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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유산’ 남수단, U-20대표팀의 기적

중앙일보 2020.12.04 20:09
동아프리카 U-20 챔피언십에서 역대 최고 성적 3위를 기록한 남수단 U-20 대표팀. 맨 오른쪽이 한국인 지도자 임흥세 총감독. [사진 김기춘 남수단한인회장]

동아프리카 U-20 챔피언십에서 역대 최고 성적 3위를 기록한 남수단 U-20 대표팀. 맨 오른쪽이 한국인 지도자 임흥세 총감독. [사진 김기춘 남수단한인회장]

 
대한민국 축구계의 따뜻한 지원 아래 무럭무럭 성장 중인 남수단이 자국 축구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동아프리카 U-20 챔피언십 3위
한국인 임흥세 총감독 지휘봉
한국축구 지원&벤치마킹 성과

 
남수단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은 3일 탄자니아에서 열린 동아프리카(CECAFA) U-20 챔피언십 3ㆍ4위전에서 케냐를 2-1로 꺾고 3위에 올랐다. 남수단 축구 역사를 통틀어 이 대회에서 조별리그를 통과해 4강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인 지도자 임흥세 남수단 축구대표팀 총감독이 이끈 남수단은 지난달 25일 지역 최강 우간다와 0-0으로 비기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이틀 뒤 브룬디를 상대로 4-0 완승을 거두고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새 역사를 쓴 20세 이하 어린 선수들의 쾌거에 남수단 전역이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동아프리카 U-20 챔피언십에서 지역 최강 우간다를 상대하는 남수단. [사진 김기춘 남수단한인회장]

동아프리카 U-20 챔피언십에서 지역 최강 우간다를 상대하는 남수단. [사진 김기춘 남수단한인회장]

 
결승 진출 여부가 걸린 1일 개최국 탄자니아와 4강전은 아쉬움 끝에 0-1로 졌다. 개최국의 텃세는 대단했다. 남수단 선수단이 경기 전날 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해 경기 장소에 도착했는데, 경기장을 개방하지 않아 잔디에 적응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임 감독은 “탄자니아측에서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우리 선수단의 경기장 입장을 막았다. 경기장 주변에 보안요원을 빙둘러 배치했다. ‘잔디 상태를 확인하고 싶으니 그라운드 주변에서 보는 것만이라도 허락해달라’는 요청마저 묵살당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은 노골적인 편파 판정이 이어졌다. 탄자니아의 결승골 또한 교묘한 핸드볼 반칙으로 넣은 ‘신의 손’ 골이었지만, 심판은 가까운 거리에서 이를 지켜보고도 외면했다. 잘 싸우고도 패한 남수단 선수들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너나할 것 없이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아쉬움 속에 결승행에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남수단은 3-4위전에서 만난 케냐를 상대로 침착한 경기 운영으로 맞선 끝에 2-1 승리를 이끌어냈다. 결승행에 실패해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아프리카 최종예선 진출권은 놓쳤지만, 역대 최고의 성적을 낸 남수단 선수들은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귀국했다.
 
동아프리카 U-20 챔피언십에 출전한 남수단 대표팀의 한국인 지도자 임흥세 총감독. [사진 김기춘 남수단한인회장]

동아프리카 U-20 챔피언십에 출전한 남수단 대표팀의 한국인 지도자 임흥세 총감독. [사진 김기춘 남수단한인회장]

 
남수단 U-20 축구대표팀의 성공 스토리에는 한국 축구의 따뜻한 지원과 격려가 녹아 있다. 선수단을 이끈 임 총감독은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를 비롯해 하석주, 김주성 등 10여 명의 한국 축구 레전드를 길러낸 유명 지도자다. 감독으로 거둔 성공을 뒤로하고 오랜 내전과 질병, 가난으로 인해 고통 받는 아프리카 대륙에 스스로 건너가 스포츠로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임 총감독은 지난 10여년 간 아프리카의 여러 오지를 찾아다니며 에이즈 등 질병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왔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훈장을 수여한 것을 비롯해 아프리카 여러 나라가 임 감독을 ‘아프리카 축구의 아버지’로 부르며 존경을 표시하는 이유다. 수년 전 남수단에 자리를 잡은 이후엔 체육회 설립을 주도했고, 국민체육진흥공단을 비롯한 대한민국 체육계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2016년 리우 올림픽에 건국 이후 최초로 선수단을 파견했다.    
 
동아프리카 U-20 챔피언십 소식을 전한 남수단 현지 언론의 보도 내용. [사진 김기춘 남수단한인회장]

동아프리카 U-20 챔피언십 소식을 전한 남수단 현지 언론의 보도 내용. [사진 김기춘 남수단한인회장]

 
남수단에서 A대표팀을 제외한 남녀 각 연령별 대표팀을 총괄 육성하는 임 총감독은 “대한축구협회가 재능 있는 유망주 발굴ㆍ육성을 위해 론칭한 ‘골든에이지 프로젝트’를 지난 5년간 열심히 벤치마킹했다. 대한축구협회의 도움을 받아 15세 이하 대표팀과 17세 이하 대표팀을 한국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참가시켜 경험도 쌓았다”고 말했다.  
 
임 총감독을 현지에서 지원하는 김기춘 남수단 한인회장은 “남수단은 경제적으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하지만, 축구에서만큼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로 주목 받는다”면서 “한국 축구의 배려와 지원에 대해 남수단 축구관계자 모두가 감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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