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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강남 불패’…서초·강남·송파 아파트값 고공행진

중앙선데이 2020.12.05 00:02 714호 14면 지면보기
돌고 돌아 다시 서울 강남 재건축아파트가 들썩이고 있다.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가 최근 잇따라 최고가를 경신했다. 문재인 정부는 강남 재건축을 집값 불안의 발화점으로 보고 집중 공격했다. 위헌 논란에도 토지거래허가 카드까지 꺼내 가까스로 치솟던 불길을 잡아두고 있었는데, 꺼져가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선 당혹스런 결과다. 시장에선 ‘강남 불패론’이 다시 나온다.
 

재건축 규제의 역설
공급 멈춰 희소성 탓 몸값 상승
전문가 “규제가 되레 집값 올려”

종부세 등 보유세 부담 현실화
강북 재건축으로 확산 미지수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잠잠하던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구) 아파트값이 지난달 일제히 상승세로 돌아섰다. 강남구는 11월 넷째 주(23일 기준) 0.03% 오른 데 이어 11월 다섯째 주(30일 기준)에도 0.04% 올랐다. 2분기 이후 줄곧 보합권(변동률 0%)에 머물고 있던 서초구도 11월 넷째, 다섯째 주에 각각 0.02%, 0.03% 뛰었다. 송파구는 지난달 다섯째 주까지 3주 연속 올랐다. 강남권 아파트값 상승세는 재건축 아파트가 주도하고 있다.  
  
#서초구 서초동 삼풍아파트 130㎡(이하 전용면적)형 8층은 지난달 20일 종전 최고가보다 1억2500만원 비싼 28억원에 팔렸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7차 245㎡형 9층 역시 지난달 27일 역대 최고가인 67억원에 계약됐다. 압구정동 현대부동산 관계자는 “지난달 말에만 30여 건이 거래되면서 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며 “압구정은 물론 개포동 등지의 재건축 추진 단지도 비슷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재건축 아파트값이 들썩이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규제 영향이 크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5단지는 최근 재건축조합을 설립하면서 몸값이 급등했는데, 이는 정부가 6·17 대책에서 내놓은 ‘2년 실거주’ 규제 때문이다. 정부는 재건축 단지에 2년 이상 거주한 사람만 새 아파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내년 초까지 조합설립 신청을 하면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다. 개포주공 5단지처럼 규제를 피해 간 재건축 단지의 몸값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압구정도 마찬가지다. 6개 재건축구역 중 6구역을 제외한 모든 구역에서 조합설립 기준인 주민 동의율 75%를 넘긴 상태다. 이들 단지는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초 조합설립 신청을 해 규제를 피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24번의 대책을 내놓는 동안 집값을 잡기 위한 규제가 되레 집값을 밀어 올리는 일이 반복하고 있다”며 “단지 규제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공급이 멈추면서 희소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재건축아파트값이 뛰는 덴 ‘희소성’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각종 규제로 도심에서의 주택 공급을 꽁꽁 묶어 놓았기 때문에 한강변 등 입지 여건이 뛰어난 재건축 추진 단지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압구정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주택 수요자를 만족하는 살 만한 집은 없고 집은 계속 노후화하고 있는데 재건축을 계속 막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결과적으로 ‘강남 재건축 불가’라는 정책 기조가 강남 집값을 더 끌어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른바 강남 불패론이다. 교육·교통과 같은 주거환경은 물론 직주근접(職住近接)으로 강남 집값이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재건축 규제’는 되레 강남 아파트의 희소성만 높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사실 이 같은 규제의 역설은 재건축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강남 재건축을 발화점으로 보고 각종 규제를 가한 건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이 ‘강남 일반 아파트→강북 아파트→수도권 아파트’로 옮겨 붙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수도권 집값은 그동안 이와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통상 서울 아파트값은 강남이 먼저 오르고 파생적·순차적으로 강북이 오르는 패턴이 오랜 기간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부도 재건축 사업을 틀어막는 것으로 부동산 규제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정부 정책은 일정 부분 성공하는 듯 보였다. 재건축 아파트를 꽁꽁 묶은 덕에 문재인 정부 들어 사실상 재건축 사업은 멈춰섰고, 사업이 꼼짝도 하지 못하니 투자 수요도 많이 걷혔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도심에서의 주택 공급 부족 우려로 강북, 수도권 아파트값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광주·대구 등 지방 대도시와 그 주변 지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도심에서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멈추면서 주변 지역 아파트값이 급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1∼11월 서울 한강 이북 14개 구 아파트값 평균 상승률은 12.79%로 한강 이남 11개 구 평균 상승률(10.56%)보다 높았다. 이런 추세라면 강북 지역의 연간 상승률이 강남보다 높을 전망인데, 이는 2008년 이후 12년 만이다. 최근 다락같이 오르고 있는 전셋값도 재건축 규제로 공급이 준 것과 무관치 않다.
  
#다만 최근의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세가 과거처럼 강남 전역으로, 강북 전역으로 확산할지는 미지수다.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강남권 재건축 조합 설립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도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며 “조합 설립 이후 적용되는 규제가 많아서 조합 설립 이후 사업은 다시 멈출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세가 계속 이어지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주택자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가 공시가격 인상 방침을 구체화하면서 보유세 부담이 확 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반 아파트는 공시가격 인상 방침이 구체화한 이후 매수 우위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부동산빅데이터업체인 아실에 따르면 지난달 5일 서울 아파트 매물은 4만5701건으로 공시가격 로드맵 발표 전과 비교하면 3142건 증가했다. 매물은 지속적으로 나오지만 거래량은 많지 않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강남구의 아파트 거래량은 175건에 그쳤다. 7월 이후 200건 밑에서 맴돌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종부세 세율이 내년 6월을 기준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주택 보유자들이 당분간 고민을 계속할 것”이라며 “다만 서울 전체로 보면 아직 공급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양도세 부담 탓에 다주택자가 매물을 쏟아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도세율 내년 최고 72%, 다주택자 팔기보다 증여 늘듯
‘세금 올리고, 다주택자 규제하면 집을 내다 팔겠지.’ 정부는 대략 이렇게 내다봤지만 시장은 정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주택을 팔기보단 자녀에게 물려주는 예가 급증한 것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1∼10월 전국의 주택 증여 건수는 11만9249건으로,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연간 기준으로 가장 많다. 종전 최다 기록은 2018년 11만1864건인데, 통계상 아직 2개월이나 남았다.
 
서울의 아파트 증여는 1만9108건으로 처음으로 연간 2만건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고가 아파트가 많은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에서 발생한 아파트 증여 건수(5726건)는 서울 전체의 30%를 차지한다. 정부가 양도소득세 중과로 다주택자의 퇴로를 막은 데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한 때문이다. 다주택자의 양도세율은 최고 62%에 이른다. 시중은행의 한 부동산 PB는 “양도세 때문에 팔 수도 없고, 팔면 다시는 못 산다는 생각에 가급적 물려주려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내년엔 양도세 최고 세율이 72%로 뛰고, 공시가격 상승으로 종합부동산세·재산세 부담도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증여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늘고 있다. 부동산정보회사인 부동산114가 지난달 9일부터 23일까지 전국 14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집값 전망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9.8%가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락할 것이란 응답자는 7.1%에 그쳤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집값 안정화를 위해 보유세는 올리되, 양도세·취득세 등 거래세는 낮춰 다주택자가 보유한 매물이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된다는 지적이다. 거래가 끊긴 주택시장에서 거래세 인하 시기를 놓치면 시장 전체가 위축되면서 실수요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꾸준한 거래 없이 시세보다 낮은 일부 급매물만 가지고 집값을 낮추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가 한시적으로 면제했던 지난 6월까지 급매물이 쏟아지며 거래량도 늘었다. 보유세 부담을 느낀 다주택자가 양도세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해 시장에 매물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거래세 인하에 신중한 입장이다. 거래세 인하는 자칫 투기 세력에게 퇴로를 열어줬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를 설득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취득세는 지방세로, 취득세 인하는 지방재정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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