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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딛는게 스가 닮아서? ‘센과 치히로‘ 흥행 뺨치는 日애니

중앙일보 2020.12.05 05:00
일본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흥행 수익을 올린 작품은 지난 2001년 개봉했던 지브리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었다. 이 작품의 일본 내 흥행 수익은 308억엔(약 3230억원)으로, 2위인 1997년 작 '타이타닉'(262억엔)을 크게 따돌렸다. 이후 20년간 기록은 깨지지 않았고 영화산업 불황에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일본 역대급 흥행
97년 '타이타닉' 제치고 역대 日영화 흥행 2위
원작만화 1억2천만부 판매...4일 최종권 발간
"역경 헤치는 주인공, 스가총리 닮았다" 해석도

일본서 영화 흥행 기록을 다시 쓰고있는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무한열차편'의 한 장면. [사진 워터홀컴퍼니]

일본서 영화 흥행 기록을 다시 쓰고있는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무한열차편'의 한 장면. [사진 워터홀컴퍼니]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 영화관이 텅텅 빈 2020년, 일본에서는 역대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는 대형 히트작이 나타났다. 고토게 고요하루(吾峠呼世晴)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영화 '귀멸의 칼날(鬼滅の刃)-무한열차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닛칸스포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지난 10월 16일 극장에 걸린 이 작품은 11월 29일 개봉 7주 만에 흥행 수입 275억엔(2866억원)을 돌파하며 '타이타닉'의 기록을 넘어섰다. 일본 영화계는 이 작품이 12월 마지막 주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기록을 넘어 역대 흥행 순위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1억 2000만부 팔린 만화가 원작 

원작은 2016년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슈에이샤(集英社)의 만화잡지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된 만화 '귀멸의 칼날'이다. 단행본으로 22권까지 출간돼 이미 1억 2000만부가 넘게 팔렸다.
 
일본서 영화 흥행 기록을 다시 쓰고있는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무한열차편'의 한 장면.

일본서 영화 흥행 기록을 다시 쓰고있는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무한열차편'의 한 장면.

다이쇼(大正) 시대를 배경으로 도깨비에게 가족을 잃은 주인공 소년 탄지로가 살아남은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귀멸대'에 들어가 '도깨비 잡는 용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지난해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고, 극장판은 전체 줄거리 중 무한열차에서 주인공이 도깨비와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에서는 '키메츠('귀멸'의 일본어 발음)'로 통하는 이 작품은 영화뿐 아니라 올 한해 일본 문화계를 집어삼켰다. 4일 지지통신에 따르면 출판시장 불황으로 3년째 하락세던 일본 오프라인 서점 매출은 올해 코로나19 유행에도 불구하고 '귀멸의 칼날' 덕분에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히트작 한 편이 문화계 먹여 살린다" 

'귀멸의 칼날' 극장판이 개봉한 10월 한 달 동안 일본 내 만화책 판매도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0% 늘었다.
 
일본 최대 서적 도매업체인 닛판(日販)이 지난 1일 발표한 일본 연간 베스트셀러 순위(지난해 11월 24일에서 올해 11월 23일까지 집계)에서 전 분야 종합 1위를 '귀멸의 칼날'의 소설판인 『귀멸의 칼날-행복의 꽃』이 차지했다. 2위와 4위 자리에도 역시 소설판 시리즈인 『귀멸의 칼날-외날개의 나비』, 『귀멸의 칼날-바람의 이정표』가 올랐다.
 
4일 아침, 도쿄의 각 서점 앞에는 영업 개시 전부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이날 발매되는 만화 '귀멸의 칼날' 완결편인 23권을 사려는 사람들이었다. 23권의 초반 발행 부수는 395만부다. 
4일 만화 마지막권 출간을 맞아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조간 신문에 실린 '귀멸의 칼날' 광고. 이영희 기자

4일 만화 마지막권 출간을 맞아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조간 신문에 실린 '귀멸의 칼날' 광고. 이영희 기자

출판사 슈에이샤는 이날 '귀멸의 칼날' 완결편 출간을 기념해 일본 5대 주요 일간지(요미우리·아사히·마이니치·산케이·니혼게이자이)에 각 신문당 3면씩의 전면광고를 실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15명의 캐릭터 광고를 5개 신문에 나눠 싣는 바람에, 모든 캐릭터를 모으려는 팬들이 새벽부터 편의점 신문을 싹쓸이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한 대형 출판사 간부는 중앙일보에 "메가 히트작이 나오면, 그 책을 사러 서점에 간 이들이 다른 책을 함께 구매하면서 업계 전체에 매출 상승효과가 발생한다. 또, 하나의 콘텐츠가 영상·게임·캐릭터 등 다른 장르로 변주되면서 문화계 전체를 먹여 살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인공이 스가를 닮았다고?

'귀멸의 칼날'이 일본 문화계를 뒤흔든 이유는 뭘까. 일본 언론들은 우선 '코로나 특수'를 들고 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전 세계 대작 영화들이 일제히 개봉을 연기하거나 중지한 가운데, '귀멸의 칼날'은 일본 전국 영화관 수의 80%에 해당하는 403개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어떤 멀티플렉스에서는 여러 관에서 하루 40회 이상 상영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작품이 주 관객층인 청소년은 물론 어른 관객까지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잃은 소년이 온갖 고난과 맞서며 성장한다'는 보편적인 줄거리가 폭넓은 세대의 공감을 불러왔다는 평가다.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만화 '귀멸의 칼날' 21권 표지. [사진 학산문화사]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만화 '귀멸의 칼날' 21권 표지. [사진 학산문화사]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인 9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새롭게 취임하면서 '귀멸의 칼날'과 스가 총리를 연결짓는 해석까지 나왔다. 
 
지난 10월 26일 마이니치 신문은 '귀멸의 칼날 붐과 스가 전설'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도깨비를 죽이는 데 도전하는 주인공의 입지전적 이야기에서 스가 총리의 출세담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스가 총리는 부모의 지역구를 물려받는 '금수저' 정치인이 흔한 일본 정가에서 학벌이나 지역구 세습 없이 밑바닥부터 시작해 총리직에 올랐다. 
 
이 칼럼은 "귀멸의 칼날의 대히트도, 빈주먹으로 출발한 총리의 탄생도, 불안한 시대에 나아갈 방향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만화 '귀멸의 칼날'은 한국에서도 21권까지 번역, 출간된 상태다. 초반기 주인공의 귀걸이 문양이 욱일기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나오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 형태와 색깔이 수정됐고, 특히 일본 국내판이 아닌 해외판 애니메이션이나 굿즈에는 아예 새로운 문양으로 변경됐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무한열차편'도 12월 10일 한국서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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