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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의 아트&디자인] 의자를 생각하다

중앙일보 2020.12.08 00:12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재택근무 중입니다. 지금 식탁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데 너무 불편하네요. 회사에서 의자를 가져올 수도 없고···.” “어제 의자를 주문했습니다. 재택근무가 끝나기 전에 주문한 의자가 와야 할 텐데요.” “재택근무 최대의 적(敵)은 의자입니다.”
 
최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쏟아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하는 직장인이 늘었죠. 그러면서 새삼 의자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회사 의자가 얼마나 편한지 깨닫고 집에 사무용 의자를 산 사람은 저뿐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의자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초등학교에서 시작해 중·고교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의자에 앉아 보내고 직장에서도, 밖에서 사람을 만날 때도 주로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평생을 이렇게 의자와 밀착한 삶을 보내면서 의외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의자가 아닐는지요.
 
문승지, 임성빈이 디자인하고 루니코가 제작 한 의자.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문승지, 임성빈이 디자인하고 루니코가 제작 한 의자.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2012년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덴마크 디자이너 핀 율(Finn Juhl·1912~89)의 전시가 열렸습니다. 세계적인 가구 컬렉터 오다 노리쓰구 선생의 소장품을 소개한 전시였는데요, 당시 노리쓰구 선생을 인터뷰하며 핀 율 의자에 빠진 계기를 물었습니다. 그는 “잡지에 아주 작게 실린 치프테인 체어의 측면 사진을 보자마자 온몸이 소름이 쫙 돋았다”면서 “나중에 다른 의자 ‘넘버 45’ 의자를 실물로 보고 또다시 전율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 “치프테인은 당당하고 위엄과 지성, 그리고 품격을 모두 갖춘 의자”라며 “핀 율의 의자는 한마디로 디테일 덩어리”라고 했습니다.
 
지난달 20일부터 서울디자인재단의 DDP디자인페어가 온라인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청년 디자이너와 국내 제조브랜드가 협업해 디자인을 개발한 제품을 소개하는 자리인데요, 이중  다양한 의자와 조명기기가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끕니다. 그래픽 디자이너(임선아)와 객석 의자 제조업체 혜성산업이 협업한 ‘극장의자 프로젝트’도 있구요.
 
DDP페어에 출품된 아이템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무나 금속 등 재료는 물론이고 길이와 모서리, 두께 등 중요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결국 디자이너와 제조업체는 말 그대로 ‘디테일 덩어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는 것이죠. 디테일을 어떻게 살려냈느냐에 따라 범작이 되기도, 누군가에게 전율과 감동을 주는 걸작이 되는 걸 돌이켜보면 결국 모든 것은 디테일 싸움이 아닐까요.
 
노리쓰구 선생은 명품 가구의 조건으로 비율과 기능, 내구성, 그리고 물건과 가격의 균형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연 작품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물건을 구매할 때 환경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생각해야 합니다. 재료와 기능, 디자인까지 따지며 좋은 구매 철학을 갖는 소비자가 늘어야 좋은 제품이 늘어납니다. 지금 앉아 있는 의자가 제품에 대한 제 구매 철학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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