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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칼럼니스트의 눈] 그린뉴딜 한다며 ‘태양광 ESS’ 기술 가로막는 정부

중앙일보 2020.12.08 00:31 종합 22면 지면보기

‘REC 가중치 0’ 사건을 아시나요

문재인 대통령은 7월 14일 ‘한국판 뉴딜’의 시작을 선언하며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사회로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한국판 뉴딜은 2025년까지 국비만 114조원 투입한다는 계획으로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지역균형 뉴딜’ 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예산은 그린 뉴딜 분야에 가장 많이 배정됐다. 문 대통령의 한국판 뉴딜 선언문은 정부 부처들이 바이블처럼 떠받들고 있다. 그런데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의 어떤 조치엔 그린 뉴딜에서 제일 중요한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역행하는 듯한 대목이 있어 걱정스럽다.
 

산업부, 내년부터 ‘REC 가중치’ 0
보조금 몰수 효과 중소 업계 질식
코로나 민생 지원 호소에 모르쇠
세계 선도기술 가능성 물거품 위기

산업부는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소의 심장에 해당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기술에 신규로 제공하는 보조금을 내년부터 0(零)으로 뚝 끊어버린다는 방침이다. 업계 전문용어로 표현하면 태양광과 연계된 ESS에 부여하는 ‘REC 가중치’를 현재 4.0에서 내년 1월 1일부터 0으로 완전히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 조치에 국한해서만 보면 선도형 경제를 추격형으로 후퇴시키고, 저탄소가 아니라 탄소의존 경제를 고집하며, 포용사회보다는 불평등 사회로 남겠다는 얘기 아닌가 싶다. 한국형 뉴딜을 훼손하는 반문재인 정책일 수 있다.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일부인 전력 변환시스템(PCS)이 완성돼 직원들이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전영기 칼럼니스트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일부인 전력 변환시스템(PCS)이 완성돼 직원들이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전영기 칼럼니스트

에너지저장장치 즉, ESS 기술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패러다임 전환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숙제로 꼽힌다. 신재생에너지가 주력 업종인 대성그룹의 김영훈 회장은 세계에너지협의회(WEC) 회장을 지낸 에너지 전문가다. ESS 기술의 의미와 위상에 대한 김영훈 회장의 다음과 같은 설명은 가슴에 새길 가치가 있다.
 
“태양이 어디서나 뜨고 바람이 어디서든 분다고 해서 태양광과 풍력까지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인터미턴스(간헐성)라는 자연적 한계가 있다. 해가 지는 저녁이나 바람이 멈추면 전기를 만들 수 없는 문제다. 재생에너지는 안정성 측면에서 결코 우수한 전력이라 보기 어렵다. 불안정한 전력을 기존의 국가 전력망(계통)에 연결시키려니 부담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에너지가 남을 때 저장하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시스템 즉, ESS가 태양광·풍력 발전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기술이 된다. ESS는 신재생에너지가 세계의 중심 흐름이 되면서 가장 거대한 산업 중의 하나가 되었다.”
 
같은 회사에서 가동중인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의 일부. 전영기 칼럼니스트

같은 회사에서 가동중인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의 일부. 전영기 칼럼니스트

태양광 발전소는 크게 지상에 넓게 깔리는 모듈과 수집된 직류 전기를 교류로 바꿔주는 인버터, 한전 계통으로 전달하는 연계부, 그리고 부속시설인 ESS 설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ESS 설비는 다시 배터리와 전력변환장치(PCS), 에너지관리시스템(EMS)으로 구성되는데 시장 규모에 따라 배터리는 LG화학·삼성SDI 같은 대기업이, PCS 등은 수십 개 중소기업들이 공급하는 식으로 분업화되어 있다. 정부는 2017년 이래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확대하고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ESS를 설치한 태양광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에 대해 더 비싼 값을 쳐주는 소위 ‘REC 가중치’ 제도를 운영해 왔다. 예를 들어 ‘REC 가중치’ 5.0이 부여된 전기는 1㎾가 생산됐다면 여기에 곱하기 5.0을 해 5㎾의 값으로 한전이 구입해주는 식이다(REC 가중치 설명은 용어사전 참조).
 
문제는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ESS설비 태양광 전기에 5.0이 매겨지던 가중치가 올해 12월까지 4.0으로 적용되더니 내년 1월부터는 아예 0으로 추락한다는 점이다. 벼락 통보를 받은 ESS설치형 태양광 사업자들과 여기에 ESS 기술을 납품하는 중소·영세 업체들은 사색이 됐다. ‘REC 가중치 0’은 이들 업체의 숨통을 조이는 비극적 사건처럼 보인다. 사건의 희생자는 500여개 기업에서 근무하는 수천 명 직원들이다. 시장의 피해 규모는 대략 5000억원 정도로 업계 관계자들은 추정한다. LG화학이나 삼성SDI 같은 배터리 제조 대기업들은 회사 매출에서 태양광 ESS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체감되는 아픔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 업체는 최근 ‘ESS 저장장치 REC 관련’이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내고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재생에너지 육성과 수소경제 구축 노력은 에너지원의 전원 특성상 전력망 안정화를 위한 ESS 확대가 필연적이다. 이에 따라 ESS 산업에 대한 지원과 육성책이 진행되어 왔다. 정부 정책을 믿고 많은 비용을 무리하게 투자하면서 기술 개발에 전념해 온 중소기업들에게 도입한 지 3년 만에 가중치 제도가 완전 폐기된다는 소식은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5월 전남 해남의 태양광 발전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ESS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연합뉴스]

지난 5월 전남 해남의 태양광 발전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ESS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연합뉴스]

일단 자금난으로 죽을 지경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뿐 아니다. 전력변환장치(PCS)와 에너지관리시스템(EMS) 같은 정밀 기술은 이제 추격형 단계를 넘어 세계적인 선도 기술이 될 가능성이 있는데 싹이 잘리게 됐다는 것이다.
 
태양광학회장인 이준신 성균관대 교수(전기공학과)는 “태양광 화재 사건 등으로 ESS 산업의 진입 장벽이 높아 REC 가중치를 최고 수준인 5.0으로 해줘도 사업 채산성이 보장되지 않는 형편이다. 신규 진입자에 대한 정부 보전이 내년부터 없어지게 되면 전력 안정화를 위한 국내 기술의 개발과 보급은 거의 끊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SS업계는 2년간 5.0→4.0으로 유지되던 가중치를 하루아침에 0으로 없앤 점을 의아하게 보고 있다. 민생에 충격을 덜 주기 위해 3.0→2.0 식으로 점진적 방법을 쓰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관련 업계 인사는 “코로나 시기에 다른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서는 세금이나 대출 상환, 건강검진 시기까지 6개월씩 유예를 해주지 않았느냐. 가중치 0 정책에선 유예 조치를 취해줄 수 없는 거냐”고 반문했다.
 
이 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해온 ‘전기신문’의 윤대원 기자는 “한국의 ESS설비는 세계 시장의 50%에 육박할 정도로 지난 몇 년간 민간 투자가 집중됐다. 이에 따라 지난 9월 한국의 ‘ESS 안전 시험방법 및 절차기술’이 일본의 반대를 뚫고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의 신규작업표준안으로 채택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태양광 ESS 시장의 수요가 북미에서 급증하는 추세인데 이 시점에서 어렵게 쌓았던 선도 기술이 후퇴하게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들을 산업부의 오승철 신재생에너지정책과장에게 물었더니 “ESS업계가 정부 보전금 제도 때문에 도덕적 해이에 빠졌으며 내년부터 REC 가중치를 0으로 내리는 방침은 지난해 9월 정부 고시로 공표한 바 있다. 돌발적인 조치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오 과장은 도덕적 해이를 드러낸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례는 제시하지 않았다. 또 정부 고시엔 가중치 4.0의 만료 시간이 올해 12월 말이라는 사실만 적혀 있을 뿐 내년부터 0이 된다는 점은 적시되지 않았다.
 
‘태양광 ESS’ 해 지면 전기 못 만드는 간헐성 극복하는 장치
REC: REC는 Renewable Energy Certificate의 약자. 보통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로 불린다. 정부가 인증서로 승인한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말한다. 태양광 사업자가 생산 전력량을 신고하면 정부 공인 기관이 ㎾단위로 발전량을 인증해준다. 사업자는 인증서를 거래시장에서 500㎿ 이상의 설비용량을 보유한 발전사(의무공급사)에 팔아 돈을 번다.
  
REC 가중치: REC 가중치는 국가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난도가 높은 기술을 사용해 생산한 태양광 전력에 대해 1.5, 4.0, 5.0 같은 수치를 부여한 것이다. 실제 생산량에 이 수치를 곱한 만큼 전력을 공급한 것으로 인정받아 사업자는 그만큼 높은 수익을 거둔다. 즉, REC 곱하기 가중치가 전력 시장에서 거래되는 태양광 공급량이다. REC 가중치 정책은 산업부 소관이다. 태양광 산업을 키우기 위해 정부가 제공하는 일종의 보조금제도다.
  
ESS: ESS는 Energy Storage System의 약자. ‘에너지 저장장치’라고 한다. 전기를 저축했다가 필요할 때 빼쓰는 배터리는 전기자동차 등에 쓰이지만 ESS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ESS의 또 다른 구성 요소로 전력변환장치(PCS, Power Conversion System)라는 게 있다. PCS는 직류로 생산된 전기를 교류로 바꾸거나 승압을 담당하며 배터리 충전으로 연결시키는 중간 과정의 기술 체제이다. 한편, 계통→PCS→배터리로 연결되는 전기의 흐름을 디지털 기술 등으로 제어하는 에너지관리시스템(EMS, Energy Management System)도 있다. EMS 역시 ESS의 중요 요소다. 배터리는 삼성SDI나 LG화학 같은 대기업이, 전력변환장치와 에너지관리시스템은 중소기업이 생산을 나눠맡고 있다.
  
태양광 연계형 ESS: ESS 중에서도 태양광 발전소에서 사용되는 충·방전 시스템을 말한다. 막대하고 거칠게 쏟아지는 생짜배기 빛전기를 안정화시켜 남으면 저축하고 필요하면 빼써야 하기에 한국인이 젓가락을 다루는 것과 같은 정밀한 전력변환장치(PCS)와 에너지관리시스템(EMS) 기술 및 숙련된 경험이 필요하다. 특히 태양광의 가장 큰 단점인 해가 지면 발전이 안 되는 간헐성을 극복하는 것이 태양광 연계형 ESS의 역할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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