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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1년간의 비대면 강의를 마치며

중앙일보 2020.12.08 00:21 종합 30면 지면보기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코로나19가 휩쓸고 있는 올 한 해, 부득이 강의를 온라인으로 진행하였다. 바로 전에 편집을 마친 강의 영상을 내일 아침 날 밝기 전에 수업자료와 함께 온라인 강의실에 올리는 것으로 드디어 이번 학기 강의를 마무리한다. 일부 학생들이 등록금 환급을 요구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지만, 온라인 강의가 힘들기는 교수도 매한가지다.
 

선한 의도라 해도 강제력은 폭력
나와 다른 생각을 배제해선 안돼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게 곧 폭력

강의자료 만들기, 연구실 걸어 잠그고 혼자 녹화하기, 서툰 솜씨로 영상 편집하기…. 그렇게 한 주, 한 달, 한 학기, 1년이 훌쩍 지나갔다. 강의와 강의 자료는 언제나 준비해야 하는 것이지만, 강의 녹화와 영상 편집에 상당한 시간을 소비하며 한 해를 보냈으니 올해 연구 농사(?)는 그야말로 망한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조금도 아쉽지 않은 것은 강의를 스스로 살펴보고 개선할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아니라 다른 이의 눈에 비친 모습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볼테르(Voltaire, 1694~1778)의 말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종강 영상을 편집하다가 문득 항상 잔뜩 찌푸린 얼굴로 강의실 뒤편에 앉아있던 한 학생이 떠올랐다. 학과 모임에서 우연히 그 학생과 밤새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강의에 불만이 있는지. 그 학생의 대답은 이랬다. “내 생각과 당신의 강의 내용이 상충할 때 이를 질문하고 당당히 토론할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내 생각을 뒷받침할 근거는 빈약하고 당신은 풍부한 지식과 논리로 나를 설득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너무 싫다.” 그때는 몰랐다. 그 학생에게 있어 배움은 ‘설득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어야 했고, 자기 생각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었음을.
 
30대 후반의 내게 있어 그 반항기 가득한 학생은 그저 먹이를 마다하여 엉덩이에 뿔 난 못된 송아지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필요 이상으로 열정적이고 무엇이든 지나치게 강조하는 내 강의를 스스로 가위질하면서 그가 나의 ‘지적(知的) 폭력’의 첫 희생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제자에 대한 애정과 엘리트 후속 세대 양성에 대한 열정이 좀 과하게 표현되었을 뿐이라고 자위도 해보지만, 그것이 어떤 학생에게는 반항도 거역도 할 수 없는 폭력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대학에서 보직을 맡았을 시절, 제반 관련 규정과 의결 결과에 따른 경우의 수까지 나열한 회의록을 가지고 회의를 마치자 절친한 선배 교수님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 교수가 주재하는 회의는 회의자료에 이미 결론이 나 있어. 회의자료가 위원들에게 다른 의견을 개진할 여지를 주지 않아. 그러니 그것은 회의가 아니라 결정된 사항에 대하여 승인을 요청하는 것에 불과해.” 억울했다. 최선의 결론을 최소한의 회의 시간 내에 도출하고자 애쓴 대가가 이런 쓴소리라니.
 
하지만 그분의 말씀이 옳았다. 비록 선의라 할지라도 나는 회의라는 형태를 빌려 위원들을 설득하고자 했던 것과 다름없었다. 같은 결론이라 해도 정보의 불균형 때문에 일방적으로 설득되어 도출되는 것과 다양한 의견이 오간 끝에 도출되는 것은 그 과정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덤으로 결론의 도출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위원의 자존감까지 높아진다.
 
‘강의실에 존재하는 지식의 불균형’이나 ‘회의실에 존재하는 정보의 불균형’을 통해 본의 아니게 나와 다른 생각을 배제하는 비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었음을 코로나 덕에 이제라도 깨달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불법한 방법으로 행사되는 물리적 강제력, 이것은 좁은 의미의 폭력, 즉 물리적으로 행하는 불법적·반사회적 범죄를 말한다. 학교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젠더폭력, 언어폭력, 팩트폭력 등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모든 행위가 물리적·정신적 힘의 불균형에 기반한 강제력에 의한 것이라면, 지식과 정보의 불균형에 기반한 지적폭력은 합리적으로 포장한 ‘난폭한 영향력’이다.
 
개인의 존엄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오늘에는 선한 의지에 의한 것이라도 폭력은 폭력이다. 진심으로 일할 때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이 일할 자리를 남겨야 하고, 돕고자 할 때 그들이 부끄럽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며, 지식을 전할 때 그들의 자존감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는 시대다. 하물며 오직 이기기 위해 행하는 폭력은, 특히 법이나 규정마저 바꿀 수 있을 만큼 힘 있는 이들이 행하는 ‘합법적(?) 폭력’은 날로 폭력에 민감해져 가는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리는 진리의 힘으로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사람을 존경하지, 폭력으로 우리의 정신을 노예로 만드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다.” 이 또한 볼테르의 말이다.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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