존심인지를 모르겠다며 이야기하다가 같이 울기도 했다. 어머니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세월이 나도 있었다.
 
“아버지 뭐 하세요? 아버지 어디 계셔요?” 새엄마까지 돌아가신 후 나는 서울과 대구를 수시로 드나들며, 때론 전화통을 붙잡고 아버지에게 집착했다. 아버지마저 우리 곁을 떠날까 봐 불안함에 몸을 떨었다.
 
 
어린 날, 엄마의 죽음을 본 내 안의 다섯 살 아이는 불안함에 덜덜 떨다가 불쑥불쑥 밖으로 나와 투정을 부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나도 따라 죽을 거라며 빈말을 해댔다. 남편은 그 모습이 얼마나 한심했을까, 또한 아이들은 얼마나 불안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부끄럽다. 남편은 나의 어린 시절 슬픔을 이해한 듯 쯧쯧 혀를 찼지만, 아버지는 남의 영역까지 간섭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욕심이라고 나무라셨다. 그땐 아버지가 없으면 내 삶도 없을 것 같았다.
 
오랜 시간 나의 멘토가 되어주는 한 지인은 자존감을 지키며 외로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가족이 어울려 시끌벅적한 곳에서도, 죽도록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도 외로움은 늘 존재합니다. 외로움을 해소하려면 끝이 없지요. 혼자서 놀 줄 아는 사람이 자유인입니다. 책을 보거나 바둑을 두거나 운동을 하거나 고독을 즐기거나.”
 
그러면서 바둑판을 선물로 주시며 혼자서도 배울 수 있는 초보자용 바둑책을 여러 권 주었다. 한동안 일인이역으로 바둑판을 갖고 놀았는데, 그때 자존감 친구랑 노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엄마의 죽음을 본 내 안의 다섯 살 아이는 불안함에 덜덜 떨다가 불쑥불쑥 밖으로 나와 투정을 부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나도 따라 죽을 거라며 빈말을 해댔다. [사진 pikist]

엄마의 죽음을 본 내 안의 다섯 살 아이는 불안함에 덜덜 떨다가 불쑥불쑥 밖으로 나와 투정을 부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나도 따라 죽을 거라며 빈말을 해댔다. [사진 pikist]

 
먹고 살 일이 너무 막막하고 힘들어도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고 풍요로와도 내 영역의 역할이 없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요즘 같은 언택트 세상을 헤쳐 나가려면 눈에 보이는 사람보다 내 안의 가장 든든한 내 편인 자존감 친구를 깨워야 한다. 그는 어떤 힘든 시간에도 나를 지켜주는 그림자 무사다. 그러고 나서 사람 친구가 두 번째다.
 
지인 어머니를 만나 밥을 먹으며 독립(?)운동의 밀사 역할을 하기로 한 날이 다가오는데, 어떤 위로와 격려가 힘이 될지 아직 생각 정리가 안 돼 글도 어수선한 것 같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