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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그리고, 고요히 떠난 수묵 추상 선구자

중앙선데이 2020.12.05 00:20 714호 12면 지면보기
생전 서울 성북동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서세옥 화백의 모습. [사진 리만머핀]

생전 서울 성북동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서세옥 화백의 모습. [사진 리만머핀]

“늙게 돼 죽으니 슬프다고 하지만, 슬픈 게 아니라 기쁜 것이다. 또 새 생명이 뒤에서 오니까···.”
 

한국화 대가 서세옥 지난달 29일 별세
서예·회화 결합, 변혁 선도
점과 선만으로 절대미 추구

2015년 연말과 2016년 연초 두 차례에 걸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산정(山丁) 서세옥 화백의 ‘기증작품 특별전’이 열렸을 때, 서 화백은 영상 속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생 자신이 매달려온 그림, 그 끝도 없는 여정에 대한 담담한 회한이 비친 말이다.
 
한국화가 산정 서세옥이 숙환으로 지난달 29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91세. 대한민국예술원은 3일 공지를 통해 “미술분과 서세옥 회원 유족은 조문객의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가족장으로 장례 후 별세 사실을 알려드리게 됨을 양해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국화의 현대화 작업을 주도한 선구자는 그렇게 고요히 떠났다.
 
산정은 1929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학자 서장환(1890~1970)으로 독립운동과 의병가족 지원을 위한 자금줄 역할을 한 항일지사였다. 어린 시절부터 한문 서적에 둘러싸여 살았고 서예와 시 쓰는 법을 배웠다. 1946년에 설립된 서울대 미대 제1회 학생으로 입학했으며 1950년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대학 4학년이던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출품한 ‘꽃장수’라는 작품으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해방 후 동양화 1세대였던 그는 서예 기법을 회화에 접목한 작업으로 평생 화단 변혁의 선두에 서 왔다. 그는 먹으로 그리되 과거 문인화를 답습하지 않았고 간결한 선묘, 담채에 의한 담백한 공간 처리 등을 거쳐 파격적인 수묵 추상으로 독창적 화풍을 개척했다. 1959년 묵림회(墨林會)를 발족해 현대적 한국화의 바람을 이끌었다. 26세에 서울대 교수가 된 그는 40년간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서세옥의 기념비적인 ‘인간’ 연작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였다. ‘인간’ 연작은 추상적인 붓터치와 사람들이 마치 ‘손에 손잡은 듯’ 연결된 패턴에 집중한 회화로, 그의 화업에서 수십 년간 지속해서 확장된 작업이었다. 이 시리즈는 점과 선 그리고 다양한 스케일과 굵기, 그리고 농담을 가진 필법으로 다양한 인물의 형상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추상화이면서도 구상화이기도 한 그림 속 인물들은 연령, 인종, 그리고 성별로 구분할 수 없고,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원의 미, 절대미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점과 선만으로 집약해야 한다.” 서세옥은 자신의 조형 이념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가 평생 장황한 설명과 군더더기를 모두 걷어내고, 오로지 중요한 점과 선, 즉 뼈대만으로 그림의 가장 높은 경지를 추구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서세옥은 서울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한국미술의 국제화 흐름에 앞장서 상파울루비엔날레, 카뉴국제회화제 등에서 활약했다. 1993년 국민훈장 석류장,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06년 제4회 이동훈미술상, 2007년 대한민국예술원상, 2010년 한국미술협회 대한민국미술인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2008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고, 2009년 개관한 성북구립미술관 명예관장으로 활동했으며 2012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14년 서세옥은 자신의 시대별 대표작 등 핵심작을 추려 100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보다 많은 대중이 그의 작품을 언제든 감상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이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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