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딩이 푸냐" 한국사 20번 논란에 돌연 소환된 12년전 문제

중앙일보 2020.12.04 18:04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20번 문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 문제 캡쳐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20번 문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 문제 캡쳐

지난 3일 치러진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한국사 영역 20번 문제가 수험생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나치게 쉽게 출제됐다", "정치적 의도가 보인다"는 등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4일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출제 기본방향에 충실했다"고 밝혔다.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했으면 풀 수 있게 평이하게 출제한다'는 원칙에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절대평가 방식으로 치러지는 수능 한국사 시험(총 50점 만점)은 2점짜리 10문항, 3점짜리 10문항으로 구성된다. 논란이 된 한국사 20번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설 내용 일부를 보여주고 연설이 행해진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을 찾아 고르라는 문제다. 정답은 '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했다'는 내용의 5번 선지다. 
 
그런데 정답인 5번 외에 다른 답은 '당백전 발행' '도병마사 설치' '노비안검법' '대마도 정벌' 등의 내용으로 현대사와 관련이 없다. 또 주어진 지문에는 '지난해 남과 북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통일은 소망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등이 담겨 있어 내용만으로도 답을 유추할 수 있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 고사장에서 한 수험생이 두 손을 모아 마음을 다잡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 고사장에서 한 수험생이 두 손을 모아 마음을 다잡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수험생들이 이용하는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고난도 문제로 꼽히는 3점짜리 문제가 너무 쉽게 출제됐다며 "장난 치는 것 아니냐""출제진이 성의가 없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수능 시험을 빌어 통일교육을 하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이날 자신의 SNS에 한국사 20번 문제를 게시하고 의견을 구하자 '정권의 정책 홍보냐'라는 비판성 댓글도 달렸다.
 
인터넷에선 '황당 수능 문제'로 불리는 2008학년도 수능 제2외국어 아랍어 영역 문제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아랍어 문장과 피라미드 사진을 함께 보여주고 어느 나라를 방문했는지 묻거나, '신전' '주위를 돈다'는 아랍어 단어의 뜻을 한국어로 알려준 뒤 사진과 관계있는 것을 고르라는 내용이다. 누리꾼들은 이번 한국사 20번 문제가 2008학년도 아랍어 문제에 비견되는 쉬운 문제라는 반응이다.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제2외국어 아랍어 28·30번 문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 문제 캡쳐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제2외국어 아랍어 28·30번 문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 문제 캡쳐

이런 논란에 대해 평가원 측은 "수능의 출제 기본방향에 충실했다"고 설명했다. 평가원 관계자는 이날 "한국사 영역은 절대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교육과정만 충실히 이수했으면 풀 수 있도록 평이하게 출제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20번 문항의 1~5번 선지가 각각 다른 시대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한국사 출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1번, 3번, 6번 등 다른 3점짜리 문제에서도 같은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평가원 측은 '출제 의도에 대한 확대 해석'을 삼가해달라고 했다. 평가원 관계자는 "해당 문제는 이번 정부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 지난 정부(노태우 정부)에 대한 내용이지 않냐"며 "남북관계에 대한 문제는 이전에도 꾸준히 출제됐다"고 덧붙였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앞두고 자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앞두고 자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현직 교사들은 최근 수능 한국사 영역이 지나치게 쉽게 출제돼 변별력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역사 교사는 "2017년 한국사 과목이 절대평가로 바뀐 후 거의 그림 맞추기 수준의 문제가 잇따라 출제되고 있다"며 "논란이 된 문제 외에 다른 문제도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맞출 수 있는 문제"라고 평가했다.
 
그는 "매년 1등급이 넘는 학생이 20%가 넘다보니 학생들은 아예 한국사 공부를 안하고 있다"며 "변별력과 학습 의욕을 위해 수능 한국사 영역의 출제 경향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경미·남궁민 기자 gaem@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