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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년대 여성 패션 맞아? 사진집『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중앙일보 2020.12.06 11:30
한영수 사진집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커버.

한영수 사진집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커버.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고 백설희가 1953년 발표한 노래 ‘봄날은 간다’의 첫 소절이다. 손로원이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한 노래로 한국전쟁 후의 애달픈 삶과 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사고 있다.  

고 한영수 사진집『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출간
1956~63년 서울을 중심으로 여성의 이미지 담아

지난달 출간한 고 한영수 사진가의 사진집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는 바로 이 전후 시대를 살았던 한국 여성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한영수문화재단의 대표이자 한영수 사진가의 딸인 한선정씨는 “책 제목을 고민하다 우연히 ‘봄날은 간다’를 떠올려봤는데 사진 내용들과 가사가 너무 어울렸다”고 했다. 
“고단한 삶에 지쳐서 내가 언제쯤 다시 연분홍 치마를 입고 나들이를 가볼까 생각하는 여성들이 떠올랐어요. 아버지의 카메라에 잡힌 수많은 여성들의 이미지가 눈앞을 죽 흘러가더군요. 조용필, 김윤아 등 여러 사람이 리메이크해서 한 번 들으면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음악 저작권협회에 의뢰해 기준에 맞는 비용을 지불했다고 한다. 참고로 노래 제목은 저작권에 해당하지 않지만 가사는 해당 저작권자와 협의를 거쳐야 사용할 수 있다.  
고 한영수 사진가.

고 한영수 사진가.

한영수는 1933년 태어나 99년에 작고한 한국의 1세대 광고사진가다. 개성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가업인 전자제품 무역업을 물려받고 사진을 취미로 시작한다. 군복무 시절 6.25 전쟁을 직접 겪은 한영수는 제대 후 한국 사진사 초기의 중요한 리얼리즘 사진단체인 ‘신선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에 심취한다. 70년대에 백화점 홍보 카탈로그를 찍은 인연으로 이후 광고사진가로 큰 성공을 거둔다. 삼성전자, 쥬단학화장품 등 90년대 중반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광고는 셀 수 없이 많다. 제약회사 ‘종근당’의 상징인 커다란 구릿빛 종이 화면을 가득 채운 사진도 한영수의 작품이다.  
서울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 헝가리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한 한선정 대표는 아버지가 남긴 필름들을 정리하면서 『서울 모던 타임즈』(2014), 『한영수 : 꿈결 같은 시절(2015)』, 『시간 속의 강』(2017) 세 권의 사진집을 출판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가 네 번째다.  
한영수_서울 명동1956-1963. 한영수문화재단제공

한영수_서울 명동1956-1963. 한영수문화재단제공

1956~63년에 촬영한 3000컷의 필름을 스캔해서 선별한 160장의 사진을 이번 책에 담았다. 사진 구성은 소녀에서 성숙한 여성으로, 결혼 후에는 어머니에서 할머니로 역할이 바뀌어가는 한 여성의 삶을 기록한 느낌으로 잡았다. 사진집 중간에는 실제로 명동성당에서 한복 차림에 흰 면사포를 쓰고 결혼식을 치르는 여성의 모습이 담겼다.  
한영수_서울 명동 1956-1963. 한영수문화재단제공

한영수_서울 명동 1956-1963. 한영수문화재단제공

사진집 끝에 ‘전쟁이 바꾼 여성, 여성이 바꾼 일상/ 한영수가 드러내준, 우리가 갖지 못했던 여성-이미지’라는 긴 글을 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김수진 학예연구관은 “전후 복구시대의 풍경은 낯설지 않은데 이 풍경에 툭툭 배어 있는 여자들의 이미지는 어쩐지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사진 속 여성들은 남자들 옆에 있어도 부끄러워하거나 주눅 들어있지 않다. 유혹하는 웃음을 짓고 있지도 않고, 울고 있지도 않다. 다만 어디로 걸어가되, 때로는 태연하게 무거운 광주리를 인 채 아이를 업고 있다. 양장이던 한복이던 한껏 빼입고 양산과 우산을 쓴 채 거리를 활보한다. 다방에 앉아 독서에 몰두하고, 공원 벤치에서 신문을 뚫어져라 훑는다. 이 여성들이 취하고 있는 몸짓과 얼굴표정, 그리고 자태를 총칭하자면 ‘당당함’일 것이다.(중략) 한영수는 전후 현대사를 살아간 진짜 여성-이미지를 비로소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56년~63년이면 전후 복구를 위해 모두들 바쁜 삶을 살 때였지만 그 시절 한국 여성의 삶이 TV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우울하지만은 않았다는 얘기다. 그 시대에도 패션은 존재했고, 젊은 여성들은 각자의 개성대로 한껏 차려입은 모습으로 독립적인 당당함을 보여준다. 
한영수_서울 소공동1956-1963. 한영수문화재단제공

한영수_서울 소공동1956-1963. 한영수문화재단제공

“사진을 보던 분들이 모두 깜짝 놀라요. 전반부에 나오는 젊은 여성들의 옷차림이나 스타일이 너무 세련됐거든요. 요즘 복고풍이 유행이라는데, 정말 요즘 거리에서 이 사진 속 여성들과 비슷한 차림을 쉽게 볼 수 있거든요. 패션 종사자들에게도 좋은 교본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한영수_서울 명동1956-1963. 한영수문화재단제공

한영수_서울 명동1956-1963. 한영수문화재단제공

어느 명품 브랜드의 최신 광고 속 모델이랑 사진집 속 50~60년대 여성의 모습이 똑같다. 사진 속 핸드백은 지금 당장 사고 싶을 정도다. 전후 시대라고 인생의 컬러가 흑백만 있었겠나. 모두가 힘든 때였지만 누구라도 인생에서 아주 짧은 찰라의 연분홍 빛깔 기억 하나쯤은 남아 있을 것이다. 한영수의 사진은 바로 그 시절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연분홍 빛깔 모습을 담아 놓은 것이다. 연출도 없이, 거리에서 ‘우연히’ 목격한 풍경들은 모두 절묘한 구도와 프레임을 갖고 있다. 그 시절의 흔한 빨래터 풍경에선 신윤복의 ‘단오풍정’이 떠오를 정도다. 
한영수_서울 1956-1963. 한영수문화재단제공

한영수_서울 1956-1963. 한영수문화재단제공

“빠른 시간 안에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해요. 해외 사진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연구도 많이 하시고, 모던한 여성에 관심도 많았던 것 같아요. 하하. 보디빌딩까지 했던 30대 초반 멋쟁이 사진가답게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출간 기념으로 12월 말까지 독립서점에서 사진집을 사면 4장의 포스터 중 한 장을 랜덤 형식으로 증정한다.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한영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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