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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거대 여당, 입법 폭주 부작용 국민에 떠넘기나

중앙선데이 2020.12.05 00:21 714호 30면 지면보기
거대 여당의 입법 몰아치기가 ‘입법 독재’라는 비판을 받으며 과속·폭주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국가 안보와 국민 경제 등에 직결되는 민감한 법안일수록 이념적 편향을 배제하고 야당과 충분한 논의와 타협을 통해 문제점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마땅하다.
 

‘개혁 법안’ 내세워 의석 수로 밀어붙여
공수처·국정원·대북전단법 졸속 우려
야당과 협상해 사전에 문제점 걸러내야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에서 거대 여당이 되면서 절차와 합의를 중시해야 하는 의회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는 행태를 일삼고 있다. 이른바 ‘개혁 입법’이란 명분을 앞세워 임의로 시한을 정한 뒤 법안 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심지어 과거 국회에서 불발된 장롱 속 법안까지 꺼내 ‘한풀이 입법’이란 지적도 받는다.
 
협치를 주문해야 할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8일 국회 시정 연설에서 개혁 법안 처리를 당부해 여당의 입법 독주를 부추기는 모양새를 보였다. 이에 호응하듯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른바 ‘미래 입법과제’로 15개 법안을 제시하더니 오는 9일 끝나는 정기국회 전에 강행 처리를 예고했다. 역시 협치와는 거리가 먼 태도다.
 
20대 국회를 파행으로 이끌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은 여당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 단독으로 개정안을 제출한 뒤 9일 정기국회 마지막 날 초고속으로 처리를 벼르는 핵심 법안이다.
 
국정원법 개정안은 자칫 국가안보에 큰 구멍을 만들 거라는 우려가 크다. 국경을 넘나드는 정보전쟁 시대에 우리 정보기관의 손발을 묶으면 북한과 간첩들만 이롭게 할 거라는 우려를 진지하게 새겨야 한다.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으로 불리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은 ‘김여정 하명법’이란 야당의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이견이 첨예하다. 자유와 민주주의에 목말라하는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탈북자 단체들의 호소를 여당은 묵살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대북전단과 확성기 방송 등 군의 정상적 심리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밖에 언론 유관 단체들은 편집위원회 설치 등을 법률로 강제하는 여당의 신문법 개정안이 편집권을 침해한다며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법안의 제·개정 과정에서 반드시 시행 이후에 나타날 다양한 부작용을 충분히 사전에 여과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졸속 입법을 밥 먹듯 하면 곳곳에서 부작용이 생기고 그 결과 입법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예컨대 지난 7월 야당 반대에도 불과 이틀 만에 상임위를 통과한 임대차 2법(당초 3법)은 시행 이후 여당이 주장한 입법 효과는커녕 재앙 수준의 후폭풍을 일으켰다. 전셋값 폭등으로 ‘전세 난민’을 양산했고 전셋값은 지금까지도 통제 불능 상태다. 당시 법안소위를 꾸려 부작용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던 야당의 주장을 묵살한 대가를 서민들이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사실 21대 국회는 법사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결국 32년 만에 처음으로 여당 단독 원 구성이란 불명예를 안고 5월 30일 출범했다. 이후 합의제 정신은 실종되고 숫자를 앞세운 거대 여당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 국회’로 전락했다. 4·15 총선에서 양당제가 사실상 무너지고 기형적인 ‘1.5당 체제’가 되다 보니 야당이 견제 역할을 거의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이념적으로 편향된 법안을 양산한 여당의 폭주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여당은 정기국회에서 의도한 대로 법안을 모두 처리한 뒤 만세를 부를지 모른다. 하지만 21대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어느 때보다 따갑고 냉랭하다. 협치의 관점에서 F 학점이란 혹평을 받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제1야당에 역전당했다. 대통령 지지율도 취임 이후 최저로 추락했다. 청와대와 여당이 입법 독주를 멈추고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국민의 외면과 준엄한 심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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